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투덜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투덜이로 불리고 있다. 대학 입학 후 투덜이임을 숨기고 살 생각이었으나, 몇 달 만에 정체를 들키고 말았다. 일종의 아웃팅을 당한 것이었다. 그 후로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철없던 시절에는 세상사에 딴지를 걸며 묘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비판을 내놓는 것을 자랑 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악취미였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 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나의 투덜거림에 상처 받았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INTP다. 특히 I와 T 수치가 아주 높은 편이다. 언제나 행동 보다 생각이 앞선다. 아니, 절대적이라고 해야 옳겠다. 그 많은 생각들을 언제 다 행동으로 옮길 지 나 자신조차도 짜증스럽고 지겨울 때가 있다. 물론 이것도 생각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여간해서는 인간관계에서 잡음을 만들지 않는다. 이해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예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부끄럼쟁이 샌님의 마음속에 들어앉은 악마를. 생각이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 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또 남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는 예단은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 그렇다. 나는 비겁하고도 오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누가 내 허벅지를 두고 두껍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 신체 부위 중 두꺼운 곳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거울을 보니, 과연 상체에 비한다면 하체는 그럭저럭 봐 줄 만 했다. 상체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초등학교 3학년생의 몸매였다. 몇 년 전부터 더위보다 추위를 더 타고 있다. 전에는 반대였다. 여름이면 줄줄 흐르던 땀도 이제 별로 나지 않는다. 재작년 겨울에는 난생 처음으로 자다가 추워서 깨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고생을 했다. 자연스럽게 먹는 양이 줄었고, 살도 좀 빠졌다. 전에도 내가 소음인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요즘 그것을 몸으로 직접 실감하면서 내 몸과 마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덤으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대견한 다짐도 하게 되었다.
나는 소음인이다. 나는 INTP다. 나는 투덜이다. 나는 그런 나를 사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