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세트 1 : 1~12권 - 전12권 (무선) 대망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박재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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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 불편함을 일상사로 생각하면 그리 부족한 게 없는 법이야. 마음에 욕망이 솟거든 곤궁했을 때를 생각하라.
역사 소설 중 너무나 유명한 대망을 드디어 완독하게 되었다. 국내에 여러 출판사의 책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동서문화사의 이 책이 괜찮은 것 같아서, 이 책으로 완독을 하게 되었다. 한 권에 620~630page짜리로 총 12권의 분량이다. 대략 7500page의 대작이다.

이 책의 스토리를 요약하라고 하면, 오닌의 난 이후 일본에 닥친 전국시대를 16~17세기에 걸쳐서 통일시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출생부터 75살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의 스토리이다. 3명의 영웅의 이야기가 다른 개성을 가지고 펼쳐진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이다.

본격적인 책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이 삼국지 등의 다른 역사소설과 다른 점을 설명하겠다. 전국시대의 통일이라는 주제 면에서는 삼국지와 유사하다. 삼국지는 유비, 조조, 손권의 대결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사건 중심의 이야기 전개를 하고 있다. 사건 중심이라 함은 등장인물의 내면적인 심리보다는 구체적인 사건(주로 전투)의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대망은 다인칭 시점을 가지고 등장 인물들의 마음의 변화를 포착해나가며 전체 스토리를 전개한다.

다인칭 시점으로 다양한 등장인물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설명하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므로 하나의 사건을 풀어가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 입장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을 표현하고, 특정한 상황에 대한 연결을 만들어 낸다. 이를테면, 특정한 상황 A에 등장인물이 B, C, D가 있다면 저자는 B, C, D 각각의 입장에서 3개의 스토리를 반복해서 기술한다. 이런 식의 기술은 단선적인 사건중심기술이나, 1인칭 시점에 비해서 어떤 사건, 상황이 가진 총체적인 진실에 접근하게 해준다.

기존의 역사소설의 경우 주인공(주연급)이라 할지라도 성격이 변하거나, 내면의 심리가 격하게 변하는 일은 없다. 지혜로운 자는 계속 지혜롭고, 용맹한 자는 계속 용맹하다. 단지 스테레오 타입을 가진 등장 인물과 특정한 상황의 결합인 경우가 많다. 반면, 대망에서는 각각의 인물의 마음의 변화를 그려낸다. 왜 충성스러운 자가 주군을 배신하게 되는지 그 마음속을 보여준다. 정략결혼으로 시집와서 남편에게 적대감을 가진 여자가 왜 그 남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느끼게 되는 지 그 마음의 변화를 보여준다.

책 전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에야스가 처음부터 완벽한 지혜와 용맹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그 출생부터 어린 시절의 고통스런 경험, 성장하면서 주어지는 상황에서 성광과 실패를 경함하면서 배우게 되는 지혜, 이에야스가 만난 사람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성장하는 모습을 이에야스의 인간으로서의 단점과 함께 있는 그대로를 묘사해낸다.



이 책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다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다인칭 시점에 의한 상황에 대한 중층적 묘사.

2. 스테레오 타입으로 성격을 단순화하지 않고, 각 인물들의 성장을 스토리에 녹여낸 점.



대망을 읽어보려는 시도는 몇 번이 있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끝없이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들, 일본의 지명, 관직명 이런 것들이 읽는데 고통을 준다. 무엇보다도 7500page에 달하는 분량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 당시 일본사람은 아명(어린시절이름)이 있고, 성장하면서 이름을 몇 번이고 바꾸기 때문에 헷갈린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을 남에게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따오는 등 집중해서 읽어야만 헷갈리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적인 성숙의 과정이다. 어린시절 오다 노부나가편의 볼모 생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볼모생활 등의 고통, 자신을 위해 가신들은 싸움터에서 선봉역할을 하고, 막대한 공출로 가신은 물론 백성들도 고통에 빠지는 경험을 통해 인내를 배운 이에야스. 마침내 독립하게 되었지만 강호들 틈새에서 불안한 자리를 지키게 된다. 자립을 위해서 오로지 인내하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유년시절의 경험을 통해 뼈에 새긴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협력자인 노부나가로부터 총을 이용한 새로운 전쟁기술을 습득하고, 히데요시 천하에서도 히데요시로부터 정치력, 회유 등을 이용한 싸움 이외의 싸움을 배운다. 오사카의 상인들로부터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기 위해 세계무역, 상인이 쌓은 부의 가치에 대해 눈뜨게 된다.

자신의 근거지인 오와리, 미노의 땅을 빼앗기고, 간토8주로 강제 이주 당하면서 고대 미나모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일본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막부정치의 모델을 만들게 된다.

자세히 다 쓰지는 못했지만, 인간관계, 전투, 정치, 민생 등 모든 면에서 끝없는 배움을 지속해서, 하나씩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고, 일본의 천하통일과 평화라는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모습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한다.

전국시대에서 개인적 피해를 본 사람을 꼽으라면 이에야스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볼모생활을 해야 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략이혼을 해야 했고, 아버지는 미쳐서 충신에게 살해당하고, 자신의 아들은 노부나가의 명으로 할복하게 했고, 아내도 미쳐 날뛰다가 죽었다. 일흔이 넘어서까지 직접 전투에 나가야 했고, 죽기 전에 아들과 의절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모든 고통에서 이에야스는 고통을 고통이라 생각하지 않고, 배움으로 연결시키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전진하고 일본에 평화의 기초를 굳건하게 세웠다.

