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외수 오감소설 '광기'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칼, 이제 시작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다 읽었다-라기 보단 이제 시작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

마지막 장면에서 박정달의 피를 묻혀야만 완성되는 칼, 부분에서

처음엔 박정달이 누군가의 피를 묻혀야만 한다면 다른 누군가를 지목해 죽일 수 없다는

양심의 발로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기로 하지만 예정된 날 하루 전에 왜 저 노인의

피이면 안되는가, 라는 생각에서 한밤 중, 몰래 노인을 죽이려 한다. 하지만 결국엔 그 노인에게

당해 예정대로 자신의 피를 묻히게 되는데...이를 두고 칼의 완성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둥,

결국엔 박정달의 그 칼의 완성에 대한 집착마저도 버려야 했다는 둥, 하는 해석들이 있지만

난 이게 너무나 인간적이고 정상적인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거창하게 칼의 완성을 위해 초연하게 목숨을 내어 놓는 설정이었다면 오히려 이 소설의

설득력이 떨어졌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굳이 칼의 완성에의 희생이니 집착이니 하는 것들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나를 설득할 순 있었다. 박정달의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사명이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결국 박정달은 도구일 뿐이었다.

그 신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선택당한 도구. 그 완성과 함께 사라져버린 도구.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낸 그 신검은 결국엔 혼자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그 마음대로 처분조차 할 수 없으며 결국엔 그 칼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고 그리고 끝내

정체를 밝히지 않은 한 노인에 의해 그저, 선한 의지로 이 칼이 씌여질 것이라는 것 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다. 이미 신검을 만들기로 한 뜻이 있었고 그에 선택당한 한 사람이 있었고

그리고 그 결과물은 이미 그 뜻을 세웠던 존재들이 가져가 선한 뜻대로 사용되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달이라는 사람은 그 칼을 만들어야만 하는 사명을 지닌 것이겠지.

과연, 누구에게나 어떠한 뜻에 따라 부과되는 사명이 있는 것일까?

내가 얻은 결론은, 원하는 자에겐 부과 된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던 박정달은

굴욕스러운 순간에도 오로지 복수라던가, 증오라던가의 감정 이외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그들이 자기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를, 그들이 사회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인정 받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었고, 그 소망의 발로로 신검에 대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런 것이지 않을까. 바라는 자에게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우주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차원을 넘어선 힘들은 그런 사명을 지닌 자들의 행보를

돌보아 주고 격려해 주고 이끌어 주어 그들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은 아닐까.

결국엔 하나이다. 결국엔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가 덜컥, 하고서 나에게 사명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그러한 사명을 이끌어 당긴다는 것.

언뜻 보기엔 하늘에서 먼저 뜻을 세우고 그에 맞는 적임자를 골라 내어 사명을 지운 듯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뜻이라는 건 한 사람의 가슴에서부터 하늘에까지 가 닿게 되고, 그 하늘로 가

닿은 뜻은 다시 사람에게로 가 닿게 되는 건 아닐까.

음,,처음부터 말했지만 이제 시작인 거라구. 나는 아마도 이 책을 좀 더 연구해 봐야 겠으며

맨 마지막의 도표는 내가 죽기 전까지 해독할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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