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요 몇년 동안 나는 여유가 된다면 수학을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버퍼링이 걸린다고 느꼈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예를 들면 3 곱하기 3은 9인데, 이게 바로바로 생각나는 게 아니라 3더하기 3은 6이고 여기에 또 3을 더하니까 9. 이런 식으로 좀 버퍼링이 걸리더란 말이지. 그래서 다시 수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생각할 때 좀 더 그 생각의 단계를 단축시키고 좀 더 논리적으로, 조직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이 영화를 보고..나는 다른 측면에서 수학이 공부하고 싶어졌다. 좀 더 철학적인 측면에서 수학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고나 할까. 순수 자연과학을 하는 분들을 보면 그 분위기가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아마도 그들은 자기 연구분야를 통해 우주를, 섭리를 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거기다가 그들은 꾸밈도 없다. 딱딱 떨어지는 깔끔함 속에서도 허수, 루트를 통한 풍부한 상상력과 포용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금상첨화. 영화 속 박사가 그랬다. 딱딱 떨어지는 계승, 우애수, 완전수 등의 깨끗함을 사랑하면서도 루트라는 기호가 가진 포용력을 생각할 줄 알고 허수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 상상력까지 생각할 줄 알았다.
흔히 숫자만을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은 왠지 정없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그것은 아마도 보이는 숫자만을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내가 이해하기엔 좀 어려웠지만 그 수식에 포함된 기호를 보면 박사는 눈에 보이는 숫자만이 아니라 눈에 그 너머에 있는 숫자까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박사 그 자체가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박사가 전해주는 이야기들도 좋았다. 숫자를 통해 풀어가는 우주의 자연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런 박사에게 숫자에 대한 이해를 키워갔던, 장래에는 수학 교사가 된 루트의 이야기도 좋았다.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수업을 하는데 내가 만난 수학 선생님이 루트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내가 좀 더 수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 속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루트의 어머니인 가정부였다. 이 영화는 이 가정부가 없다면, 이 가정부가 이런 성정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성립할 수 없는 영화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박사의 기억은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가정부는 출근할 때마다 현관에서 박사와 똑같은 대화를 되풀이 해야 했다. 아무리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이미 들은 이야기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언제나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진지하고 성실하게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녀 이전의, 대부분의 가정부들은 견뎌내지 못하고 그만 두었지만 그녀는 이를 힘들어하기 보다는 박사를 이해하고 박사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 스스로 숫자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박사가 기억장애를 앓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박사와 같은 사람은 그렇게 찾아보기 힘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가정부와 같은 사람은 어떨까? 박사가 가진 284와 가정부가 가진 220의 숫자. 우애수. 이 우애수가 흔치 않은 것처럼 이 박사와 가정부의 조합도 흔치 않은 조합이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질척하게 흐르지 않고 처음의 그 깨끗함 그대로 완전무결하게 끝난 것 같아서 좋았다. 처음의 그 순수함을 마지막까지 유지한 참으로 아름답고도 순수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