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미워한다. 이 말은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늙는 것은 가능하다면 피해야 할 것이요, 청춘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 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 할수록 노년이 아름다워지기는커녕 추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또 하나, 이 말은 노인들에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요구한다. 일, 외모, 인간관계 등 여러 방면에서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나이는 그 자체로 나름의 의미를 지니며, 노년에게는 노년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내가 아직 젊기 때문에 하는 소리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학원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우연히 중1 남자아이 둘이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한 아이가 말하길 전에 다른 친구랑 고깃집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는데 참 맛있었단다. 그러니 다음에는 너도 함께 가잔다. 그러겠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온다. 나는 그 나이 때 학교 매점에 가는 것도 큰일이었는데, 고1도 아닌 중1 아이들끼리 고깃집에서 삼겹살이라니, 이런 것이 세대차이인가보다 하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저 아이들이 삼겹살을 주문할 때 소주 한 병을 같이 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를 했다. 그놈들이 벌써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생이 되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시간의 흐름이 참 징그럽게 느껴진다. 내가 그 녀석들에게 세대 차이를 느꼈던 것처럼, 그 녀석들도 나에게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 '저 꼰대 어쩌고'의 감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징그러운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일 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 들면서 안 쓰던 말을 쓰게 된다. 반말 보다는 존댓말이 더 편하다. 상대방의 지위나 나이에 상관없이 존댓말이 편하다. 그리고 '형'보다는 '형님'이 편하다. 그래도 아직 '누님'이라는 말은 불편하다. '아가씨'라는 말도 있다. 언젠가 동네 편의점에서 아주 예쁜 아르바이트생을 봤다. 속으로 그 사람을 아가씨라고 지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내가 누군가를 아가씨로 지칭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도 아직 그 말을 호칭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를 누님이라고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를 아가씨라고 부를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아직 살아있기에 쉬지 않고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소스라칠 일 없다는 것을.


이런 저런 이유로 어머니는 이제 겨울 김장을 포기하셨지만, 전에 김장을 담글 때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옆에서 돕곤 했다. 이십대의 새파란 나이에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언제쯤이면 김치처럼 폭 익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날 김장을 담그며 어머니는 내 속마음을 읽었던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가 화단에 묻어놓은 김치를 꺼내 소금을 뿌리시며, 김치가 너무 빨리 시어져서 큰일이라고 걱정을 하시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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