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중이었다. 나는 뒷자리를 선호하는데, 그날따라 앉을 자리가 앞쪽뿐이었다. 졸면서 앉아 있는데 그 시간대의 버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행색의 남자가 승차하더니 내 옆에 섰다. 앉을 곳은 없어도 뒤쪽에 서 있을 곳은 많았는데, 하필이면 앞쪽에 자리를 잡을 것이 뭐람. 그때는 그 남자의 정체를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새벽까지 술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귀가 혹은 등교하는 대학생이었던 것 같다. 몇 년 후에 나도 종종 해 본 짓이다. 그 형은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남방을 바지 밖으로 꺼내 입지 않고, 바지 안에 넣어 입고 있었다. 눈썰미 없는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 그리고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유는 그 형의 아랫도리 상황이 평시가 아니라 전시였기 때문이다. 속으로 가늠해보니 그 전쟁은 제법 규모가 큰 전쟁이었다. 그걸 알게 된 때부터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안절부절 못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뒤에 누가 앉아있는 지도 모르면서, 어떤 여학생이 내 뒤통수를 쏘아보고 있다는 상상까지 하기 이르렀다. 지금 같으면 모르는 척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든가, 눈을 감고 잠을 이어서 자든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시선을 옮기든가 할 것이다. 아, 그러나 그때 나는 가엾고 순진한 고등학생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가 대신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내 수상한 행동 때문에 자신이 전쟁 중임을 알아차렸는지, 그 형은 남방을 바지에서 꺼내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며 휴전협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전쟁이 계속되다간 그 형과 나 둘 중 하나가 쓰러지고 말 것 같았다. 다급한 긴장감이 계속 이어지던 때에 다행히 자리가 났던 모양이다. 그 형이 버스 뒤쪽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하는 나로서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짧고도 길었던 나의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그 형의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났을까?


몇 년 전 사월의 이맘때, 토요일 오후, 지하철 1호선 급행열차, 구로-역곡 논스톱 구간, 급행이 개봉역에 정차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갑자기 날씨가 덥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언제나 막히는 1호선이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더 붐비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숨 쉬기도 힘들었다. 나는 살아있으니 눈이 떠 있었고, 눈을 뜨고 있으니 눈앞에 있는 것이 보였다.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꼭 끌어안고 있었다. 나의 편견으로는 지하철 안에서 포옹을 하고 있기에는 좀 나이가 들어보였다. 30대 중반 정도? 문제는 그들의 나이가 아니라, 하체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들은 옷을 입었을 뿐이지, 야동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 연놈들은 서로의 하체를 노골적으로 마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가엾고 순진한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자리를 옮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굳이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 연놈들 주위로 한 발짝 정도의 공간이 비어 있었다. 아, 사랑의 힘은 위대하여 모세의 기적도 행하는 구나. 자리도 좁고 날도 덥고 가방도 무거워 짜증이 나던 참에 마침 잘 됐다. 나는 속으로 차마 여기에 쓰지 못 할 욕을 해보다가, '요즘 것들'과 '말세'를 이용하여 어르신들이 애용하는 문장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나의 수양이 부족함을 탓하며, 그 연놈들을 이해해보려고도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마음속으로 살인과 속죄를 체험하고, 수양과 득도를 시도하며, 약 10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역곡역에서 다른 승객들이 내리고 타는 사이, 나는 등에 가방을 맨 채 낑낑대며 그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0시간은 시달린 듯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그 연놈들이 행하는 사랑의 기적은 언제까지 이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글을 쓰다가 불현듯 생각난 책이다. 이 책에 <시민적 무관심>이라는 꼭지가 있다. 이른바 시선 관리에 관한 내용이다. 시민적 무관심이란 공공장소에서 서로 눈길을 교환한 후 상대의 눈길을 피해 딴 곳을 바라보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나는 상대를 응시하는 것도 결례지만, 아예 보지 않는 것도 결례가 된다는 전문가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어서 이 꼭지를 기억하고 있다. 보지 않는 것이 결례가 된다면 그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 나는 INTP 성격유형의 소유자로서 타인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으므로, 시선 관리 때문에 결례를 범할 일은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짐작건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리저리 떠도는 나의 시선에 불편하고 불쾌했을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책 표지에 적힌 '착각'이라는 단어가 내 뒤통수를 친다. 더구나 나는 이런 리뷰를 남겼었다. '우리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보다 합리적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가 더 많은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그야말로 자가당착, 자승자박이다. 책을 다 읽고 도서관에 반납한 지가 한참이 지났는데, 이 책이 새삼 다시 등장해서 내 뒤통수를 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행을 조심할 일이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