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애덤스미스 구하기라는 제목에서 이 책은 애덤스미스에 관한 책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구하기'라는 말에 있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의 시작은 해럴드라는 한 남자가 경제학자인 리치의 집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된다. 이 해럴드라는 남자에게는 자칭 애덤스미스라고 하는 영혼이 빙의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로 줄리아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자칭 애덤스미스라는 영혼이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해서 지극히 현실적이며 이성적인 리치가 곧이 곧대로 믿어줄 리 없다. 그는 애덤스미스를 시험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면서 그가 애덤스미스임을 인정하게 되고 그리고 그의 뛰어난 지성에 감복하게 되고 후에 그가 떠났음을 알았을 때는 시련이라도 당한 듯이 허전해하게 된다.

 

 여기서 애덤스미스는 현 시대의 인물 속에 자신의 영혼이 들어가면서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하며 자기 스스로를 구해내기로 한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선택된 리치는 이 시대 어느 경제학자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리치가 대변하는 이 시대 상황이란 무엇인가. 바로 시장원리의 기본이 무너진 시대 속에서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 애덤스미스는 그 무너진 기본, 시장원리를 떠받치고 있는 도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적절한 예를 들어놨는데 잠시 살펴보자.

 

 해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해달은 지난 2세기 동안 수렵의 대상으로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가죽에 대한 높은 수요 때문이었다. 해달의 운명은 그 유명한 '공공 목장의 비극'을 따르고 있다. 해달은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공공의 자산이었다. 따라서 해달은 보호하는 특정 개인이 금전적 이익을 거둘 수는 없었다. 대신 해달을 수렵하여 상당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은 늘어났다. 해달의 수가 적어질수록 뜻하지 않았던 결과가 생겨났다. 해달은 성게를 잡아억기 때문이다. 천적이 없어지니 성게는 배로 증가하여 수중 식물들을 먹어 치웠다. 바닷속 해조류 숲이 사라지게 되자 그곳에 살던 어족들도 무더기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그 물고기를 먹던 새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수렵꾼들은 이득을 얻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훨씬 큰 정도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이 생태계 재앙은 1911년 해달의 수렵을 금하는 국제 협약이 체결되면서 일단락 지어졌고 해달의 수는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었다.'

 

 이 이야기는 해달을 그것이 속해 있는 환경과 따로 떼어 이윤을 내기 위한 단순한 상품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시장과 제도적 조직, 사회적 가치가 모두 얽혀 있는 통합 체제다. 비인격적인 시장을 다루는 수학적인 모델을 가지고는 그 복합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애덤스미스는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을, 그들의 이기심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또한 애덤스미스는 독점과 노동력 착취 등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가 그리던 시장은 제도적 조직, 사회적 가치가 모두 얽혀 있는 통합체로서의 시장과 그 속의 사람들은 각자의 본능과 이성이 적절히 결합된 이기심과 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즉,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들은 애덤스미스 때문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경제학자와 그 속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기계처럼 애덤스미스 하면 보이지 않는 손 하면서 여기까지만 생각할 뿐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기 이전에 썼던 도덕감정론은 까맣게 잊고 있기 때문이다. 애덤스미스가 말했던 자유시장만을 쫓을 뿐, 그 자유시장의 전제조건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이 책에서 다시 불려 나온 애덤스미스는 자유시장은 여전히 지지하면서 자신이 일찍이 말했던 인간의 덕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 속에 좋은 구절들이 많은데 잠깐 소개를 하자면 '모든 경제적 활동은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에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한다.(윌리엄 레트윈)', '이기심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이기심을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 자신의 행동의 타당성에 진심으로 신중을 하가는 것이...덕의 진정한 정수이다.(애덤스미스)'. 이 외에 내가 진정으로 감동을 받고 개인적을 반성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내가 정리를 좀 해서 말을 하자면 이런 것이다.

