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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도덕과 정의에 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인류의 지성사에서 여러 철학자들이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었나 설명한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는 인간의 고통과 쾌락의 감정의 질을 무시하고, 양적으로 측정가능하다고 보았다. 사회 구성원의 행복과 쾌락의 총량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좋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런 논리로는 소수가 고통받아도 사회 전체의 행복의 총량이 증가하면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리게도 한다. 이를테면 로마 검투사들은 로마시민의 쾌락을 위해서 희생되었다.
반면 자유지상주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역할은 최소화된다.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신체가 개인의 소유라는 논리로 자살 등의 극단적인 상황도 용인한다. 개인이 노력으로 번돈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 자유주의의 논리로는 부자에게 누진과세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런 자유주의의 논리를 저자는 다양한 논리로 반박한다.
칸트는 이런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한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뛰어넘었다. 첫째, 칸트는 의무동기론을 통해서 도덕적인 의무감으로 한 일이 더 도덕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도덕적인 행위라도 행위자가 즐거움을 느껴서 했다면 덜 도덕적이다. 둘째, 자율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개인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율이 아니다. 세상은 자연 법칙, 물리 법칙에 따라 돌아간다. 단지 쾌락과 고통에 지배되어 감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자연 상태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 것이다. 칸트는 진정한 자율이란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스스로 법칙을 정하고, 그에 따르는 것으로 보았다. 도덕과 관련하여 칸트는 실천 이성을 도구로 여기지 않았다. 어떤 경험적 목적에도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순수 실천 이성으로 여겼다. 세째, 칸트는 이성이 의지에 명령하는 두 가지 방법을 구별했다. 가언명령은 이성을 도구로 사용한다. X를 원한다면 Y를 하라라는 식이다. 예를 들면, '사업가로 좋은 명성을 얻고 싶다면 고객을 정직하게 대하라'는 가언 명령이다. 이에 반해 정언 명령은 조건이 없다. 어떤 행동이 다른 것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면 이때의 명령은 정언 명령이다. 칸트는 오직 정언명령만이 도덕적인 명령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칸트는 정언명령의 몇 가지 형태 및 공식을 제시했다. 첫째로 당신의 행동준칙을 보편화하라. 내 행동준칙이 이런 정언명령에 맞는지 판단해본다. 이를테면, 거짓 약속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려엇가 아니라, 거짓 약속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와 욕구보다 내 필요와 욕구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보편화를 통해서 강도높은 도덕적 요구에 초점을 맞춰, 내가하려는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처지보다 내 이익과 처지를 앞세우지 않는지 점검하게 한다.
둘째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런저런 의지에 따라 임의로 사용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한다. 자살도 이런 이유에서 정언명령에 위배된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타살이나 자살이니 근본은 같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 나를 고통 완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정언명령을 위반한다.
또, 칸트는 인간을 물리와 생물이라는 감각 영역과 자유로운 인간의 행위라는 지적영역으로 나누었다. 감각적 세계에 속해 있는 한, 사람은 자연법칙에 지배된다. 지적세계에 속해 있는 한, 자연법칙과 독립되어 경험이 아닌 오직 이성을토대로 한 법에 지배되는 것이다.
존롤스는 정의론에서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하는가를 묻는다. 저자는 존롤스의 사고실험을 소개한다. 원칙을 정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자기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속할지 모른다고 가정했다. '무지의 장막'뒤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시적으로나마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원칙을 선택한다고 상상하자. 롤스가 생각한 사회계약은 이처럼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언합의다.
이런 사고실험을 해본다면 우리는 공리주의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다수의 사람에게 희생되는 종교를 믿거나, 로마의 검투사로 태어나면 어떻하겠는가? 저자는 존롤스의 사고실험을 활용하여 빈부격차,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의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 어떤 행위가 미덕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각 존재의 목적에 부합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플루트는 최고의 연주가에게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플루트를 나누어줄 때 돈이 많거나, 잘생긴 사람에게 주어서는 안되고, 좋은 플루트 연주실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야 미덕이 실현된다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목적을 언급했다. 정치는 선을 장려하는 목적에 몰두해야하고, 폴리스의 구성원들을 선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 공동체는 단지 재산을 보호하거나, 경제적 풍요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미덕을 키우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정치는 좋은 삶을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시민들이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1)행복 극대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2)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3)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세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저자는 세번째의 공동선 추구를 선호한다고 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1. 시민 의식, 희생 봉사
사회는 좋은 삶에 관한 지극히 사적인 견해를 배격하고, 시민의 미덕을 키울 길을 찾아야 한다. 오바마가 국가적 봉사를 장려하면서 대학생들이 사회 봉사활동을 100시간을 하면 수업료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서 소개했다.
2. 시장의 도덕적 한계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수 없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공론에 부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3. 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
저자는 빈부격차로 인해 소수의 부자들이 공공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고, 사적인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납세를 꺼리게 되어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연대의식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였다. 만약 부자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길 선호하면, 공립학교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만 다니게 된다. 공적영역이 비어버리면 민주 시민 의식의 토대가 되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가 어려워진다.
4.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
개인의 삶과 공적인 삶의 가치를 구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인들이 도덕에 개입해야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동료 시민이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도덕과 정의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인류 지성사의 철학자들의 생각을 옅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양한 현대사회(특히 미국)의 주요한 이슈들을 소개하면서, 연결시켰다. 그리고, 결국은 바람직한 정치의 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이 책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정의, 공정이 이 시대의 화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