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 - 세계를 바꾼 다섯 가지의 위대한 서사
바츨라프 스밀 지음, 솝희 옮김 / 처음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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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츨라프 스밀의 《대전환》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다섯 가지 변화를 거대한 서사로 풀어낸 역작이다. 이 책에서 스밀은 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이라는 다섯 분야에서 인류가 겪어온 ‘대전환’을 통해 오늘날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 수 세기 동안 인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흐름들을 추적하며, 이러한 통찰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빌 게이츠가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로 손꼽을 만큼 스밀의 연구는 각 분야의 사실과 통계를 꼼꼼히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며, 《대전환》에서도 인류 역사의 거대한 변화들을 실증적으로 분석해내고 있다. 책의 부제처럼 “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의 위대한 서사”로 언급된 인구 폭발, 농업과 식량 생산 혁명, 에너지 체계의 변화, 산업화에 따른 경제 성장, 그리고 환경에 닥친 거대한 변화까지​, 저자는 이들 각각이 어떻게 우리 시대를 만들어왔는지 생생히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다섯 가지 대전환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이다. 인구의 대전환으로 불리는 인구 폭증은 1800년대 이후 사망률 감소와 의료 발전으로 시작되어 20세기 중반까지 급격한 증가를 이루었고, 그 결과 인류는 전례 없는 규모로 지구를 채우게 되었다​. 이러한 인구 성장은 식량 생산의 혁신 없이는 불가능했는데, 근대 농업과 녹색 혁명으로 대표되는 농업 부문의 대전환이 인류를 기아에서 구해냈을 뿐만 아니라 1인당 식량 소비를 크게 늘려 주었다. 스밀은 지난 수백 년간 농업 생산성이 경이적으로 향상되고 작물 구성과 식단이 변화하면서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놀랄 만큼 탐식적인 인구”가 탄생했음을 지적한다​. 이제 우리는 먹을거리가 풍족해졌지만 그 이면에는 식량 낭비와 환경 훼손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예컨대 비닐 멀칭(농지에 비닐 필름을 씌워 온실 효과를 내는 기술)이 세계 수백만 헥타르의 농토에 사용되어 사시사철 채소를 먹을 수 있게 했지만, 토양과 생태계에는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독자를 숙연하게 만든다​. 이처럼 인구와 식량의 변화는 긴밀히 맞물려 있으며,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의 씨앗을 뿌렸다.

에너지의 대전환 역시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다. 불과 근육 노동에 의존하던 세계가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의 활용으로 급격히 변모했고, 이는 산업혁명 이후 경제의 폭발적 성장을 견인한 동력이 되었다. 값싼 고밀도 에너지의 공급은 대량 생산과 도시화, 교통 혁신을 가능케 했고, 그렇게 경제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인류의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되었다. 스밀은 식량과 에너지, 경제 생산이 인구 증가를 훨씬 앞질러 증가한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1인당 풍요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의 축적이 모두에게 고르게 돌아간 것은 아니다. 산업화와 경제 성장의 혜택을 입은 부유한 국가들은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며 번영을 이루는 동안, 지구 생태계의 기반은 그만큼 약화되었다​. 한편 개발이 더딘 많은 지역에서는 수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현대의 혜택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있다​. 스밀은 이 불균형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현대 문명이 낳은 풍요와 불평등, 그리고 환경 파괴가 한데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인구·식량·에너지·경제의 네 가지 대전환이 가져온 성공이 바로 다섯 번째 대전환인 환경 변화를 촉발한 셈이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이 환경적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앞서 이룩한 성과마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는 기로에 서 있다​.

