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5년 여름, 책을 즐겨 읽는 지인들에게 끊임없이 박민규씨 소식이 들려왔다.

표지도 직접 디자인 했다더라, 표지속 동물들 눈이 참 선하지 않니?, 사인회 하는데 일일이 한 사람씩 악수하더라, 그것도 일일이 왼손을 오른팔꿈치에 대고.

너무너무 아까워 한편씩 아껴읽는 정도라니 이쯤되면 안 읽어 볼 수가 없다.

 

<카스테라> 이건 왠 쌩뚱맞음?

냉장고 속에 처박아버린 소중하거나, 세상의 해악인 것들이 카스테라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그 카스테라의 맛은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맛이었다니, 이건 마치 나에게 이런 쌩뚱맞음을 용서해 달라는 것 같잖아!

어쨌든, 난, 냉장고와 소통하는 그 지독한 외로움에 그를 용서해 버렸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래..과연 너구리야...  

현 세상이 억압해 놓은 스테이지 23의 세계. 그 즐거움의 세계에 뛰어들기 위해선 너구리가 되어야만 하다니! 더 기막힌 것은, 물론 현 세상의 사람이 인생과 사회의 비열한 법칙 앞에 위로라도 받아야 했지만 하필이면, 현 세상으로부터의 이해도 위로도 포기해버린 너구리에게서라니. 이건 해도 너무하잖아.

이토록 서글픈 우리네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유쾌한 문장으로 그려내다니.

 

하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도 만만치 않다.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아들이 그러하듯이, 결국엔 다른이들도 같은 산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팍팍한, 숨쉬기도 힘든 알바인생을 이거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유쾌한 문장으로 풀어내더니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라니. 사라져버린 아버지, 그 아버지로 추정되는 기린 앞에 이런저런 집안의 근황을 알려주며 경제도 차차 좋아질 거라며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들에게 무관심한, 그러나 잿빛의 눈동자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라니.

 

지구는 알고보니 거대한 개복치였고, 오리배를 타고 세계를 날아다니고, 세계의 거대한 음모를 야쿠르트 아줌마가 한방에 날려버렸고, 아아..이런, 외계인이 농작물을 싹쓸히 해 가며 KS 마크까지 남겨두는 센스를 발휘하다니. 이런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고, 외롭고, 서글픈 이야기들이라니.

 

박민규는 따뜻한 작가이다. 그리고 유쾌하다.

재치있는 문장들 너머는 외롭고 서글프다. 이 외로움과 서글픔을 해학으로 승화시켜 우리 앞에 카스테라 하나를 내어놓았다. 우리는 이 카스테라를 자신의 기호에 맞게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이다.

 

오랜만에, 가슴은 저려오지만 입가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좋은 책을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