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틴 긴급분석> 이라크 아닌 미국이 '체제전환' 당할 것
등록일자 : 13 : 39
다음은 미국의 세계적인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이라크전쟁에 관한 분석 글이다. 월러스틴은 이 글에서 부시가 이번 전쟁에서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미국의 세계적 위상에 별다른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며, 승리가 늦어질 경우에는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결국 부시는 질 수밖에 없는 도박을 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부시는 모든 것을 걸었다(Bush Bets IT All)
미국은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다. 미 합중국 대통령은 엄청난 도박을 감행하고 있으며, 그것도 근본적으로 취약한 입장에서 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고 결정한 것은 대략 1년 전이다. 이는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과 함께 다음 2가지 기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첫째 모든 잠재적 핵개발 국가들에게 겁을 주어 핵개발을 포기토록 하며, 둘째 세계시스템에서 독립적인 정치적 역할을 맡겠다는 유럽 측의 꿈을 분쇄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시는 엄청난 실패를 맛보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어쩌면 아직 발각되지 않은 다른 핵개발 국가들도) 그들의 핵개발 프로젝트를 가속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독립적이 되겠다는 자신들의 꿈이 결코 빈 말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이라크 문제에 관한 2차 유엔 안보리 결의안 득표전에서 제3세계 소속의 안보리 이사국 6개국 중 단 한 나라로부터도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부시는, 마치 무모한 도박꾼처럼, 가망없는 패에 모든 것을 걸려 하고 있다. 그는 압도적이고 신속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승패는 간단하다. 만일 미국이 압도적이고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면 핵개발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 모두 자신들의 소행을 후회하고 다시는 미국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 않을 것이라고 부시는 믿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는 두 가지 군사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나는 부시가 원하며 기대하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와는 다른 것이다. 부시가 이라크의 빠른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까? 펜타곤은 그럴 만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며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영국의 수많은 예비역 장군들은 회의를 표명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도 신속하고 완벽한 승리의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라크 지도부의 필사적인 항전의지, 이라크 민족주의의 분출, 그리고 사담에 맞서 싸우기를 별로 원치 않는 쿠르드족의 입장(후세인을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의도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등이 어우러져 미국이 수 주일 내에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수 개월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수 개월을 끌 경우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지, 특히 미국과 영국의 여론동향과 관련하여,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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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국이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 부시에게는 무승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승리한다 해도 지정학적 상황은 오늘날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승리 직후 이라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일단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가장 정확한 대답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 자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는지도 전혀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이라크 문제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다중적이고, 다양하며, 전혀 조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무정부주의적 혼란상태가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 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으려면 군대를 장기 주둔시켜야 하며, 엄청난 규모의(진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제상황과 내부정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미군을 이라크에 매우 오랫동안 주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 이를 위한 돈을 얻어내기 위한 정치게임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게다가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다른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진척될 가능성은 지금보다도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의 승리로 자신들의 강경노선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더욱 강경해질 것이다. 아랍세계는, 만일 그럴 여력이 있다면, 더욱 분노할 것이다. 이란은 핵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오히려, 중동지역에서 사담 후세인이 사라짐으로써, 이란은 기운을 얻게 될 것이다. 북한은 도발을 강화할 것이며, 남한은 동맹국 미국의 군사행동 중독증에 더욱 불편해 할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오랫동안 미국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의 결론은 미국이 신속한 군사적 승리를 거둔다 해도 그 결과는 지정학적 현상유지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부시행정부의 매파들이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속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경우 이 모든 작전들은 미국에 지정학적 재앙이 될 것이다. 복마전(Pandemonium)이 열려 온갖 악귀들이 뛰쳐나올 것이며 미국은 세계의 미래에 이렇다 할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마 이탈리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인데, 이는 다시 말해 별 영향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예측을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우선 이라크의 경우 이라크인들이 저항운동에 나서면서 후세인은 (독재자에서 민족의) 영웅으로 부상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같은 국민들의 감정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란과 터키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각각 군대를 보낼 것이며, 그 결과는 아마도 양국 군대의 군사충돌로 끝날 것이다. 쿠르드족은 당분간 이란 편에 설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회교도는 미 군정과 거리를 두려 할 것이다. 아마도 사우디가 중재역을 자청하고 나서겠지만 양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중동의 다른 지역의 경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공격에 나설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의 설욕을 하고 남부 레바논을 점령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과연 시리아는 전쟁에 뛰어들어 헤즈볼라를 구출하고, 더 나아가 레바논에서의 과거 지위를 회복하려 들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다마스쿠스를 폭격할(아마도 핵무기로) 것이다. 그렇다면 이집트는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 그렇지,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사나이를 까먹고 있었구만. 그는 분명히 평소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을 실천에 옮길 것이 분명하다.
자, 유럽은 어찌될 것인가? 아마도 영국 노동당에서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 결과 노동당은 두 쪽으로 갈라질 것이다. 블레어는 자기 파벌을 이끌고 나와 보수당과 함께 비상연립내각을 구성할 것이다. 그는 총리직을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총선을 실시하라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며 블레어는 패배할 것이다. 아주 참패할 것이다. 또 하나, 블레어는 자신의 법률고문으로부터 만일 영국이 유엔의 명시적인 승인 없이 이라크전쟁에 뛰어들 경우 그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 자신의 당내에서조차 전쟁 참여에 대한 반대가 드높은 스페인 아즈나르 총리의 총선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와 동유럽 및 중부유럽 국가의 지도자들도 걱정이 늘어만 갈 것이다.
한편 중남미의 경우, 이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는 끝장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대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무역 및 통화공동체로 메르코수르의 재활성화를 주창할 것이며, 심지어 칠레까지도 메르코수르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의 빈센테 폭스 대통령은 깊은 곤경에 빠질 것이다. 동남아시아로 가 보자. 세계 최대의 회교국,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지금은 기본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이지만 아마도 유럽을 따라 이 지역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립적 행동의 지역으로 변모시키려 할지 모른다. 한편 필리핀에서는 미군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며 중국은 일본에 대해 이 지역에서 경제적 미래를 보장받기 원한다면 미국과의 정치적 유대를 약화시키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넌지시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초, 이 모든 상황들은 부시 정권(regime)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미국에서 반전운동은 급속한 속도로 확대되면서 민주당을 부시의 세계정책에 대한 진정한 반대파로 끌어올릴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당은 2004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부시는 그야말로 '체제전환(regime change)'을 달성하는 셈이다. (이라크가 아닌) 영국과 스페인과 미국에서 말이다. 나아가 미국은 더 이상의 무적의 군사 초강대국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자, 결론을 맺어보자. 만일 부시가 이긴다 해도 이는 지정학적 현상유지에 그칠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부시가 원했던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만일 그가 진다면 그는 정말로 지는 것이다. 부시가 이번 도박에서 이길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9.11 이후 미국이 그토록 불가능한 입장에 스스로를 몰아넣을 필요는 없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미 뉴욕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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