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친구와 여러 차례 메시지를 주고받을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하늘이 이쁘다'라는 문구로 마지막 메시지를 대신하는 친구다. 그럼으로써 오전에 비가 왔다가 지금은 그쳤다는 사실과 그 예쁘다 못해 이쁜 하늘을 나는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우쳐주는 친구다. 그 친구는 그런 친구다. 사실 한국 남자가 하늘이 이뻐 보이는 것은 죄다. 마흔이 코앞인데 하늘이 이뻐 보이는 것은 더욱 죄다. 남편이자 가장이 하늘이 이뻐 보이는 것은 더더욱 죄다. 하늘이 이뻐 보이는 것 보다 더 큰 죄는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지은 죄가 많았다. 그러고도 잘 살고 있으니 대견하고도 부러운 일이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한다. 어려서는 지은 죄가 많은 것이 나와 닮은 것 같아 좋았다면, 지금은 그 많은 죄를 짓고도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기에 좋다. 그 친구 덕분에 때맞춰 이쁜 하늘을 볼 수 있으니 내겐 큰 복이다. 친구여 오래 곁에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