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날짜:2002/06/18 13:32

전 해마다 지리산을 간답니다.
고모댁이 산청군 중산리에 있거든요
하지만 언저리만 돌았지 본격 지리산 등반은 함도 못해봤습니다.
하지만 대원사..라는 제가 좋아하는 절은 꼭 가죠.
성철스님이 한 때 수행했던 곳이기도 하더군요
절 모양새가 안정감있고 따뜻함이 베여 있는 것이 제 생각이지만 풍수지리적으로도 명당이지 않을까..하는 추측..

그리고
남명 조식 선생을 모신 서원이 근처에 있거든요
작년인가..제작년인가.. 500주년 기념행사를 크게 해서 구경도 갔답니다. 휴가를 갔던 그 주간이 공교롭게도 행사주간이었거든요
남명 조식 선생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성성자라는 방울을
사게 되었는데 소리가 맑고 은은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 결코 싸지 않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구입했답니다. 남명 조식선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에서 해마다 편찬하는 논문집도 즉석해서 가장 최근판으로 구입은 했습니다만..아직 책장에 고이 모셔놓여져만 있네요..

참 그 성성자라는 방울은 남명 조식 선생이 생전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럴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소리가 어쩐지..무당 방울하고 소리가 비슷해서리..--;;
그리고 너무 고귀해 보여서 아까워서 가지고 다니질 못한답니다.

앤드..
또 참..그 주변에 신기한 곳을 많이 다녀왔었답니다.
단군을 모신 어떤 종교인데..대종교라던가 천도교라던가..
아주 큰 절 비슷한 곳이 있는데..좀 사이비틱한 느낌이 들었는데 갔다온지가 좀 오래되서 기억은 잘 안나요.
우리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대순진리교는 절대 아니구..
암튼 께죄죄한 모습으로 도닦는 사람들이 많는 곳이었는데.. 규모가 상상을 초월해서 어떤 돈 많은 부자들이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했습니다. 퇴마록에나 나옴직한 장면들이 있어서 쬐금 께름직하기는 했죠..

그리고..그 근처를 돌다가 문익점이 젤 첨으로 목화씨를 씸었다는 그 곳..목면 시배지?..비슷한 이름의 장소도 다녀왔는데 전 박물관 내부 보다는 건물 모양이 예뻐서 반했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지리산 근방은 여름에 가게 되어서 더웠던 기억들만 새록새록 나는군요..

또 있네요
한국 현대사의 격전지가 바로 지리산 아닙니까..
전쟁 기념관도 근처에 있는데 항상 따라만 다니다 보니 길을 잘 모르겠습니다.^^;; 울 아부지께서 항상 어딘가를 다니는 걸 좋아하셔서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보니.. 이런 저런 곳을 많이 다니게 되었네요.. 어찌나 길을 잘 찾아다니시는지 정말 신기하더군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전쟁 기념관이라기 보다는 빨치산 소탕 작전 완수를 기념하는..비슷한 의미로 건립이 된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끔찍했던 한국 현대사임을 간접적으로나 보게 되었죠..빨치산들이 사용하던 오래된 구닥다리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발싸게..칼..총..등.. 그리고 숨을 때 파던 구덩이의 모습.. 그리고 소탕작전 경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입체적 지도로 구성해 놓았었는데.. 저희 고모댁도 만만치 않은 지역에 속했던 곳이더라구요.. 마치 소설 태백산맥 속에 들어와 앉은 듯한 기분이었답니다. 물론 그 쪽은 전라도지만 부근이 다 인접지역이거든요
거기를 다녀온 날에 아는 할머니가 계셔서 물었죠..당시에 어땠냐고..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더군요..동네 남자들이라고는 씨가 마를 정도였다고 하네요..빨치산이 아니라도 이리저리 다른 일로 엮여서 억울하게 죽기도 하고..아직도 모르지만..군데군데 ..구덩이를 파 보면 사람들 시체 꽤나 많이 나올 거라고 하십디다.. 아직까지 숨겨진 비화들이 많다는 증거겠죠..

