날짜:2003/02/06 20:40
오페라의 유령은 1910년 프랑스에서 나온 가스통 르루의 공포추리소설이다. 저자
(Gaston Leroux, 1868-1927)는 명탐정 셜록홈즈로 유명한 영국의 코넌 도일(A. Conan Doyle, 1859-1930)이나 아르센 루팡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 1864-1941)과 동시대에 활약한 추리작가이다.
처음에 창작과 비평사 판을 샀다가 다음 날 서점에 가서 문학세계사 판으로 바꿔왔다.
두 개가 다른 점은 창비판은 영문판을 한글로 옮겨놓은 것이고 문학세계사판은 프랑스판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것이 다르다. 편견의 차이인지 정말 내가 느껴서인지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불어판 번역에서 좀 더 섬세하며 프랑스 문학 특유의 무겁고 음습한 분위기(?)를 보다 깊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더 끌렸던 거 같다. 그냥 커피 향의 종류가 다른 것과 같은 것과 같은 느낌. 영문판이 브랜드 커피라면 불어판이 에스프레소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하면 너무 오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어떤 사람은 불어판 조차도 너무 가볍고 원작을 훼손하는 번역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봤지만 아직 그 감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는가 보다.
작가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일단 기자출신 답게 글이 신문의 사건 사고를 다루듯이 진행된다. 소설을 논리 있는 기사처럼 포장해 놓는다. 제목은 오페라의 유령이라서 중세의 마녀를 다루는 것과 같은 종류의 신비성을 주축으로 하는 내용이 아닐까란 착각을 하게 만들지만 제목에서 가지게 되는 신비의 기대는 첫 줄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깨어진다. "오페라의 유령은 정말로 존재했었다" 의 시작 문장은 트릭이 아니다. 1910년에 나온 책인 만큼 작가는 시대정신의 반영자이다. 이성에 대한 믿음, 불확실한 미신적 존재에 대한 불신, 원인에 대한 논리적 증명, 과학성. 작가는 다수의 조연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일단 사람들이 믿고 있는 유령의 존재에 대한 공포를 부산스럽게 과장시킨다. 그리고 제 3자의 엘리트적이며 논리적이고 지적으로 세련된 화자를 통해 공포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들을 탐정의 시각을 통한 과학적 수사로 매듭을 풀어 나간다. 오페라의 유령이란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 더 이상 터치하면 안 될 미스테리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서 순순히 오페라의 유령에 복종해야 순리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 저항에의 포기, 단념. 그리고 유령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반드시 그의 행적에는 이유와 설명이 가능하며 밝혀낼 수 있다는 제 3의 목소리. 제3의 시점을 대변하는 사람은 귀족 출신인 라울 샤니 자작과 페르시아인이다. 그렇다면 미스테리를 풀어 해치게 되는 귀족 출신의 라울의 동기는? "사랑" 이다. 오페라 무대의 아름다운 목소리의 크리스틴 다에를 향한 "사랑의 힘"이 동력이다.
이 통속적인 요소는 무엇을 위하여 등장하는가? 사랑에 대한 매체에서의 표현은 무수하게 등장하고 있고 굳이 옛날 소설에서의 사랑을 찾지 않아도 날마다 그러한 스토리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많고 많은 사랑의 얘기 중에서 1910년에 지어진 추리소설에서의 "사랑"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쩜 자본주의적인 것인지 모른다. 누군가 까페에서 연애는 혁명의 적이라는 발언을 익명 게시판에 남겨서 웃고 지나가게 만들기도 했지만...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는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하는가..
추리소설은 자본주의와 함께 존재함으로서 그 가치를 부여받는다. 부르조아, 귀족의 재산은 법적으로 보장받기 때문에 그것을 노리는 자는 "악"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힘인 노동력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상해, 살인 행위의 범법화- 는 타인의 신체에 대한 공격적 행위를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즉 부자의 재산을 노리는 자나 살인자는 징벌의 대상이 된다. 물론 살인자가 당연히 징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현재 논리로서는 당연하겠지만 중세와 비교해 봤을 때 신체의 예속화는 근대화, 자본주의화의 맥락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초점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 "감시와 처벌"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무튼... 누구를 위한 권선징악인지는 모르나 추리소설에서의 권선징악은 자본주의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조목조목 해부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이는 역설적으로 사회주의에서 추리소설이 활개치는 것을 봤냐? 는 논리로 설명하기도 한다.