 

 애덤스미스는 양심은 본능과 이성 두가지를 모두 사용하여 형성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자기보존이나 자기애의 본능은 한계를 넘지만 않으면 고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인정받고자 하는 본능 또한 있는데 이것은 타인, 자신 모두에게 해당한다.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 그 행동을 할지 하지 않을지에 대해서 내면에서는 대화를 벌인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고 해도 자신이 상상하는 관중,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관중의 인정을 토대로 결정을 내린다. 즉, 자기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다. 애덤스미스는 이러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양심을 계발할 수 있다고 한다.

타인과의 동감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타인과의 동감이란 내 느낌이 적절하다고 타인이 인정해 주는 것인데 이러한 타인과의 동감은 상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상상은 진정한 인간이 되라고 조물주가 내려 준 선물과도 같다. 일단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게 되면 나는 행동과 감정을 의식하게 된다. 감정이나 행동이 실제로 적절한지 보기 위해 그것을 주시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이 나를 보는 것처럼 내 자신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 연극에서 배우일 뿐 아니라 '공정한 관객' 이 되는 것이다.

공정한 관객은 양심을 창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우리는 타인이 던지는 외부적인 찬사를 얻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서 나오는 내부적인 존경과 찬사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찬사에 부응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칭찬받기에 마땅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확실히 양심이 인간의 나약함에 패배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적절한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양심에 물어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자신과의 대화라는 키워드로 집중된다. 자신과의 대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기 가치관을 세우고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어떠한 일에 앞서 그 일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일인지를 점검해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일을 할 때에만 우리의 양심은 평온할 수 있다. 이 자신과의 대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이는 즉, 가치판단의 결여가 될 것이고 이렇게 가치판단이 결여된 상태에서 행해진 행동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내가 자신과의 대화를 재개할 때 어떤 형식으로든 내 양심에 상처를 주게 된다.

 이 책은 주로 경제학을 다루고 있지만 그 경제학 속엔 인간도 포함되어 있고 그 인간이란 도덕이 살아있는 인간을 말하고 있기에 나에게 이런 반성을 하게 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신과의 대화를 게을리 했는지 그래서 간혹 내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저질러 놓고 그 후에 얼마나 아파했는지 등을 떠올려 볼 때, 자신의 가치관, 양심을 위해서 자신과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시장 또한 이러한 자신과의 대화를 게을리 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순들이 발생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시장의 처음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위한 시장이었는지 그러한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본 전제들이 무엇이었는지 즉, 시장의 가치관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게 되고 이야기 하지 않게 되면서 시장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까? 애덤스미스가 원죄인 양 애덤스미스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고 애덤스미스의 본질을 알지도 못한 채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도 있고 한 것도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여하튼,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아, 애덤스미스가 이런 말도 했구나,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나이를 조금 더 먹고 공부를 조금 더 하고 내가 조금 더 변함으로써 다시 한번 이 책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참, 너무 애덤스미스에 대한 이야기만 했는데 그야말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자면 책은 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일단 시작하기는 쉽다. 친구에게 이 책을 빌려 줬더니 처음 몇장만 읽고는 재밌다고, 재밌을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읽다 보면, 즉 애덤스미스와 경제학자 리치가 영적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시장이 어떻고 도덕이 어떻고 하면서 조금 심각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 부분을 재밌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그냥 가볍게 소설처럼만 보고 싶었다면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적절한 예로써 활용 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나오고 있으니 소설로만 보려 했던 사람들도 이 책을 읽는 데에는 크게 어렵지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던 점은 포커를 치는 장면에서 여러 철학자들이 스미스의 친구로 나오는데 그 이야기가 좀 더 길게 그리고  여러 사상들을 적절히 엮어 내어 재밌게 구성 되어더라면 하는 점이었다. 뭐, 이야기의 중심이 애덤 스미스이니 굳이 다른 철학자들 이야기까지 깊이 다루지 않은 게 오히려 더 잘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냥 조금 아쉬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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