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도입부,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사랑도, 운명도, 결혼도, 속박도 싫다던 썸머. 연애는 하고 싶지만 연인은 싫고, 연인들이 하는 연애짓을 하긴 하지만 그 대상은 연인이 아닌 친구여야 한다. 썸머는 거의 글루미 썬데이의 일로나 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이건 영화. 이런 장단에 함께 맞춰주는 남정네가 있었으니 그것은 톰. 가련한 톰. 너의 잘못은 애초에 나는 너와 친구가 아닌, 연인 사이가 되고 싶다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 점이다. 그랬다면 적어도 그렇게 500일 동안 고문 당하진 않았을텐데. 너의 오케이로 인해 썸머는 불가능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반전은 그렇게 속박을 싫어하던, 그래서 누가봐도 연인임이 분명한 톰과의 사이도 인정하지 않던 썸머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 결혼의 이유가 다이아반지였든, 톰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운명의 이끌림이었든 톰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인 거지.

서로에게 서로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기는 했는데 이건 영 톰에게 불리한 게임이었다. 사랑에 대한 냉소를 품고 있던 썸머는 톰이 말했던 운명을 알게 되었다며 톰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가버리고, 즉 썸머의 운명의 상대는 톰이 아니었지만 톰에게 있어 사랑에 대한 냉소에 눈을 뜨게 해 준 것은 바로 썸머였던 것. 여러모로 손해보는 장사를 한 톰.

이런 톰에게 감독이 내려주시는 선물, 어텀. 이름가지고 장난질 친 거는 생략하고. 이제 운명이 아닌 우연에 기대를 하게 된 톰. 하지만 난 의문이 드네. 과연 우연이 운명과 크게 다른 것인가 하는.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 되는 거 아닌가? 우연으로 시작해서 운명이 되는 거 아닌가? 애초에 그 운명이라는 것도 우연에 기인한 것 아닌가? 사실 나는 운명을 대체하기 위해 우연을 끌여들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명이나 우연이나 한 끗 차이. 차라리 생활 속의 익숙함? 미처 우연이니 운명이니 그런 거 느끼지 못했던 대상에게서, 그 익숙함 속에서 점자 서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껴 가면서 사랑보다는 우정, 신뢰에 기반한 사랑을 선택하는 쪽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음..이렇게 따지고 있는 걸 보니, 역시 이 영화는 알랭 드 보통과 관련이 있는 듯. 영화 속에서 나온 책도 알랭 드 보통 책이었지 싶은데. ㅎㅎ 여하튼 썸머의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되면서도 톰의 입장에서는 정말 썸머가 독한년일 수밖에 없구나 싶기도 하고 그랬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할 말이 많은 영화이지 않을까. 실제로 극장에서 커플들 하는 얘기 들어보니 남자들은 좀 관점이 다르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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