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설>

언어분석에서는 글이나 말의 내용 이해에 중요한 내용어보다는 별 쓸모없어 보이는 기능어가 더 중요하단다. 아니 절대적이란다. 저자가 제시한 내용어와 기능어의 분류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기능어 분석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저자를 흉내내 말하자면 이것은 '흥미로운' 역설이다. 삶의 진실이란 언제나 작고 하찮은 것에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면 성급한 일반화가 될까?


<우울한>

저자는 언어분석을 할 때 '자신의 감을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 대화중에 실시간으로 상대의 언어를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떤 글에 대한 사후 분석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키워드가 되는 단어들의 수를 일일이 세어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시간을 절약해 줄 뿐 아니라 더 정확하기까지 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이 대목에서 약간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기계가 사람보다 심리분석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훗날 사람보다 더 뛰어난 공감능력을 지닌 기계가 등장하지는 않을까? 과학자들은 사람과 더 닮은 기계를 만들지 못해서 안달인데, 이런 우울한 생각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안심하다>

이 책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사용한 단어는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확실하지만, 단어 사용 스타일의 변화가 그 사람을 바꾸지는 못 한다. 전문가란 사람이 이런 말을 해주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단어 몇 개 달리 사용한다고 사람 자체가 바뀌게 된다면, 뭐랄까 그건 너무 재미없고, 실망스러우며, 정의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는 마법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하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아보니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삶이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길 바란다.


<우리>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단어는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다. 굳이 이 책을 열어보지 않아도 이 단어가 집단 정체성과 관련있음은 명확하다.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집단 정체성을 강조하기 좋은 시절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집단 정체성은 고정관념, 편견, 차별과 친하다. 열차는 멀리 떨어진 지역들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선로가 지나는 어느 한 지역을 갈라놓기도 한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 맞잡은 두 손에 누군가는 걸려 넘어질 수 있다. 가끔 누군가를 넘어뜨리기 위해 손을 맞잡자는 말을 드러내놓고 하는 자들이 있어 기함하기도 한다.


<참다>

언어분석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타인의 심리를 읽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다른 책들보다도 훨씬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과연 이 책의 방법론이 나의 일상에 얼마나 필요한가? 타인의 심리를 읽어내야 하는 일이 내게 그리도 많은가? 많다면 왜 많은가?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복잡한 방법론이 아니라 시간이 아닌가? 전문가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그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이 책에 대한 나의 흥미는 내가 그 시간을 참고 견딜 수 없음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사람의 심리를 읽는 방법에 대한 흥미보다 사람 자체에 대한 흥미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에게 그런 흥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왜>

어떤 일마다 배후에 누군가의 어떤 의도와 목적이 감춰져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그리 환영받을 만한 태도는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묻는다. 이런 것을 누가 왜 알고 싶어 할까? 이런 연구가 현실에서 가능하게 하는 실제적인 힘은 무엇일까? 노골적으로 물어서 이런 연구에 필요한 돈은 누가 대는 걸까? 책에는 언어분석을 선거운동이나 기업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으며, 활용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다. 나는 왜 이런 대목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권력과 자본의 속성을 떠올리며 불편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알면서도 불편하다. 그것이 문제다.


<그녀>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그녀가 떠올랐다. 특히 '지위', '거짓말', '권력'이라는 테마에서 그랬다. 요즘 나는 그녀의 심리상태에 대해 관심, 아니 의문이 많다.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그녀가 어떨 때는 악마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칠푼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욕망의 화신 같다가도, 뒷방 늙은이 같기도 하다. 문제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나'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과 관련해 보자면 그녀는 대명사를 많이, 특히 지시대명사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대명사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의 특성이 뭐하고 했더라? 그녀는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알다 / 모르다>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다'와 '모르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미국 보수진영 사람들이 오바마에 대해 착각했던 것처럼 나의 착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이 둘이라는 사실이 단박에 떠올랐다. 그리고 뜬금없게도 상대의 심리에 대해 아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회의가 이어졌다. 상대의 심리를 아는 것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할까? 그리고 그 앎에는 혹시 나의 착각이나 편견, 자기기만이 섞여있지는 않을까? 나는 그런 회의의 끝에서 다시 한 번 '그녀'와 만났다. '그녀'가 받았던 표는 아마도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던진 표가 대다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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