글고..또 얘기하자면 끝이 없겠네요..
압..레포트 쓰러왔다가..이렇게 간만에 긴 글 쓰게 되네요..
담에 또 기회가 되면 ..더 풀어놓던지 하겠습니다.
친구가 기다려서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짜:2002/09/05 11:5

님의 글을 읽으니 가자기 장 그리니에가 <섬>에서 말한 여행에 관한 대목이 생각이 났어요..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오히려 발길 가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분숫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편이 더 낮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성공하고 나면 바다 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멀미 나던 여러 날과 기차 속에서의 불면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자기 자신의 인식이라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다른 그 무엇의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인식 중에서도 가장 참된 것이다. 즉 내가 나 자신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지정한 모습이다.

몇 주 전에 거제도에 다녀왔었습니다. 적은 비용이었고..고생은 절대 하지 말자는 엠티의 성격을 지닌 여행이었죠. 그러나 부득이한 돌발상황이 발생했답니다. 제가 간 곳이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일요일엔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 그런 일이.. 그래서 시외 버스 터미널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한낮의 찌는 더위를 견디며 아스팔트 언덕을 꾹꾹 걸어가고 있었죠.. 지나가는 트럭 하나도 자비를 베풀지 않더군요. 하긴..사람들이 일곱명이나 되니..--;
그 아스팔트 언덕의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상황 속에서 찌는 더위와 시름하며 그래도 좋다고 농담따먹기며 사진찍기며..등을 하며 오르고 있었죠..

그 길을 오르는 시간이 참으로 기억에 남는 이유는 찌는 더위 때문에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시원했을 때는 너무 행복하다는 기분.. 그 맑은 공기 땜에 상쾌하다는 기분..그와 동시에 집에 어찌 가야할지..고민하며 아픈 다리..더위..속에서의 고통..

아스팔트 언덕의 꼭대기에 다다르자 저 멀리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의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 바다의 빛깔과 풍경에 대한 감탄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을 만끽했었는데요..그런데도 막막함에 대한 고통의 감정은 공존하고 있었죠..전 제가 미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행복하고 힘들고 재미있고 웃기고..이런 감정들이 어떻게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을까.. 참으로 신비로운 경험이었죠..

그 찰나의 순간이 아주 오래도록 머리속에 박힌 까닭은 행과 불행은 항상 공존하는데 나는 왜 한쪽만을 보려고만 애쓰는가 하는 허무함이었습니다.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네요.. 그때의 기분을 표현한다는 것이..
둘은 항상 공존한다는 것을 나는 왜 인정하지 않고 사는가..하는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서 사는 스스로가 애처럽고도 불쌍하게까지 느껴졌으니깐요..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말이지만 직접 그런 순간을 느끼니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더라구요. 여행이란 것을 통해 직접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그때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가 편지하기를. 한달 동안의 즐거운 여행 끝에 시에나에 당도하여 오후 두시에 자신에게 배정된 방 안으로 들어갔을 대 열린 덧문 사이로 나무들, 하늘, 포돷, 성당 드이 소용돌이치는 저 거대한 공간이- 그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시에나 시가 굽어보이는 저 절묘한 들판이-보이자 그는 마치 어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그의 방은 하나의 깜깜한 점에 불과했다)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나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찬미의 눈물이 아니라<무력함의 눈물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의 동요라기 보다는 정신의 동요였음이 분명하니까). 그는 자기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는 수 없이 감당하게 마련인 미천한 삶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일순간에 그의 여원들이..그의 사상의, 그의 마음의 무를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이 거기에 주어져 있었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가질 수 없었다. 그 한계점에서 그는 지금까지는 그저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별, 그러면서도 오직 그만이 원했던 그 이별이 결정적인 것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식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몸을 움직여서 행동하며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짜:2002/09/30 11:16
부산시내와 접한 곳에 '철마'라는 시골마을이 있습니다.
부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가 보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안락로타리를 지나 금사동 방향으로 가는 길도 있고..노포동에서 넘어가는 길도 있는데..암튼 그 쯔음으로 연결된 길이 있는 걸로 압니다.