아차..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 "사랑의 힘"의 등장 때문에 오페라의 유령이 여타의 탐정 추리소설과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탐정 소설에서의 탐정은 돈 많은 귀족에 의해 고용된 전문가이다. 동기는 주로 값비싼 보석이나 대대로 내려오는 소중한 귀족의 가보..같은 것을 다시 찾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고 부수적으로 소소한 로맨스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점차 추리소설의 다양화가 됨에 따라 루팡과 같은 매력적인 범죄자가 등장하고 알고 보면 "사랑의 힘"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더라..는 식으로 구성되는 소설들도 있긴 했었지만 어쨌든 동기는 부르조아틱하게도 "재산" 이다.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탐정활동의 주역은 전문가 탐정이 아닌 젊은이 "라울"이다. 그리고 그의 목적은 잃어버린 "재산"을 찾기 위함이 아닌 잃을 뻔한 "사랑"을 찾기 위함이다. 어쨌거나 주인공이 귀족이라는 점은 별반 기존과 쌤쌔미..그게그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주 목적의 전환의 시점에서부터의 결점까지의 기존의 탐정 추리소설과는 다른 방향 전환은 아주 색다른 맛을 지닌 소설로 변모시킨다. 물론 한계를 지적하고 꼬집고 헤집자면 또 끝이 없긴 하겠지만...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인가..
재산 -> 사랑 의 동기 전환의 끝에서 기다리는 결론의 전환 권선징악 -> OOO? 의 OOO은 무엇? 그것은 권선징악이 해소의 전부이며 끝이며 해피앤딩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속사정을 면밀히 들여다 보고 우리가 생각없이 규정지었던 "악"의 근원은 어디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자며 연결 고리를 이어간다. 오페라의 유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에릭의 어린시절, 불합리한 외모(?)로 인한 소외당함과 인간적 절망, 증대되는 반사회적 복수심, 분노..등등이 빚어내고 만들어 낸 현재의 에릭의 존재와 그의 범죄 행각은 "악"이란 결국 혹처럼 붙어 있는 떼어내야 할 존재 조차도 우리=인간이 만들어 낸 참극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크리스틴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애정 방식 또한 그 범주의 하나이다. 앞에서도 "사랑의 힘"을 말하곤 했지만 여기서 에릭을 잠재울 수 있는 것 또한 징벌이 아닌 "사랑"임을 결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단순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알고보면 크리스틴은 에릭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저 동정할 뿐...소외된 자에 대한 작가의 관심... 가장 그나마 최근에 나왔던 영화 "프랑켄 슈타인"적인 관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그런데 인간의 비극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뭔가 중요한 인식을 하고 바꿀 필요성이 있다는 식의 교훈적 느낌에서 끝나지가 않는다. 이것은 개인적인 끊이지 않는 의문과 모호성, 혼란이기도 한데 그러한 교훈적 진리를 끌어내리기에는 이제까지 이끌어온 책속의 너무나 많은 구성 요소들이 도마에 오를 준비를 스스럼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결국은 귀족인 라울이 승리하는 구도로 끝나지 않았는가 부터 시작해서 그 "사랑의 힘"의 그 속성의 비약까지를 포함한... 좋은 맘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고나니 더 모호한 이 기분 -.- 예전에는 책 읽고 감동받으면 그 좋은 느낌으로 끝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감동과 동시에 시작되는 의문..들이 나타나는 증상.. 갑자기 이 책이 정말로 좋은 책이었나 하는 의문까지 들기 시작한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나 산만한 이제까지의 글의 남은 한마디는 이것뿐이다. 인간과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다..
또한.. 딱 떨어지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소중한 책으로 점 찍혔다는 감흥의 모호성 또한 현재로서는 밝혀내지를 못하겠다. 글 쓰기 시작할 때는 뭔가가 밝혀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시작했으나 의도와는 결국 다른 상태로 끝맺음이 되는데...
갑자기 최근에 본 "이중간첩"이 생각이 난다. 잘 봤다는 생각이 들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좋은 꺼리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영화는 재미없고 지루하며 비약이 많고 영화로서는 실패작이라 생각되는 것과도 비슷한 현상인지도...
암튼.. 오페라의 유령을 읽으면서 참기가 어려웠던 것은 크리스틴과 에릭의 목소리.. 그리고 무수히 등장하는 오페라를 너무나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망상이었다. 결국 음반을 사게 되었는데 오페라의 유령 대사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있는 두 장의 CD가 들어있었고 대사를 보지 않고는 도저히 따라 들을 수 없는 진짜 오페라가 들어있어서 2시간 동안 다 듣는다고 시껍했다.. 그래도 마지막 부분에 에릭이 크리스틴을 떠나보내는 장면에서는 울컥....하구 말았다. 음악의 미혹...을 즐감하는 보람이 있었다.
너무나 핵심이 없는 글을 올린데 대한 미안함..(--)(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