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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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아주 약한 동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약한 동물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을 자처하며 생태계의 맨 꼭대기에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 책의 내용이 이 의문에 대한 절대적인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는 할 수 있다. 정자전쟁. 우리는 무수한 세기에 걸친, 치열한 정자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정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이 유전적 정보가 쌓이고 쌓여 우리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 인간 종족을 보존, 번식시킬 수 있었다. 수정의 성공도 실패도 결국엔 종족보존을 위한 전략이라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종족보존 시스템은 이젠 인구 과잉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모든 인간은 유전자 속에 강간의 유전자와 부정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이 강간과 부정이 자손을 남기는 데에 유리한 전략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동성애조차 남자의, 여자의, 유리한 전략 중 하나라고 하니 동성애를 비난하는 쪽에서는 과연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하늘의 뜻을 거스른다거나 남녀의 성역할에 위배된다거나 하는 이유로 동성애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남자는 남자로서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자손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여자 또한 여자로서 좀 더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자손을 남기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양성애자가 되고, 이들의 후손은 이들로 인해 양성애의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양성애자이지만 간혹 부작용으로 배타적 동성애자가 나오기도 하는 것일 뿐이라 하니, 과연 이 시대의 동성애자들을 어찌 감히 그들만의 잘못으로 치부하며 비난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강간을, 부정을 무작정 옹호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총, 칼, 핵탄두 등을 들고 하는 전쟁이 어떤 점에서는 좋은 점이 있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전쟁을 옳은 것으로 보진 않듯이, 저자는 강간과 부정이 인간의 어떤 무의식적인 신체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지에 대해 인간의 종족보존, 정자전쟁 등의 개념을 빌어 설명하고 있을 뿐, 강간과 부정, 그 자체를 인정하고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 또한 동성애로서 얻게 되는 유전자적 우수성,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자손을 둘 수 있다는 이점 등을 설명함과 동시에 동성애의 취약점인 질병으로의 사망, 불임 등 그 손실 또한 지적하고 있으며 전 생애를 비춰 보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비슷한 수의 자녀를 남기는 것으로 보아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 이전에 다만, 인간이 선택한 전략의 하나로만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난점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인간의 모든 전략적인 행위와 무의식적인 신체적인 행위가 모두 이 정자전쟁, 그리고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자손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로맨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건 애초에 번지수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 이 책을 탓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모든 행위가 오로지 종족보존의 행위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조차 낭만적이지 못하게 느껴지니 실로 안타깝다고 하겠다. 이 점에 있어서는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책을 통해 정자와 난자의 전략, 남자와 여자의 전략에 대해 정보를 얻었으니 자녀계획에 있어 어느정도는 통제가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이러한 시도의 우연인지 필연인지의 실패로 인해 결국엔 우리 몸은 우수한 유전자를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이런 정보도 다 소용없다 싶기도 하는 등, 실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 다 소용없다. 이 책에서 여자들이 건질 것이라고는 여자는 의도적으로 남자의 정자전쟁을 유발시키는 존재라는 것. 그리하여 좀 더 우수한 유전자를 선택해 수정시킨다는 것. 여자들의 자위 행위가 시기에 따라 임신의 유무에 기여하기도 한다는 것. 하지만, 온갖 성적 지식으로 무장해 임신을 하려 해도 여자가 판단하기에 임신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면 여자 몸은 수정이 됐다 할지라도 자연유산을 감행 한다는 것. 온갖 피임법으로 무장해도 그 유전자가 아주 우수 하다거나 상황이 임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하게 된다는 것. 머리 아픈가? 그냥, 하늘에 맡기고 살지어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을 지닌 인간이지 않은가. 최대한 자신의 가족계획에 따라 행해 보고 만약 자신의 가족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땐, 하늘의 뜻이라 여기기 보다는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자손을 남기려고 하는 우리의 본능이 작용한 것이라 믿고 우수한 아이로 길러내겠다 하는 것이 좀 더 속 편한 선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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