어른들은 고기먹으러 '철마'에 가시더군요. 거기서 직접 잡기 때문에 양질의 고기를 맛볼 순 있지만 그만큼 가격도 만만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끌리오 같은 신성한 곳에 먹는 얘기 하려니 좀 민망하기도 하지만..--;; (에잇 어차피 읽어보는 사람도 없는데 맘대로 쓰렵니다.) 잘 찾아보면.. 오래전부터 살던 마당 넓은 단층 한옥집에서 음식점을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낮에 가면 마당도 넓고 운치도 있고..집 바로 밖에는 논이 넓직하게 있어서 가끔 도심을 벗어나서 트인 기분 느끼기에 참으로 적절한 곳입니다. 음식점 이름까지 말하기엔..너무 광고성이 짙은것 같고..--

그 '철마'라는 곳의 지형이 참으로 독특하답니다. 지리학에 일각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산으로 구석구석 둘러쳐져 있는데 절벽이 깎인 곳이 꽤 다른 주변의 산들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줍니다..(혼자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앗..이 얘기 하려던 것이 아닌데.

암튼.. 그 동네를 구석구석 한바퀴 돌다 보면 참 멋진 마을이란 생각이 듭니다. 날씨 좋은 날..특히 요즘은 벼가 누렇게 익어서 그 색깔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밭에 가꿔놓은 농작물들이 정말 싱싱하게 보이더군요.. 아마 약간 고지대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유독 그 동네 공기만 참 시원하고 맑거든요.. 산의 숲도 울창한 것이 눈의 피로도 싹..풀리고

노포동 넘어서의 시골 비스무리한 곳들은 많이 가봤는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 지역이 유난히 농사가 잘 된다는 게 눈에 보인답니다. 동네 자체가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동네 소들이 맛있는데는 그런 이유도 있겠지요..

. 아주 잘 익어가는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보고 있으니 마음 가득..넉넉하고 뿌듯해지더라구요 꼭 내가 거기에 일조한 것 같이..
가을이 되니깐 푸른 산에 노랗고 붉은 점(그 붉음에도 단계가 각가지더라구요 약간 오렌지빛이 든 것도 있고 좀더 진해진 색깔들까지)들이 곳곳에 찍혀 있어서 눈이 그다지 심심하지 않구요..인상파의 점들이 유난히 많은..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고.. 가을로 가는 과도기의 장면이었다고나 할까.

근데 왜 동네 이름이 '철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좀 더 토속적이고 정겨운 이름이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짜:2002/09/23 14:05

양산 시내에서 신불산이란 생전 처음 보는 산으로 차가 들어간다. 산의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서면 공동묘지가 있고 여기저기 한복입은 여자들이 명절이라고 곱게 단장하고 길 가에 서 있는데 그 모습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짙은 색조화장에 밝은 톤으로 염색한 머리와 뾰족구두..그리고 한복의 매치는 부조화의 경계를 넘어서 조잡하기까지 하다.

신불산 고개를 계속 따라 오르다가 정상에 도달하면 목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저 푸른 초원위에.. 소들은 그들의 집에 들어가 있는 듯 평온한 광경이다. 길 가에 컨테이너안에서는 조금 늙어 보이는 아저씨와 그보단 아리딴 아줌마가 이것저것 먹을 것을 팔고 있는데 칡차,팥빙수,컵라면..등등의 요기꺼리이다. 컨테이너 안에는 나무로 만든 발을 사방으로 붙여 놓아서 천연의 둥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절벽쪽으로는 창까지 틔워서 절벽 아래로 시원스런 광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산등성이와 등성이 사이. 즉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살아간다.

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있으면 아무리 많이 돌아다녀도 길눈이 밝아지지를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의 특성상 그렇다고도 하는데..암튼 "넌 운전 하면 안돼"라고 항상 듣는 말 때문에 여태 면허증도 따질 못했다. 하지만 난 지금 운전석에 앉더라도 운전할 수 있다.

