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09/23 14:05

양산 시내에서 신불산이란 생전 처음 보는 산으로 차가 들어간다. 산의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서면 공동묘지가 있고 여기저기 한복입은 여자들이 명절이라고 곱게 단장하고 길 가에 서 있는데 그 모습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짙은 색조화장에 밝은 톤으로 염색한 머리와 뾰족구두..그리고 한복의 매치는 부조화의 경계를 넘어서 조잡하기까지 하다.

신불산 고개를 계속 따라 오르다가 정상에 도달하면 목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저 푸른 초원위에.. 소들은 그들의 집에 들어가 있는 듯 평온한 광경이다. 길 가에 컨테이너안에서는 조금 늙어 보이는 아저씨와 그보단 아리딴 아줌마가 이것저것 먹을 것을 팔고 있는데 칡차,팥빙수,컵라면..등등의 요기꺼리이다. 컨테이너 안에는 나무로 만든 발을 사방으로 붙여 놓아서 천연의 둥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절벽쪽으로는 창까지 틔워서 절벽 아래로 시원스런 광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산등성이와 등성이 사이. 즉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살아간다.

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있으면 아무리 많이 돌아다녀도 길눈이 밝아지지를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의 특성상 그렇다고도 하는데..암튼 "넌 운전 하면 안돼"라고 항상 듣는 말 때문에 여태 면허증도 따질 못했다. 하지만 난 지금 운전석에 앉더라도 운전할 수 있다.

길을 계속 가다보니 밀양댐이 보인다. 두 갈래로 수문이 틔여 있는데 한 쪽으로는 양산 시내로 또 한 쪽으로는 밀양으로 물이 간다고 한다. 산들에 둘러싸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 속에 예전에는 고례 마을이 있었다. 물 색깔이 영 께름직하다. 산에 물 색깔이 어찌 커피우유색깔인지..ㅜ.ㅜ;
그러나 산의 꼭대기로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는 절경은 멋지다. 팔을 차 창 밖으로 내밀어 부딪히는 바람을 느끼는 것은 정말 Cool! ..하다. 차가 없으면 이런 곳을 올 수 없다. 운전하고 싶다.는 한 마디에 다시 한번 비웃음이 되돌아 온다.

밀양 표충사는 한가하다. 명절 첫날이라서 그런지 사람도 없고, 잘왔다 싶다. 표충사에 관한 설명 표지판을 모른체 넘어가려 했는데 니가 사학과면서 이런걸 읽지 않고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다며 나무란다.. 실은 유래..에 관한 설명 표지판을 읽는 것은 별로 재미 없다.

차를 타고 가지 않음 좋을 곳. 만약 밀양 표충사를 가려면 저 밑에 길가에 차를 대어 놓고 표충사로 가는 숲길을 걸어서 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 숲길이 참 멋지다. 통도사의 숲길과 맞먹는다.

무열왕때 이 절을 지었단다. 인도에서 어떤 승려가 와서.. 왕의 총애를 받고..여기에 절터를 잡고 죽림사라고 첨에 만들었다가 ..원효대사가 등장하고 사명대사..등의 많이 들어본 스님들 이름이 차례로 등장했다가..임진왜란때 이 스님들이 이 절을 근거로 왜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현종 때 표충사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충의를 표하는데 헌신을 다 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겠거니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표충사라고 쓴 현판의 글씨는 정말 감탄스럽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우리 나라 절은 원효..의상..사명..을 비롯한 소수의 스님들이 대부분의 절을 지었다는 게 좀 이상스럽다. 다녀본 절들에서 그네들의 이름을 보지 않은 절이 어디 있던가.
이 절은 도대체 누가 지었단 말인가.

절 내부는 안정된 평지이다. 평온하고도 아늑하고 따뜻한 이곳은 넓기도 하다. 여유가 있다. 스님들도 명절 쇠러 갔는지 안보인다. 붉그레한 꽃들이 쫑쫑 피어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대웅전이 아주 안정감 있게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깨끗하다. 대웅전에 들르기 전에 보리수 열매로 만든 간주를 샀다. 예전부터 사고 싶은 것이었는데 그때는 귀신을 쫓는다는 대추나무 간주로 부적으로 삼았다가 이번에는 깨달음을 상징으로 삼고 있는 보리수 나무의 열매로 바꾸고자 한다. 어쨌거나 동글동글한 알갱이들에게 기대하고자 하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의 망탈리테..내가 과거로 부터 연결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간혹의 순간은 지금처럼 간주 하나를 사고 희색이 만연하는 상황이다. 나는 곧 나의 어머니이며 나의 할머니이며 그들과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

보리수 열매는 겨울쯤에 사려할 때 흰색이었는데 지금 사려니 니 노랗게 익은 색깔이다. 찌는 여름의 시련을 견뎌서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의미부여 해본다. 깨달음의 진수는 너와 같이 고비를 넘겼을 때 그 결정체가 더 고귀하다는 것을.
그런데..
깨달음은 무엇인가..무엇을 깨닫는단 말인가... 깨달음과 믿음은 같은 것인가? 해명되지 못한 믿음은..도피가 아닌가..나약함이 아닌가.(이런 식의 글을 쓰게 되면 꼭 이후에 삭제하게 되던데..걱정이다.--)

날짜:2002/09/23 14:05

표충사의 대웅전에 앉아서 스님의 독경소리를 듣는다. 들어본 염불 중에서 꽤나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런 생각도 든다. 스님 랩 참 잘 하시는군요.. 이런 철딱서니 없는 젊은 사람에게 스님은 그러겠지.."니들이 염불을 알어?" 아무튼..그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p 대웅전 뒷편에 보리수 나무가 있다. 처음 보는 나무는 아니건만 그것이 보리수 나무라고 하니깐 새롭게 보인다.

가장 좋았던 것은..남쪽으로 산들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누각이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법당이라고 하는데 올라가면 안될 듯한 표지판이 하나 있지만 그냥 신발 벗고 올라섰다. 법당이라서 그런지 바닥이 깨끗하다. 예전에 병산서원에 갔을 때처럼 남쪽으로 보고 앉아서 우두커니 앉아 자연을 응시한다. 정말 멋진 순간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하나 둘 따라 신발벗고 들어와 같은 포즈를 취한다. 멀찍이 떨어져 앉은 연인들이 눈을 거슬리게 한다..신성한 법당인데..--;;

4시가 넘으니 산에 그늘이 진다. 산의 검은 그림자가 압도적이라 더 이상 머물 마음이 들지 않는다.

훌훌 털어버리고..다시 산을 내려온다. 내일은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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