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약속
소르주 샬랑동 지음, 김민정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은근한 감동이 참 따스하게 와 닿았던 책이다.

이건 꼭 감동스러워해야 해! 이런 게 바로 감동인거야!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아프다기 보다는 따뜻해 지는 감동.

 

소르주 살랑동의 첫 작품이었던 말더듬이 자크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덕분인지

책은 쉽게 잘 읽혔다. 하지만, 그냥 술술 읽히기만 하진 않고 적절히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가게 끔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각각의 인물의 특징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고,

노부부에 대한 궁금증도 품게 되었으며, 그들의 어린 시절 일화들 속에서 지금 현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해 볼 수도 있었는데, 이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자,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어느 한 인물이 어느 저택을 찾는다.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벨을 울리고서는 그냥 가 버린다. 물론 이 집엔 노부부가 살고 있다. 이 노부부는 음, 누가

왔군, 이제 벨을 울리겠지? 이렇게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음 행동은 무엇인지 추측은

하면서도 문은 열어주지 않는다. 이 노부부는 참 다정해 보이는데 여자는 낱말을 맟추고

남자는 우표를 들여다 본다. 그리고 조곤조곤 나누는 이야기들.

 

그런데 왜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거지? 분명 존재하는 인물인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처음엔

집안에 숨어 지내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가 나중에 돌아가는 정황을 보고서는 시체를

유기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망각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죽음을 말하는 것이라는 그런 의미심장한 구절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그럼 이젠 대충 감이 잡히겠지? 그들이 그 저택을 방문하고 손님이 온 것처럼 벨을 누르고,

창문을 열고 식탁을 차리고 하는 것들이 결국엔 그 노부부를 잊지 않기 위함이었음을.

그리고 그들은 그 노부부에 대한 사랑과 갑판장에 대한 우정으로 그 수상쩍은 행동을

왜 그래야 하는지 단 한번도 물어보지 않은 채,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히 수행해

냈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에 각자가 이 노부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을 보면 역시 이 작가는 말더듬이 자크를 쓴 그 작가가 맞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형식이 어떻게 되었든,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든, 이 작가는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작가가 맞다는 사실이 또 기뻤다.

어떤 작품을 써 내든 작가의 이런 마음은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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