길을 계속 가다보니 밀양댐이 보인다. 두 갈래로 수문이 틔여 있는데 한 쪽으로는 양산 시내로 또 한 쪽으로는 밀양으로 물이 간다고 한다. 산들에 둘러싸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 속에 예전에는 고례 마을이 있었다. 물 색깔이 영 께름직하다. 산에 물 색깔이 어찌 커피우유색깔인지..ㅜ.ㅜ;
그러나 산의 꼭대기로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는 절경은 멋지다. 팔을 차 창 밖으로 내밀어 부딪히는 바람을 느끼는 것은 정말 Cool! ..하다. 차가 없으면 이런 곳을 올 수 없다. 운전하고 싶다.는 한 마디에 다시 한번 비웃음이 되돌아 온다.

밀양 표충사는 한가하다. 명절 첫날이라서 그런지 사람도 없고, 잘왔다 싶다. 표충사에 관한 설명 표지판을 모른체 넘어가려 했는데 니가 사학과면서 이런걸 읽지 않고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다며 나무란다.. 실은 유래..에 관한 설명 표지판을 읽는 것은 별로 재미 없다.

차를 타고 가지 않음 좋을 곳. 만약 밀양 표충사를 가려면 저 밑에 길가에 차를 대어 놓고 표충사로 가는 숲길을 걸어서 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 숲길이 참 멋지다. 통도사의 숲길과 맞먹는다.

무열왕때 이 절을 지었단다. 인도에서 어떤 승려가 와서.. 왕의 총애를 받고..여기에 절터를 잡고 죽림사라고 첨에 만들었다가 ..원효대사가 등장하고 사명대사..등의 많이 들어본 스님들 이름이 차례로 등장했다가..임진왜란때 이 스님들이 이 절을 근거로 왜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현종 때 표충사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충의를 표하는데 헌신을 다 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겠거니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표충사라고 쓴 현판의 글씨는 정말 감탄스럽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우리 나라 절은 원효..의상..사명..을 비롯한 소수의 스님들이 대부분의 절을 지었다는 게 좀 이상스럽다. 다녀본 절들에서 그네들의 이름을 보지 않은 절이 어디 있던가.
이 절은 도대체 누가 지었단 말인가.

절 내부는 안정된 평지이다. 평온하고도 아늑하고 따뜻한 이곳은 넓기도 하다. 여유가 있다. 스님들도 명절 쇠러 갔는지 안보인다. 붉그레한 꽃들이 쫑쫑 피어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대웅전이 아주 안정감 있게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깨끗하다. 대웅전에 들르기 전에 보리수 열매로 만든 간주를 샀다. 예전부터 사고 싶은 것이었는데 그때는 귀신을 쫓는다는 대추나무 간주로 부적으로 삼았다가 이번에는 깨달음을 상징으로 삼고 있는 보리수 나무의 열매로 바꾸고자 한다. 어쨌거나 동글동글한 알갱이들에게 기대하고자 하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의 망탈리테..내가 과거로 부터 연결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간혹의 순간은 지금처럼 간주 하나를 사고 희색이 만연하는 상황이다. 나는 곧 나의 어머니이며 나의 할머니이며 그들과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

보리수 열매는 겨울쯤에 사려할 때 흰색이었는데 지금 사려니 니 노랗게 익은 색깔이다. 찌는 여름의 시련을 견뎌서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의미부여 해본다. 깨달음의 진수는 너와 같이 고비를 넘겼을 때 그 결정체가 더 고귀하다는 것을.
그런데..
깨달음은 무엇인가..무엇을 깨닫는단 말인가... 깨달음과 믿음은 같은 것인가? 해명되지 못한 믿음은..도피가 아닌가..나약함이 아닌가.(이런 식의 글을 쓰게 되면 꼭 이후에 삭제하게 되던데..걱정이다.--)

날짜:2002/09/23 14:05

표충사의 대웅전에 앉아서 스님의 독경소리를 듣는다. 들어본 염불 중에서 꽤나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런 생각도 든다. 스님 랩 참 잘 하시는군요.. 이런 철딱서니 없는 젊은 사람에게 스님은 그러겠지.."니들이 염불을 알어?" 아무튼..그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p 대웅전 뒷편에 보리수 나무가 있다. 처음 보는 나무는 아니건만 그것이 보리수 나무라고 하니깐 새롭게 보인다.

