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지침서 (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중국소설은 처음일까? 뭔가 나도 모르게 읽은 작품이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중국소설임을 인식하고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혼지침서라는 책은 소설집으로  '처첩성군', '이혼지침서', '등불 세 개' 이렇게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첩성군은 '첩' 이라는 걸 다룬 소설이었는데 나는 조선시대 후궁들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실제로 본처는 본처라는 위엄만 남은 채 세 첩들을 대하고 있었고 둘째 부인은 그야말로 조선시대 후궁들 생각이 절로 날 만큼 간교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셋째 부인은 권력이니, 총애니 하는 것보다 자유를 갈구하는 듯 보였고, 이 작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넷째 부인은 나머지 세 부인들처럼 무서운 여자이진 않았지만 결국엔 또 다른 의미의 무서운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우물. 이 시대엔 남자에겐 다른 여자가 허용되었지만, 여자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우물은 때로는 자살의 장소가 되었고, 때로는 타살의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우물의 존재로 인해, 자유롭고자 한 여자는 끝내 자신의 자유를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혼지침서는?
이번에는 반대이다. 남자가 자유롭고자 이혼을 하고자 하지만 결국 남자 또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처첩성군에서는 남자가 강자였고 여자가 약자였지만 이혼지침서에서는 여자가 강자가 되고 남자가 약자가 된다.

그렇다면 두 작품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여자를 혐오스럽고 지긋지긋하고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그리고 있다. 처첩성군에서 네 여자를 거느리고 사는 남자는 네 여자에게 강자로 존재하지만 그는 내심 그 여자들을 지겨워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또한 이 여자들을 무서워 한다. 이혼지침서의 남자는 여자를 혐오스러워 한다. 자신의 아내임에도 혐오스러워 하고 그래서 이혼하고자 했지만 결국 이혼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아내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의 재혼 상대인 여자로부터 앞으로의 혐오를 엿봤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혐오를 아내 대한 무서움으로 합리화하고 그렇게 이혼에 실패한 채로 살아가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두 작품 모두에서 여자는 그렇게 그려진다는 거다. 그것도 남자가 본 여자가 말이다. 의문이 아니 생길 수 없다. 중국남자들의 여성관은 이러한가? 아니면 쑤퉁이라는 작가의 여성관이 이러한가? 아니면 단지, 이 두 작품에서만 이렇게 그려진 것일 뿐인가? 앞으로 쑤퉁의 소설들이 속속 출간된다고 하니, 이 참에 쑤퉁의 여성관이든, 쑤퉁 작품 속의 여성관이든,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이 책 말미에 쑤퉁을 두고 그는 누군가를 계몽하려는 자가 아니라 신랄한 이야기꾼일 뿐이라고 말한다. 공감한다. 그는 진정 이야기꾼이다. 이 책은 잡으면서부터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고, 이야기 또한 매끄럽게 잘 넘어간다.그가 진짜 이야기꾼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는 그런 글이었다. 재밌고, 잘 읽히는. 진짜 이야기꾼의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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