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고, 나의 아버지는 장애인이다. 아버지가 장애를 얻은 지 하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것을 종종 잊을 때가 있다. 병원이나 시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장애를 뇌병변 장애라고 부른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의 장애는 인지 능력의 쇠퇴, 언어 기능의 대부분 상실, 편마비로 인한 거동 불가능이다. 몸의 움직임은 전혀 좋아지지 않지만, 인지나 언어의 측면에서는 좋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의사의 대답은 단호하다. 같다는 것이다. 짧고도 분명한 대답을 두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었는데, 내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아버지의 의사표현 능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나, 그런 아버지의 의중을 파악하는 나의 눈치는 계발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상태가 조금 좋아진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서글픈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대부분 그것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일이기에 알아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다. '이거 이거'로 시작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그 신호다. 대개는 아버지가 뭔가를 먹고 싶다는 뜻일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너무 쉽게 먹는 얘기를 꺼냈다가는 아버지에게 날벼락을 맞는 수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다. 먹는 거라면 이제부터 질문을 하나씩 던져 아버지로부터 '그려' 또는 '아녀'라는 대답을 들어야 한다. 집에 있는지 밖에서 사와야 하는지, 밥 먹을 때 같이 먹는지 따로 먹는지, 조리가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전에 먹어본 것인지 등등.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스무고개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의 '그려'가 늘 'yes'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아녀' 역시 늘 'no'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이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버지는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를 원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다. 아버지에게 독심술을 가르쳐달라거나, 도깨비 방망이를 사달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면서도 집요한 데가 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걸려서라도 원하는 것을 입에 넣고야 만다. 짜증스럽다가도 이런 실랑이 말고 아버지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짠하기도 하다. 드라마라면 주인공이 짠한 마음을 느끼며 한 회가 끝나겠지만, 현실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한참이 지난 후, 그런 소동이 있었지 않았냐고 내가 물으면 아버지는 고개를 젓고, 손을 내저으며 '아녀'라고 말한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그게 아니었다는 거다. 환장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나는 알게 되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한 것이 아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몰라서 답답한 것이다. 내가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한 것이 아니다. 나의 이해가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답답한 것이다. 이 답답함 앞에서 나는 소통이라는 말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기로 했다. 소통은 단순히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상대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상대의 언어는 고사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이제 어려워졌다. 그런 아버지와 나 사이에 소통은 불가능하다. 순간적인 욕구의 표출과 그에 대한 대처가 있을 뿐이다. 장애인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불가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임을 전에는 몰랐었다.
불효자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소통이 불가능해졌지만, 나는 아버지가 장애를 얻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장애는 질병으로 인한 것이니, 보다 적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가 아팠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에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어떤 접촉이 있어야 소통의 가능 여부를 확인할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아프기 전 30년 가까운 시절보다 아프고 난 후 10년 안 되는 기간 동안 함께 보낸 시간이 수백 수천 배는 더 많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이 전혀 없이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