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특별판으로 거의 20여년만에 다시읽기를 했다.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이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실감했다. 

이 책은 남녀가 뒤바뀐 세상을 그린다. 
보다 정확하게는 단순히 뒤바뀐게 아닌 전혀 다른 인류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 모습은 현재 인류의 모습과 흡사하기도 하다)
짧지 않은 분량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많은 얘깃거리와 생각할꺼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쉽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대충이나마 정리해둔다.  

아 참,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문구는 이것이다. 
갑자기 그들은 "너는 성관계를 어떻게 하니?"라는 단순한 질문이 사회가 총체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265쪽.

1부에서는 충격적인 성애묘사 장면이나 무도회 장면이 먼저 눈에 띈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엔 나도 그런데 꽤나 민감할 나이였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은이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다. 
지은이의 관찰력이나 역발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용어, 설정이 등장한다. 

페호: 여자의 브레지어와 같은 기능을 하는 맨움의 성기에 착용하는 속옷.

최고등 동물은 수컷이 새끼를 돌보는 물고기: 우리문명은 동물의 '모성애'를 강조한다. 부합하지 않는 사례는 버려진다.

부성보호: 여성이 아이의 부성을 고를 수 있다. 사실 부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데서 모든 권력싸움이 시작되는게 아니던가.

ps(거세가위): 프로이트를 이런데 써 먹다니!

탄생궁전: 출산을 쾌락으로 묘사하는 역발상...(어쩌면 가능할지도. 문화의 힘이란 그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느님 어머니, 스파크스(맑스), 도나제시카(예수): 이름은 중요치 않다. 그 이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라.

이 외에도 참 많은 용어와 상황설정을 음미해 볼 수 있다.
혹자는 통쾌함을 느낄 것이고, 혹자는 욕지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 생각에 1부의 키워드는 이것이다.
확증편향.
역사는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 만들어내고, 학계의 연구라는 것 또한 힘에 의해 좌우된다. 
움이 권력을 잡은 사회에서 그려지는 움과 맨움의 모습은 확증편향의 연속이다. 
우리 문명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명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2부는 현실 여성운동에 대한 오마쥬로 읽을 수 있다. 
동성애, 의회진출과 좌절된 전복, 페호불태우기, 데이트 폭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트로니우스의 소설이 등장한다. 
그 소설은 이갈리아에서 보면 반대로 쓰여진 소설이다.. 
"결국, 아이를 낳는 것은 여자(women)야."368쪽-페트로니우스의 소설.
"결국, 아이를 보는 것은 맨움이야."13쪽-이 소설의 첫 문장.
'맨움'이라는 단어에는 아무런 표기도 없고,
'여자'라는 단어에 별도표기를 해야되는 세상.
그곳이 이갈리아다. 
그러니까 문명이란, 인간이 만든 세상이란 상대적이란 말이다. 

사실 이 소설은 첫 대목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너무도 낯설고 당황스러운 설정 때문이다. 
굉장한 불편함과 이질감을 동반하는데, 
재미있는 건 이 소설이 끝나갈 때쯤엔 페트로니우스의 소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아무렇지 않던 현실인데 한바귀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니 여간 이상한게 아니다. 
책 한권을 통해 단순히 지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살아본다는 것.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의심하게 된다는 것.
흔히 말하는 고전소설의 미덕을 갖추었도다.

내게는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길이 남을 소설.
강력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