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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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으려 했었어. 어느샌가 나는 이외수선생님 글은 늘 똑같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그래서 이번에도 지난번에 나왔던 책들과 다르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보지 않으려 했었어. 물론, 그 작가의 세계가 작품마다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실리는 글들이 재탕, 삼탕이라면 오래된 독자로서는 사 보고 싶지 않다는 거였지. 하지만 그렇게 재탕, 삼탕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고 생각해. 선생님 글을 읽는 사람이 늘 오래된 팬은 아니기 때문이지. 더욱이 이 책은 인터넷 용어를 일상 생활용어 처럼 쓰는 젊은 아이들을 상대로 쓴 책이니 말이야. 새로운 독자들에게 자신이 쓴 글중 정말 이 글만은 소개하고 싶다는 글들은 재탕, 삼탕이 되고 있는 거겠지.
 

 어쨋든, 나는 또다시 선생님 책을 보게 되었어. 역시나 꽂히는 건 어쩔 수 없다고나 할까.

역시나 눈에 익은 구절들도 보이고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맥락의 글들도 보였어.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감동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들도 보였지.

 

 

"하늘로 보내는 겨울 엽서 - 하나님,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p79

 

 언젠가 선생님은 이달의 테마에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를 써 보라고 하셨어. 그때 선생님은 바로 이 글을 썼었나봐. 나는 한때 하느님을 원망했다는 회고로부터 앞으로는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있던 그 때에 선생님께서 단 한 줄,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를 쓰고 계셨던거지. 휴, 난 언제쯤 난 아직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괜찮다고 하는 것은 정말 괜찮다는 의미이기보다는 그냥 신경 끄십시오..에 가까울지도 몰라. 그리고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신 의미는 어쩌면 자신은 아직 좀 더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는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당신이 문화예술에 대해 높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영화나 소설에 서툰 칼질이나 해대는 악습 따위는 가르치지 마시란 말씀입니다. 제발 감상하는 습관부터 길러주시라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예술작품도 발전을 위해서는 칼질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하시지만 당신의 막돼먹은 칼질이 때로는 위대한 예술작품을 살해할 경우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 오늘은 술맛이 왜 행주 빨아낸 구정물 맛인지 모르겠네." -p108

 

 "예술이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카알라일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렇다, 태양으로는 결코 담배불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태양의 결점은 아니다." -p51

 

 그리고 여전히 예술에 대한 애정이 담긴 글도 보였지. 예술에 대한 편견과 편애. 이것은 끊임없이 예술가들을 괴롭히는 문제가 되겠지.

 

 

 "오석같이 경도가 높은 낱말이 있는가 하면 찰떡같이 점성이 높은 낱말도 있다. 저 혼자 반짝거리는 낱말도 있고 저 혼자 바스러지는 낱말도 있다. 언어의 맛을 볼 줄 모르면 언어의 맛을 낼 줄도 모른다. 건성으로 읽지 말고 음미해서 읽으라. 분석 따윈 집어치우고 감상에 열중하라." -p133

 

 

 이런 글을 쓸 수도 있고, 이런 글을 알아볼 수도 있고,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경지에 오르려면 나는 얼마나 더 내 감성의 날을 갈아야만 할까? 정말 작가가 의도한 것에 반의 반만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외롭지 시리즈 - 한적한 산길을 걷다가 날개가 기막히게 아름다운 나비를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는데, 곁에 있던 친구놈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너는 돈 안 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구나" 하고 씨부리면 지독하게 외롭지 말입니다." -p141

 

 하하. 공감해? 나는 적어도 저런 상황에서 지독하게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법한 자를 친구로 두고 있는 것 같애. 적어도 나를 지독하게 외롭게 만들지는 않을 친구들.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길을 가던 내가 잘못이냐 거기 있던 돌이 잘못이냐. 넘어진 사실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분명히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 -p28

 

 

 내가 나빳던 것은 아니었어. 하지만 결과적으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일들이 반복되는 거야. 늘 나의 운을 탓해보면서 그냥 넘겨버렸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독을 품게 되었어. 두번 다시는 그런 꼴을 당하지 않겠다...오랜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알게 된거야. 나에게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계속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그냥 체념하듯이 그냥 내가 다 잘못했다, 내 잘못이지 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은 그 문제에서 벗어나 보려고 하는 중이야. 더 이상 돌을 탓해서도 그리고 그걸 그냥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해서도 안 될것 같아.

 

 

 

 "낙엽에 쓰는 일기 - 이별해 본 적이 없는 이의 가슴에도 서늘한 이별의 아픔이 고이는 계절 - 가을." -p189

 

 선생님의 글은 짧은 글이라도 시 같은 그 흐름이 참 좋아.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무식을 무슨 명문대 졸업반지처럼 손가락에 착용하고 유치찬란한 타발로 미친 칼을 휘둘러대는 또라이들도 많더라. 제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주제에 허구한 날을 키보드나 끌어안고 타인을 비방하는 즐거움 하나로 살아가는 잉여인간들도 많더라. 하지만 그들도 정작 가슴을 들여다보면 저 깊은 외로움 어딘가에 아름다운 생각 하나쯤은 간직되어 있겠지?" -p197

 

 

 선생님의 세계를 이루는 한 부분일거야. 장외인간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마지막은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 아픈 사람들을 끌어안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몰차게 내치기도 하시지. 하지만 그렇게 내 칠 때도 선생님의 마음 한 구석은 이렇다는 말일 거야.

 

 

 "살아남는 비결 따위는 없어. 하악하악. 초지일관 한 가지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이면서 조낸 버티는 거야. 하악하악. 그러니까 버틴다는 말과 초월한다는 말은 이음동의어야." -p216

 

 ...위로가 될까.? 약간은 씁쓸한.

 

 

 

 

 책에 보면 정태련 선생님께서 그린 물고기 그림이 있는데

정말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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