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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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그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눈으로 그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표시를 했다.

그가 다시 동정하는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어린 소년이 됐네!"

그가 미소 띠며 말했다.

그의 입이 이제 내 입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나직이 그가 계속 이야기했다.

 

"프란츠 크로머 아직도 기억해?"

나는 그에게 눈을 깜박여 보였다. 미소지을 수도 없었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겠니? 그리고 또 뭔가 있어! 에바 부인이 말했어. 네가 언젠가 잘 지내지 못하면 날더러 네게 당신의 키스를 해달라고. 나에게 함께 해준 키스를.... 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선선히 눈을 감았다. 내 입술 위에 가벼운 입맞춤이 느껴졌다. 입술에서는 계속해서 조금씩, 그러나 결코 줄어들지 않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사람들이 깨웄다. 붕대를 감아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완전히 잠이 깼을 때, 나는 얼른 옆 매트리스로 몸을 돌렸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 거기 누워 있었다.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지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중학교 때 데미안을 읽다 말은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와 '내가 데미안과 같이 특별한 존재는 아닐까?'라는 자아도취는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직업 때문인지 최근에는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것보다 서사적이고 실무적인 것에 더 손이 간다. 

원래 내 성향이 그 반대이지만서도 먹고 살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

그런 점에서 데미안은 기억 저편에 그냥 두는 것이 더 좋았을법한 작품이다.

여러가지 상징과 지루할 정도의 관념적 서술의 나열..

썩 와닿지 않았다.

아마도 20대에 읽었더라면 꽤나 좋아했을법도 한데.

 

1차대전이라는 종말과도 같은 현실에서도 헤세가 어떠한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는 있겠다. 

다만 독일 문학작품은 카프카도 그렇고 역시나 나와 궁합이 별로라는 깨달음을..

이 작품을 무엇으로 읽든 그것은 읽는 이의 몫이겠지만, 

성장소설로 본다면 성장기에 읽기엔 난해하고 지루하고, 성장한 후에 읽기엔 너무 느슨한 구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늘 읽어야지 마음만 먹던 마음의 짐을 하나 벗게되어 기분은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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