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이야기 - 유라시아 초원에서 디지털 제국까지
김종래 지음 / 꿈엔들(꿈&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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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한 평야에 말을 달리는 모습을 보면 뭔가 가슴에 쌓였던 것이 확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느낌의 사진과 글들은 이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몽골의 대 평원과 그 평원에 펼쳐지는 검푸른 호수와 강들의 사진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듯 하다.
     최근에 화두에 오르는 유목민과 디지털 시대의 네트웍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 유형과 내용은 여러 책들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동성이 강한 유목민의 생활양식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생활양식과 유사하고, 인류사의 최초로 디지털 시대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직은 이런 논리에 공감하기에는 유목민의 역사와 그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증거가 비약이 많아 공감대가 떨어지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정착민의 생활형태 속에서 유목민의 생활형태를 찾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이 있다.

     거친 들판에서 때에 따라 이동하는 불편함과 겔이라는 몽골의 전통 가옥에서의 삶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삶을 이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고통과 불편함을 즐기고 있다고 할까? 이런 삶의 모습은 농경문화를 통한 정착생활을 하는 우리의 삶과 비교할 때 미련 맞고 왠지 모르게 미개해 보인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라고 얘기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저자의 얘기처럼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럽고, 미개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오만이 지금까지의 우리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런 선입견 속에서도 몽골인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거울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왜 일까? 얼굴의 생김새에서부터 몽고반점이라는 신체적인 특성에 이르기까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증거는 동질의 민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기에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허나 이런 유전학적인 동질감과 다르게 생활양식이나 사용하는 언어에 있어서는 찾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과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교육 속에 미개한 민족으로 치부되어 왔던 개념과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개념이 들어 서면서 유목생활에 대한 재 고찰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광활한 벌판에서 말달리며 자유롭게 삶아가는 자유인의 모습을 그리고 동경하는 유목민의 모습과 인류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몽골의 칭기스칸이라는 인물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모습 속에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또한 디지털 한국을 표방하는 우리의 시점에 그들의 생활 방식은 칭기스칸의 족적을 쫓아 가고자 하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유전적인 동질성과 부합되면서 칭기스칸에 대한 예찬론(?)이 부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역사 속에 몽골의 영향은 다른 민족들과 같이 침탈당한 피해국으로서의 위치에 있다. 또한 농경정착 문화를 바탕으로 이어져 오는 정착문화를 만들어 왔던 전통과 새롭게 부각하는 유목문화의 접목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편협하게 바라보면서 생기는 문화의 왜곡된 해석은 그만큼 각 개별 문화가 전해주는 다양한 경험들을 놓치지 않게 찾아보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유목민’하면 몽골이 생각나고, 몽골은 칭기스칸이라는 인물을 빼고는 얘기하기 어려운 내용일 것이다. 그만큼 칭기스칸은 인류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사라져간 인물일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2000년을 맞으면서 어느 유명신문사가 선정한 밀레니엄맨—1001년에서 2000년 사이의 가장 위대한 인물—을 선정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결론에 칭기스칸이라는 인물이 거론되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침략과 무차별 살육의 침략자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었던 인물이지만, 전세계를 자신의 말발굽이 닿지 않던 지역이 없었던 민족의 유적이나 족적은 사라지고, 지금의 후손은 몽골평원에서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나라로 인식 된다.
     저자의 이 책을 통해 유목민의 새로운 모습과 그들의 삶이 결코 불행하고, 비참하지 않다는 것을 새롭게 알려주고 있으며, 비대해진 정착생활과 자연환경의 파괴로 치닫는 현대 물질문명 속에 새로운 삶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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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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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맞다. 헌데 미쳐야 미친다는 말은 좀 역설적이게 들린다.

