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반전쟁 - 앨빈 토플러
앨빈 토플러.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새로운 변화에 의해 범지구적으로 새로운 조건이 만들어지고 제3물결 전쟁형식이 현실화된 지금, 아직까지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제3물결 평화형식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위기라 할 수 있다."-p370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제3의 물결을 주창한 저자답게 제1물결에서부터 제3물결에서까지의 경제상황과 그에 수반한 전쟁양상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각각의 물결 속에서의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제1물결에서 제2물결로 넘어갈 때, 그 두 세력 사이의 주도권 경쟁, 제2물결에서 제3물결로 넘어갈 때의 주도권 경쟁 등도 흥미로웠다. 실제로 제2물결의 세력과 제3물결 세력 사이의 주도권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각국의 군비 상황을 봤을 때 아직 제3물결의 승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아마 저자는 이 점이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계속해서 제3물결이 도래했고 그 제3물결 속에서의 전쟁이 어떠할 것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가 끊임없이 제3물결 속에서 치뤄질 전쟁에 대해서 가정하는 것은 제3물결 속에서의 전쟁을 제시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상황을 가정하고 이를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제3물결에서의 전쟁은 총보다는 지식이 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리고 경제에서와 마찬가지로 탈대량화가 일어난다. 제2물결에서처럼 대량파괴 무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느냐가 아닌,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원하는 곳만 파괴할 수 있는 스마트 무기들이 개발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무기의 목적이 사람을 죽여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닌 적들의 행동을 방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군사 조직은 혁신을 해야만 한다. 군사교리는 물론이거니와 그 조직의 규모, 운영 방식 등 기존의 제2물결 전쟁이 아닌 제3물결 전쟁을 대비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3물결 전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이는 한 국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제3물결 전쟁은 세계 1,2차 대전과 같은 국가 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의 민족, 종교 갈등에서 발생할 수도 있고 반정부단체, 테러조직 등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은 제3물결 속에서 스마트 무기로 무장을 할 것이고 이는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생화학 무기, 기후를 이용한 무기, 우주를 이용한 무기 앞에서 전쟁 밖의 사람들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제3물결 전쟁만이 아니라 제3물결 반전쟁 역시 점점 더 지구 밖의 활동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우리는 역사적으로 우리의 반전쟁 대처가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그런 고민은 이미 30년 전에 했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쩌면 이 때의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제3물결 반전쟁에 대해서 너무 늦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세계적인 인식이 아직까지 전쟁에 대해서는 제2물결 수준에 머물러 있고 때문에 반전쟁도 제2물결 수준에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이미 우리에게 제3물결 전쟁은 현실이라고.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미래라고. 핵무기를 막을 방법을 30년 전에 고민했어야 하듯이 제3물결 반전쟁도 바로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비살상무기에 대해서 나오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아닌, 무력화 시키는 무기 위주로 가자는 건데 예를 들면 설사를 유도하는 가스, 금속을 녹이는 스프레이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적을 무력화 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무기의 이면에는 정치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요즘 반값등록금이 화두인데 이를 위해 집회를 하는 학생들에게 설사를 유도하는 가스를 살포해서 집회를 해산하려 든다면?? 이러한 위험 때문에 비살상 무기를 주장하는 모리스 부부는 이러한 무기들의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비살상 무기의 개발이 인권을 위협할 수도 있어 이를 군대의 독단적인 판단에 맡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글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이것은 정말 제3물결 전쟁의 아주 작은 일부인데..이 일부에서도 이렇게 논란거리가 많고 이에 대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는 이러한 논의는커녕 이런 상황에 대한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정말 큰 일이 생겨 언론에서 갑자기 이런 문제들에 대해 떠들어대지 않는다면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을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세계 평화와 인류 공공의 선에 대해 기여하고 싶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디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제 제3물결 전쟁에서 미디어의 역할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제는 미디어가 전쟁을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전쟁을 만들어 내고 군인들 보다도 먼저 전투지에 도착해 대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북한에서 서울불바다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게 지금과 같은 시대에 나온 발언이었다면 아마도 엄청 화질 짱짱한 동영상 한편 만들어 뿌리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너무 선명하고 사실적이어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불러 일으킬만한. 그랬다면 정말 서울불바다라는 표현이 북한의 엄포가 아닌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을 것 같다.

반전쟁의 한 활동으로 방위산업체들의 구조조정, 국방예산 삭감 등이 있는데 이러한 활동들은 역설적으로 전쟁의 시민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기존에는 방위산업이 이 분야에 특화된 기업들로만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민간 기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민간기업에서 개발한 기술, 제품들을 전쟁에서 이용하는 것이다. 미래의 권력은 대량 살상무기를 많이 가진 나라가 아니라 첨단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꼭 나라라고만은 규정할 수 없다. 어떠한 단체가 어떤 식으로 권력을 잡을지 모르는 것이 바로 제3물결 전쟁일 것이다. 힘 없고 가난한 나라라 하더라도 누구나 지식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다는 것. 지식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힘의 원천이라는 것. 바로 이 점이 제3물결 전쟁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제3물결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기존에는 가난한 자들에 의한 폭동이 많았다면 제3물결에서는 부자들의 분리주의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점점 양극화 되어가는 속에서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더 이상 가난하고 못 배운 이들과 나눌 생각이 없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만 하더라도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통일은 꼭 해야 한다. 단, 내가 죽은 후에! 이는 부자 남한이 가난한 북한을 먹여 살리지 않겠다, 나의 부를 북한과 나누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이것은 통일의 걸림돌이기도 하지만 막상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어찌됐던 가장 중요한 것은 반전쟁, 그리고 평화형식이다. 제1물결에서의 평화형식은 일대일 싸움이었다. 두 부족 중 대표자 한 명씩 나와 결투를 벌이고 그 결과를 부족들이 수용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대량 살상을 막았다. 제2물결은 이미 전쟁이 대량파괴, 대량살상의 전쟁이었고 이러한 전쟁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가지 계약, 조약, 기구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제3물결의 평화형식은 어떠해야 할까. 아직까지 우리는 제3물결 평화형식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3물결 평화형식 또한 그 출발점은 지식일 것이라는 점이다. 무기들은 점점 스마트 해 지겠지만 바로 그 스마트의 맹점인 프로그램을 무력화 할 수 있다면 무기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있게 된다. 무기 생산 공정에 접근해 몇몇 시스템의 프로그램을 바꾸어 무기가 전투에서 아예 기능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런 이야기들은 허황된 이야기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나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트로츠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나 전쟁은 나에게 관심이 있고, 제3물결 전쟁형식이 현실화된 지금, 제3물결 평화형식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러므로 하루 빨리 제3물결 전쟁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평화형식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지난 시대의 핵무기와 같이 우리가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가만히 손을 놓고 있어서만은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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