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책을 덮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독서감상문이라든지 책의 리뷰를 쓸 때 제목만 대충 훑고도 써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여러번 읽어 책을 분석하듯 써 내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책을 읽고 난 후, 아련히 남은 감상 위주로 쓴다. 내가 그 책에서 보고 느낀 게 딱 그만큼 이거나, 아니면 꼭 그 부분이 내게 강하게 남았다거나. 이 책은 추리 소설이다. 추리하는 사람과 추리해야 하는 대상이 있는. 스밀라라는 여성은 이중적이며 혼합적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추리는 딱히 무언가를 밝혀내고야 말겠어! 라기 보다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맞물려 계속해서 무언가 밝혀지고 종국엔 그 자신도 제어하지 못한 채 그저 계속 가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물론 발단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 개인에겐 아주 중대한 문제. 단지, 한 소년이 왜 죽었는가에 대한. 경찰이 조사한 내용과 스밀라가 추론한 내용의 어긋남. 단지, 스밀라는 그 소년에 왜 죽었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찾고 싶었을 뿐이지만 소설은 그렇게 흘러가진 않는다. 하여, 이 소설은 그다지 긴박하지 않다. 긴박하기엔 밝혀져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상세하게 밝혀주지도 않는다. 독자들은 스밀라와 같은 상황 속에서 느린 템포로 이 사건을 끝까지 밝혀 낼 것인지 중도 포기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한국말로 옮겨 놓아도 한국말로 와 닿지 않는 번역과 함께. 이 고비를 지나게 되면 얼음과 눈이 말하는 진실 앞에 도달하게 된다. 이 자연물을 통해 작가는 몇몇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카니크, 히쿠 등의 단어가 주는 그린란드에 대한 환상과 함께. 정작은 추리소설 이지만 나에겐 전혀 추리소설로 와 닿지 않았던 책. 다 읽고 난 후, 추리 소설을 다 읽은 후의 후련함 보단 그린란드에 대한 환상과 스밀라와 수리공의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한번 더 읽어야 하는 필요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