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이미 제목에서 말해주고 있듯이 이 책은 마릴린 먼로와 그녀가 받았던 정신상담,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곁들여서, 주인공이 마릴린인 까닭에 헐리우드에서의 영화촬영이야기들도 간간히 나오고 마릴린의 애인들의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헐리우드라는 화려한 곳을 배경으로 마릴린 먼로라는 자극적인 여배우와 그녀의 죽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를 정신분석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전지식 탓에 이 책이 무작정 흥미로왔다. 마구마구 재밌을 것 같고 이야기의 호흡도 빠를 것 같고 뭔가 숨겨진 뒷 이야기로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것도 같고. 하지만, 아니올씨다였다.

 

 이 책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나는 마릴린이라는 사람을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져 한번씩 책을 닫아야 할 정도였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어렸을 때 전 제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생각했어요.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내가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하곤 했죠.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정말 나일까? 누군가가 대신 날 쳐다보는 건 아닐까? 내 행새를 하는 누군가가 날 쳐다보는 건 아닐까? 전 춤을 추고 얼굴을 찌푸려봤어요. ㄱ울 속의 제 모습도 똑같이 따라하나 보려고요. 전 아이들은 모두 상상 속의 세계에서 산다고 생각해요. 거울은 영화처럼 신기해요. 특히 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연기할 때 그런 기분이 들죠. 엄마 옷을 입고 엄마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엄마처럼 붉은색 립스틱과 볼연지를 바르고 눈에 검은색 아이라인을 그렸을 때도요. 그런 제 모습이 분명 섹시한 여자가 아니라 어릿광대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사람들은 그런 절 보고 웃었고, 전 울었어요. 이 모두가 진짜인지 환상인지 궁금했어요. 캄캄한 어둠 속 커다란 스크린 위에 비친 장면들은 행복이자 불안감이었어요. 하지만 스크린은 거울로 남았죠.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정말 나였을까? 어둠 속에 있는 어린 소녀인 나? 아니면 다 큰 여자처럼 보이는 희미한 그림자였을까? 나의 그림자? 전 그것들이 항상 궁금했어요." -p181

 

 

 이 책은 시간순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다. 1962년의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과거로 가 버리고

또 미래로 가 버리기도 한다. 도대체 이러한 배열의 패턴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그 고민의 대한 답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닫을 때 쯤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마릴린의 인생일지처럼 엮여진 이 책은 시작에서 마릴린이 죽었다는 것은 알려주지만 구체적인 정황까지 자세히 알려 주지는 않는다. 만약 시작부터 그렇게 마릴린의 죽음을 상세하게 다룬 후 나머지 이야기들을 했다면 이 책은 누가 마릴린을 죽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1962년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마릴린의 인생일지를 써 놓았다. 그 시점에서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심정이었는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마릴린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마릴린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를 써 놓았다.

그리고 책이 끝날 즈음이 되서야 마릴린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전에 이미 독자들은 마릴린의 인생을 들여다 보았기에, 저마다 이건 자살이다, 타살이다, 누가 의심이 된다, 등의 생각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왜 죽었을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책의 저자는 누가 마릴린을 죽였는지가 아니라 왜 마릴린이 죽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듯이 나는 마릴린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게 아닌 듯한 마릴린의 모습이 더 가슴에 사무쳤다.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 남들에게 미움을 받을까봐 어떻게 하면 남들이 기뻐할까 생각하며 마음 졸이는 어린아이. 그래서 벗으라면 벗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남자들에게서 찾고 끊임없이 약물에 의존하고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일부러 촬영시간에 늦고, 사람들이 자기를 기다려 주어야지만 자신을 원한다 생각할 정도로 자신감도 정체성도 없었던 마릴린. 설사 이 모든 게 그저 마릴린이란 한 인간이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었고 그걸 이겨내기엔 마릴린의 힘이 부족했고 설상가상으로 세상은 마릴린을 섹스심벌로 팔아치우고 마릴린의 정신병과 결탁하여 끊임없이 마릴린을 소모한 탓이라 할지라도 마릴린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 남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삶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네요.

 정작 내가 원하는 건 죽음인데."

-p239 (마릴린이 쓴 시)

 

 

 이런 시를 쓸 수 밖에 없었던 마릴린.

그녀의 생전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 한편 조차 본 적이 없다 할지라도 이런 마릴린 앞에 내 심장은 멀쩡하지 않았다. 부디, 그녀가 평안히 잠들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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