이에야스는 이런 말로 자신의 마음가짐을 표현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 불편함을 일상사로 생각하면 그리 부족한 게 없는 법이야. 마음에 욕망이 솟거든 곤궁했을 때를 생각하라”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일본 통일, 평화정착이라는 짐을 지고 개인적인 고통을 이겨냈던 이에야스가 마치 성인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그릇은 그 사람이 집착해가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정해지는 지도 모른다. 이에야스는 일개 영주로써 가문의 평화를 꿈꾸기보다 전국시대 비극의 원인인 싸움의 종식을 자신의 꿈으로 삼았다.

이에야스는 “사자는 토끼를 잡는데도 온 힘을 기울인다”고 말하며 평화를 정착하는데 있어 필요한 일에는 주저함이 없고, 철두철미했다.

이에야스의 이런 삶에 대한 뜻을 세우고, 인내를 가지고, 철저하게 실행하는 모습은 현대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귀감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철저한 이에야스도 목숨을 건 도박을 해야 했을 때가 있었다. 다케다군과 싸웠던 미타가라하라 전투에서 그러했다. 일진일퇴(一進一退)를 자신의 실력에 맞춰서 조심스럽게 하고, 욕심을 버리고, 인내를 바탕으로 실력을 키우는 이에야스였지만 이 전투에서는 모든 것을 걸고 벅찬 승부를 해야 했다. 다케다신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죽다 살아나는 행운이 그에게 왔다.



상황에 끌려 다니기 보다는 스스로 어떤 사건의 원인을 제공해서 상황이 벌어지면 제압하는 형태로 상황을 지배했다. 세키가하라전투는 이에야스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전투였다. 이에야스는 사람의 기질, 품성이 상황과 결합하면 어떻게 사건이 전개 될 지 내다 보면서 일을 풀어나가는 치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 관계를 맺거나 주변사람이 타인과 인간 관계를 맺을 때 대상자가 어떤 기질, 품성을 가지고 있고,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 지 읽고, 관계를 맺거나 맺도록 하였다.

아들 히데타다가 간파쿠 히데쓰구와 관계 맺을 때 쉽게 부탁할 수 없도록 관계 맺도록 주의를 주어서 간파쿠 히데쓰구가 히데토시의 의심으로 죽게 될 때 그 화를 피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야쓰의 천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둥근 쟁반 위의 작은 찻잔이 있다고 해보자. 찻잔은 사람이다. 쟁반의 가장자리 즉, 가로막혀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곳 그곳이 숙명이다. 가장자리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운명이다.

천명이란 쟁반과 그 위의 찻잔, 그 쟁반의 가장자리 그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바꿀 수 없는 천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기를 활용할 수 있다.



이에야스의 리더십은 철저한 솔선수범, 부하들을 반하게 하는 리더십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그의 리더십은 볼모시절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가신(家臣)과 백성들의 고생을 바라보면서 그 기초가 형성된다.

이에야스는 또 이런 말을 한다. “몇 만 몇 십만의 가신이 있더라도, 그 하나하나와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대결 내편에 빈틈이 있다면, 신뢰를 잃고 멸시 받는다”

리더가 되기 위한 철두철미한 노력. 부하들을 반하게 하고, 이끌기 위한 리더의 본질을 이야기한 명언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인 정신자세를 바탕으로 조직과 역사가 요구하는 바에 맞춰 끊임없이 학습하고 자신을 그런 기준에 맞춰 변화시키고, 자신의 측근도 그렇게 변화시켜 나간 것이 이에야스의 모습이었다.



이 땅의 모든 분야의 리더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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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9-01-29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히데요시와의 약속을 어기고 오사카 성에서 아들(이에야스에게는 사위)까지 자결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궤변은 좀 심하지 않은가요? ^^
봉건적 폐쇄적인 나라로 일본을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많이 듣게 됩니다.
덕분에 최근 제가 읽은 시바 료타로의 작품들은 대체로 이에야스의 몰염치를 비판하던데요 (ex: 세키가하라 전투 등)

제이슨 2009-01-2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세키가하라 전투 재밌게 읽었는데..^^ 대망의 세키가하라전투부분이 상기되더군요...

도꾸카와이에야스 욕망과 권력에 대해서 생각하게하는 말씀입니다.
권력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심지어는 자신의 가족조차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때는 매몰차게 버리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최근에 나폴레옹에 대해서 읽고 있는데, 비슷한 모습이더군요.

작가의 궤변이 심하다는 말씀이신거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았는데...
도쿠가와이에야스 입장에서 말하자면, 상황이 그런 것을 요구했고, 모든 아픔을 견디고 상황이 요구하는 바를 받아들였기에 그런 일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마천 2009-01-2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작가가 아니고 이에야스가 직접 했던 궤변들 말입니다... 살려준다고 굳게 약속하고 또 혈서를 쓰고도 다 죽여버리는 일은 이에야스 인생에서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 부분이죠...

avatarmaster 2022-02-27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서평 정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