가장 좋았던 것은..남쪽으로 산들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누각이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법당이라고 하는데 올라가면 안될 듯한 표지판이 하나 있지만 그냥 신발 벗고 올라섰다. 법당이라서 그런지 바닥이 깨끗하다. 예전에 병산서원에 갔을 때처럼 남쪽으로 보고 앉아서 우두커니 앉아 자연을 응시한다. 정말 멋진 순간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하나 둘 따라 신발벗고 들어와 같은 포즈를 취한다. 멀찍이 떨어져 앉은 연인들이 눈을 거슬리게 한다..신성한 법당인데..--;;

4시가 넘으니 산에 그늘이 진다. 산의 검은 그림자가 압도적이라 더 이상 머물 마음이 들지 않는다.

훌훌 털어버리고..다시 산을 내려온다. 내일은 추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월러스틴 긴급분석> 이라크 아닌 미국이 '체제전환' 당할 것
등록일자 : 13 : 39

다음은 미국의 세계적인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이라크전쟁에 관한 분석 글이다. 월러스틴은 이 글에서 부시가 이번 전쟁에서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미국의 세계적 위상에 별다른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며, 승리가 늦어질 경우에는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결국 부시는 질 수밖에 없는 도박을 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부시는 모든 것을 걸었다(Bush Bets IT All)

미국은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다. 미 합중국 대통령은 엄청난 도박을 감행하고 있으며, 그것도 근본적으로 취약한 입장에서 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고 결정한 것은 대략 1년 전이다. 이는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과 함께 다음 2가지 기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첫째 모든 잠재적 핵개발 국가들에게 겁을 주어 핵개발을 포기토록 하며, 둘째 세계시스템에서 독립적인 정치적 역할을 맡겠다는 유럽 측의 꿈을 분쇄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시는 엄청난 실패를 맛보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어쩌면 아직 발각되지 않은 다른 핵개발 국가들도) 그들의 핵개발 프로젝트를 가속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독립적이 되겠다는 자신들의 꿈이 결코 빈 말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이라크 문제에 관한 2차 유엔 안보리 결의안 득표전에서 제3세계 소속의 안보리 이사국 6개국 중 단 한 나라로부터도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부시는, 마치 무모한 도박꾼처럼, 가망없는 패에 모든 것을 걸려 하고 있다. 그는 압도적이고 신속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승패는 간단하다. 만일 미국이 압도적이고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면 핵개발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 모두 자신들의 소행을 후회하고 다시는 미국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 않을 것이라고 부시는 믿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는 두 가지 군사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나는 부시가 원하며 기대하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와는 다른 것이다. 부시가 이라크의 빠른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까? 펜타곤은 그럴 만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며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영국의 수많은 예비역 장군들은 회의를 표명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도 신속하고 완벽한 승리의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라크 지도부의 필사적인 항전의지, 이라크 민족주의의 분출, 그리고 사담에 맞서 싸우기를 별로 원치 않는 쿠르드족의 입장(후세인을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의도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등이 어우러져 미국이 수 주일 내에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수 개월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수 개월을 끌 경우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지, 특히 미국과 영국의 여론동향과 관련하여,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p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국이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 부시에게는 무승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승리한다 해도 지정학적 상황은 오늘날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승리 직후 이라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일단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가장 정확한 대답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 자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는지도 전혀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이라크 문제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다중적이고, 다양하며, 전혀 조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무정부주의적 혼란상태가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 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으려면 군대를 장기 주둔시켜야 하며, 엄청난 규모의(진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제상황과 내부정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미군을 이라크에 매우 오랫동안 주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 이를 위한 돈을 얻어내기 위한 정치게임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게다가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다른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진척될 가능성은 지금보다도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의 승리로 자신들의 강경노선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더욱 강경해질 것이다. 아랍세계는, 만일 그럴 여력이 있다면, 더욱 분노할 것이다. 이란은 핵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오히려, 중동지역에서 사담 후세인이 사라짐으로써, 이란은 기운을 얻게 될 것이다. 북한은 도발을 강화할 것이며, 남한은 동맹국 미국의 군사행동 중독증에 더욱 불편해 할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오랫동안 미국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의 결론은 미국이 신속한 군사적 승리를 거둔다 해도 그 결과는 지정학적 현상유지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부시행정부의 매파들이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속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경우 이 모든 작전들은 미국에 지정학적 재앙이 될 것이다. 복마전(Pandemonium)이 열려 온갖 악귀들이 뛰쳐나올 것이며 미국은 세계의 미래에 이렇다 할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마 이탈리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인데, 이는 다시 말해 별 영향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예측을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우선 이라크의 경우 이라크인들이 저항운동에 나서면서 후세인은 (독재자에서 민족의) 영웅으로 부상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같은 국민들의 감정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란과 터키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각각 군대를 보낼 것이며, 그 결과는 아마도 양국 군대의 군사충돌로 끝날 것이다. 쿠르드족은 당분간 이란 편에 설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회교도는 미 군정과 거리를 두려 할 것이다. 아마도 사우디가 중재역을 자청하고 나서겠지만 양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중동의 다른 지역의 경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공격에 나설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의 설욕을 하고 남부 레바논을 점령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과연 시리아는 전쟁에 뛰어들어 헤즈볼라를 구출하고, 더 나아가 레바논에서의 과거 지위를 회복하려 들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다마스쿠스를 폭격할(아마도 핵무기로) 것이다. 그렇다면 이집트는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 그렇지,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사나이를 까먹고 있었구만. 그는 분명히 평소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을 실천에 옮길 것이 분명하다.

