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이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왕자로 태어나 희노애락의 고통을 느낀 후 모든 지위와 안락을 버리고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고 인류에게 크나큰 자비를 베풀어 주신 성인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전 불교 신자가 아니라서 심오한 도는 잘 알지 못하고 영화 이야기로 부처님의 자비를 되새겨 볼까 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티벳 최초의 장편 영화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 영화가 처음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티벳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감독인 부탄의 영화감독 키엔츠 노부는 티벳 불교 전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환생라마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법명인 키엔츠 린포치로 불교계에선 유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컵"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 속에 심오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중국에 점령당한 티벳을 탈출한 팔덴과 니마는 히말라야의 한 사원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 사원은 축구 열풍으로 엄숙함이나 경건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팔덴과 니마는 특히 같은 또래의 장난꾸러기 스님 오기엔 때문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습니다.
오기엔은 수행 보다는 장난에만 정신이 팔린 개구장이 스님으로 축구광입니다. 마침 세상은 프랑스 월드컵으로 한창 뜨거울 때입니다. 축구를 너무나 보고 싶은 오기렌과 친구들은 마을의 가게에서 월드컵 준결승전을 보는 모험을 강행하지만 사감 역할을 하는 게코 스님에게 걸리고 맙니다. 게코 스님과 큰스님 아보트는 축구에 미친 어린 수도승들과 화해할 방도를 찾기 시작합니다.
오기엔은 월드컵 결승전을 사원 안에서 보게 해달라고 게코에게 부탁하고 허락이 떨어집니다. 오기엔 일당은 돈을 모아 TV와 안테나를 빌려 사원으로 가져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결승전은 시작되고 경기가 끝나기 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월드컵과 꼬마 스님들의 결합은 우리가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립니다. 티벳 사원의 스님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티벳 망명지의 스님들이 연기했다고 하는데 순수한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특히 오기렌 역의 잠양 로도는 시비조의 목소리와 껄렁껄렁한 행동으로 연신 웃음을 자아냅니다.
작은 것에서 우주의 도를 보는 감독의 내공이 있기에 영화는 따뜻하고 유쾌합니다. 키엔츠 노부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리틀 부다"에 참가하면서 영화를 배웠다고 하는데 엄숙하고 딱딱한 베르톨루치의 영화 보다 훨씬 높은 경지로 불교 사상과 티벳의 현실을 담았습니다. 뭐 특별하게 심오한 도를 찾을 필요 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웃다보면 뭔가 마음에 남는 게 있는 영화입니다.
종교인이 아니라도 가족이 둘러 앉아 이런 가벼운 영화 한 편 보면서 부처님의 자비를 느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