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십일월이 가볍게 흔들릴 때

벽과 달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볍고 마른 마찰음

침묵과 방관 속에 창궐(猖獗)을 하면 치사하고 역겨워라

죽지 않기 위해 살아온 날들이여


나뭇가지 끝, 위태롭게 매달린 낙엽

떨어지면 닥칠 북풍과 한설이 두려워

광장에 나가지 못 하는 십일월의 오후

서서히 고사(枯死)하는 불구의 가슴에 떨어뜨리는

한 방울의 구차한 인공의 눈물


조소(嘲笑)는 넘치고 용기는 아까워

죄없는 달력만 촛불로 불을 댕기며 나는 웃는데

따뜻한 햇볕이 차라리 서러운

봄마다


벚꽃의 집단투신을 보며 나는 사춘(思春)과 관음(觀淫)의 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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