자, 유럽은 어찌될 것인가? 아마도 영국 노동당에서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 결과 노동당은 두 쪽으로 갈라질 것이다. 블레어는 자기 파벌을 이끌고 나와 보수당과 함께 비상연립내각을 구성할 것이다. 그는 총리직을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총선을 실시하라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며 블레어는 패배할 것이다. 아주 참패할 것이다. 또 하나, 블레어는 자신의 법률고문으로부터 만일 영국이 유엔의 명시적인 승인 없이 이라크전쟁에 뛰어들 경우 그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 자신의 당내에서조차 전쟁 참여에 대한 반대가 드높은 스페인 아즈나르 총리의 총선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와 동유럽 및 중부유럽 국가의 지도자들도 걱정이 늘어만 갈 것이다.

한편 중남미의 경우, 이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는 끝장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대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무역 및 통화공동체로 메르코수르의 재활성화를 주창할 것이며, 심지어 칠레까지도 메르코수르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의 빈센테 폭스 대통령은 깊은 곤경에 빠질 것이다. 동남아시아로 가 보자. 세계 최대의 회교국,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지금은 기본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이지만 아마도 유럽을 따라 이 지역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립적 행동의 지역으로 변모시키려 할지 모른다. 한편 필리핀에서는 미군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며 중국은 일본에 대해 이 지역에서 경제적 미래를 보장받기 원한다면 미국과의 정치적 유대를 약화시키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넌지시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초, 이 모든 상황들은 부시 정권(regime)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미국에서 반전운동은 급속한 속도로 확대되면서 민주당을 부시의 세계정책에 대한 진정한 반대파로 끌어올릴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당은 2004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부시는 그야말로 '체제전환(regime change)'을 달성하는 셈이다. (이라크가 아닌) 영국과 스페인과 미국에서 말이다. 나아가 미국은 더 이상의 무적의 군사 초강대국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자, 결론을 맺어보자. 만일 부시가 이긴다 해도 이는 지정학적 현상유지에 그칠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부시가 원했던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만일 그가 진다면 그는 정말로 지는 것이다. 부시가 이번 도박에서 이길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9.11 이후 미국이 그토록 불가능한 입장에 스스로를 몰아넣을 필요는 없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미 뉴욕주립대 교수

ⓒ 2001-2003 PRESSian. All right reserve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