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들고 전파하고 다 함께 그것을 믿는 능력. 이것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인류가 여기까지 온 비결이다. 그에 따르면 종교, 국가, 민족, 신화,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화폐와 기업, 법과 제도와 같은 것들은 모두 이야기다. 이야기라는 말 속에는 물론 허위와 거짓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형식'으로서의 이야기다. 한 남자가 온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가 부활하여 인류를 구원으로 이끈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다. 허위와 거짓이므로 혼자서 이것을 믿고 말하면 그는 정신병자다. 그러나 수십억의 사람이 함께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따라서 허위와 거짓이기에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허위와 거짓임에도 함께 믿기에 의미가 있다. 아니 허위인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 인류가 만들어낸 대개의 것이 그러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야기는 절대적이다.


<치즈와 구더기>와 <돈>을 우연히 유발 하라리의 책과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이야기라는 키워드로 두 권의 책을 읽어보았다.


<치즈와 구더기>에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 먼저 이 책은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하고 있는 종교에 관한 책이다. 16세기 이탈리아에 살던 한 방앗간 주인이 종교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우주관과 종교관을 펼쳐 보이다 화형을 당해 죽는다. 그런데 이것 자체도 하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역사도 이야기다. 허위나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형식으로서의 이야기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역사가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됨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새로운 서술 방식으로 인해 주류 사학계의 반감을 산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 층위는 바로 주인공 메노키오가 보았다는 여러 책들이다. 그 책들도 분명 이야기 형식으로 된 것들일 것이다.


메노키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도 흥미롭지만,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더 흥미롭다. 그리고 그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단 심문관들이 그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욕망과 듣고자 하는 욕망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죽음이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어쩌면 메노키오는 삶과 죽음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이단 심문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재판의 현장에서 말 한마디 잘못 하면 바로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노키오는 끝까지 신과 교회를 부정한다. 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신념이다. 이 지점에서 메노키오의 자아와 내면이 발견된다. 어쩌면 그는 근대가 도래하기 전에 나타난 근대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근대문학으로서 소설은 내면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다. 소설은 이야기 중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메노키오가 글을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뭔가를 글로 썼다면, 그 글은 어쩌면 소설의 원형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돈>은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화폐와 자본주의를 둘러싼 담론들이 실체가 없는 허위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다시 말하지만 허위라서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허위를 믿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실제의 돈이 아니다. 숫자와 그것을 적은 종이,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소문, 확인할 수 없는 기대와 희망이다. 이것을 열정이나 상상력, 혹은 욕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체가 없는 허위라는 점이다. 소설은 인간이 허위의 이야기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인간을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에밀 졸라의 의도가 아니라 유발 하라리의 관점이다.


이야기들도 서로 경쟁을 한다면 화폐와 자본주의 이야기는 살아남았고, 마르크스주의 이야기는 패퇴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결말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주인공 사카르는 살아남고, 죄 없는 마르크시스트 시지스몽은 병에 걸려 죽는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지금은 자유주의 이야기 전성시대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인권과 같은 하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은 명료하면서도 두려운 것이다. 미래에도 자유주의 이야기가 통할 것이라는 보장을 누가 하는가? 아니, 반드시 자유주의일 필요가 있는가?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슈퍼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류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도 생각할 수 있겠다. 이야기를 생각하다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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