《대전환》이 특별한 가치는 이러한 거시적 변화들을 다룰 때 스밀이 취하는 균형 잡힌 현실주의에 있다. 그는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거나 희망적 가정에 기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데이터와 현재의 추세를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미래를 이해하려고 하지, 단정짓지 않는 것이다​. 스밀은 책에서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다”며, 세상이 곧 파국에 이를 것처럼 경고하는 비관론자나 기술만능주의에 빠져 무한한 성장만을 믿는 낙관론자 모두를 비판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동시대의 인기 있는 담론들까지 직접 언급하며 반박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유발 하라리의 인간향상 미래론이나 스티븐 핑커·한스 로슬링의 낙관적 세계관이 간과한 부분들을 지적하면서, 데이터에 기반한 현실 평가가 왜 중요한지 역설한다​. 예를 들어, 스밀은 인공지능이 곧 인간을 넘어설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에 대해 인류 문명이 지닌 자연적 한계와 취약성을 상기시키며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논박한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측을 내놓는 것이나, 반대로 기술 혁신이 자동으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경계한다​. 스밀의 분석 방식은 과거와 현재의 확실한 사실들을 토대로 가능한 시나리오의 범위를 제시하는 데 집중하며, 이는 복잡한 현실을 외면한 채 숫자게임임에 가까운 미래 예측 모델들과 뚜렷이 대비된다. 그의 이러한 실증적 접근은 독자들에게 냉철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시각, 즉 근거에 입각한 낙관을 갖추라고 조언하는 셈이다.

이 책이 현대적 맥락에서 가지는 중요성은 구체적인 통찰과 시사점으로 더욱 빛난다. 스밀은 지속가능성, 경제 성장, 기술 발전, 환경 문제와 같은 당대의 과제들을 거대한 역사 흐름 속에서 조망함으로써, 우리에게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첫째로, 에너지 전환이나 기후위기 해결처럼 거대한 문제일수록 단시간에 해결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깨운다. 실제로 전 세계 1차 에너지의 85% 이상을 여전히 화석연료가 공급하고 있으며, 완전한 에너지 체계 전환은 한두 세대가 아닌 여러 세대에 걸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는 탄소중립이나 친환경 사회로의 이행이 마라톤에 가깝다는 뜻으로, 성급한 낙관보다는 장기적 안목의 정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둘째로,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경제 발전을 이루는 상호 모순적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스밀은 선진국의 생활양식이 지구 환경에 큰 부담을 준 사실을 지적하며, 지구를 치유하는 한편 앞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가난한 지역이 과거 선진국이 누렸던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강조한다​. 이는 국제적 협력과 책임 분담, 예를 들어 부유한 국가들의 기술 지원과 탄소 배출 감축 노력 등이 왜 필요한지를 뒷받침해준다. 셋째로, 기술 발전의 역할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은 필수적이지만, 스밀의 연구를 통해 보면 인류사의 큰 전환들은 대개 점진적 축적의 결과였지 단숨에 찾아온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도 냉정한 데이터에 기반해 꾸준히 개선을 모색해야 하며, 막연한 기술 구원론에 빠지지 말아야 함을 깨닫는다. 끝으로, 스밀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그는 현대 문명이 다섯 가지 대전환을 통해 이루어낸 성취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그 연장선에서 인류가 이제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시켜야 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앞서 이룩한 풍요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것, 다시 말해 인류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대전환’이야말로 앞으로 맞이할 과제의 본질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대전환》은 방대한 지식과 통찰을 한 권에 녹여내어 독자로 하여금 거시적 안목을 갖추게 해주는 책이다. 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이라는 거대한 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현재의 문제를 초래했는지를 이해하면, 우리는 복잡한 현안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스밀의 서술은 단순한 역사 나열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처럼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뉴스 속 이슈들을 이 책의 맥락 속에 넣어 새롭게 해석해보는 재미도 얻는다​. 또한 이 책이 지닌 학문적 엄밀함은 현실의 정책 결정에도 유용한 지침이 된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정책을 세울 때 역사적 전환의 속도를 참고함으로써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정할 수 있고, 식량이나 인구 정책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상호 연관성을 고려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 책은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데 큰 영감을 준다. 막연한 두려움이나 근거 없는 희망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사실에 입각해 미래를 준비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바츨라프 스밀의 《대전환》을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향하는 길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더 나은 변화를 꿈꾸게 만드는 이 책은,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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