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라는 글이 지금도 실려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온달산성에 올라 평강공주는커녕 온달도 만나지 못했는데, 신영복 선생은 평강공주뿐 아니라, 우공이산의 교훈과 '삶의 메시지'를 만났나 보다. 평강공주와 같은 사람을 두고 왜 어리석고 우직하다 하는지, 그리고 그 어리석은 우직함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는 따로 첨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신 나의 관심은 우공이산이라는 성어로 향한다.


사전에는 이 말이 어떤 일이라도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매사 부정적인 나는 이런 유의 교훈이 달갑지 않다. 억압과 맹목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이 교훈은 심하게 말해서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라는 주문처럼 읽힌다. 그러나 우공이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한 일이므로 이런 기준으로 우공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구십 노인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야 마땅할 듯하다.


자신을 비웃는 사람에게 우공은 자신이 하지 못하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하지 못하면 손자가 하고, 손자가 못하면 자자손손 대를 이어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내가 새삼 주목하는 대목이다. 당장이 아니어도 좋다는 여유, 그 공을 자신이 차지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겸양이 읽힌다. 셋 모두 나에겐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다.


방금 남자배구 챔프전 최종전이 끝났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언제나 우승 후보로 꼽히지만, 단 한 번도 챔프전에서 웃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언젠가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도 챔프전에서 삼성을 맞아 단 한 세트도 잡지 못하고 패해 삼성이 나의 불구대천이 되더니, 올해는 같은 상황에서 현대에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입맛이 쓰다. 지난 주에 끝난 여자배구에서도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와 똑같은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배구를 포함한 스포츠의 세계에 당장이 아니어도, 내가 아니어도 좋다는 여유와 겸양은 허용되지 않음을 잘 안다. 그러나 안타까움은 있을지언정 원망은 없다. 나는 배구를 사랑한다. 다음 시즌에도 배구를 볼 것이다. 그리고 통합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던 두 팀을 또 응원할 것이다. 몇 달 동안 덕분에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