     이 책의 시대가 조선 후기의 17,8세기의 내용이고, 시대의 주류가 아닌 소외계층으로 주류에서 밀려난 양반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글들을 모은 내용이라고 한다. 단문의 내용이나 은유와 풍류의 글들 자체로 본다면 명문(名文)들의 내용일지는 모르겠다. 허나 현실에서 소외된 모습 속에 안주하거나 낙담하는 내용이나 감상을 적어 논 글들은 왠지 모르게 나약해 보이고, 주류에서 밀려난 소외계층의 하소연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당대의 이름난 실학자나 피폐한 민중을 위한 정책 등을 펴냈다고 알려진 위인들의 글들이 직역한 내용과 그 내용에 대한 부연설명을 통해 해설하고 있다. 허나 각 문장들의 내용을 보면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기생과의 우정(?)이라고 하는 내용이나, 한가롭고 여유롭게 둘러 앉아 악기연주를 하면서 적어 놓은 감상이나, 찌든 가난 속에서도 글 읽는 것이 본업으로 생각하고 적어 놓은 글이나, 돈 빌려 달라는 은유의 글들이 자체만을 보면 명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글들을 쓰고 있는 상황자체를 볼 때는 왠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현실 안주의 모습을 엿보게 되어 답답함이 밀려 온다. 짜증도 나고……
     이런 글들의 저변에는 양반계층의 전형적인 권위의식과 고리타분함이 배어 나온다. 유교시대의 전형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양반만의 사회를 그려 보이고 있으며, 그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서의 서글픔이 배어 나온다. 물론 이런 글들이 그 많은 글들 중에 일부만이 발췌되어 이 책에 실렸을 것이고, 주고 받은 편지 등이 여러 단계를 거쳐 어렵게 남겨진 문장들을 많은 노력과 연구를 통해 정리되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이 간다. 허나 이런 내용의 글들이 당시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의 주류였다고 한다면 이것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든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 뭔가에 미쳐서 당대에 이루기 어려운 내용을 극복하고 이루어 낼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사례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라는 나의 짐작과는 많이 빗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미쳐서 소외에 대한 외로움이나 핍박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왠지 제목에서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뭔가에 미친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만큼 몰두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몰두를 통해 보통으로는 불가한 것이 미침으로 이룰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글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로 인해 소외계층의 하소연으로만 이해되고, 현실안주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풍류만을 즐기는 양반계층의 고리타분함만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답답한 내용이 아닌 등장하는 여러 위인들의 위대한 사상과 그 발자취에 대해 재 해석할 수 있는 글들이 더 많이 연구되고 발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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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이승복 지음 / 황금나침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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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이 안 간다. 사지마비 장애인이라는 사실도 그렇고, 그런 몸을 이겨내서 의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에 있어 인간의 무한한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저자인 이승복님은 좀 특이한 사람인 것 같다. 체조를 자신의 인생 목표로 설정하는 것도 그렇고, 목표로 설정한 것에 미쳐서 외골수로 파고드는 것이 고집이 무척이나 센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느끼게 된다. 미국 이민을 가서 한국을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재활치료에 나서는 모습이나 대학생활이나 의사생활을 겪는 모습이 여느 사람과는 분명 다르다. 이런 특별한 사람이 되게 한 원인 중에는 주변 상황도 있고, 자신의 강한 의지도 있고, 심적인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있고, 이런저런 원인을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이라고 느껴져 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사지마비의 장애인이라는 자신의 상황을 뛰어 넘어 무한한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게 할 수 있는 원천이 아니었을까?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봤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주인공이 또 다른 휠체어의 환자를 청진기로 검진한다. 좀 특이한 사진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다. 궁금증이 인다. 어떤 의사가 이런 모습으로 진료를 하는 걸까? 이런 궁금증에 책을 읽으면서 주변에 많이 알려진 주인공의 이력과 TV의 방송을 타고 전국민에게 알려지면서 아들녀석도 이 책의 저자를 알고 들은 이야기를 주워 섬긴다.
     책보다는 방송을 통해 세상사람들에게 그 특이한 삶을 알려 주었으나 나는 책을 통해 그 내력을 알게 된다. 학창시절의 체조에 대한 열정, 장애인이 되고서 재활치료의 과정, 가족들의 절망과 고달픈 이민생활, 대학진학과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과 사회의 편견, 모든 어려움을 겪고 현재의 세계적인 병원의 의사의 모습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겪는 자신의 일상사가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어떤 대목에서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에 대한 표현이 진짜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이는 대목도 있지만 신문지상에서 보는 추가적인 저자의 이력을 보면 저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대단한 사람이다. 사지마비의 장애를 극복하고 자립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의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음을 분명히 느끼게 한다.
     또 하나, 저자가 오늘이 있을 수 있게 했던 내용 중에 하나는 ‘기회의 땅, 미국’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지마비의 장애인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의 유연성이 오늘의 저자를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게 얻어진 기회를 저자는 천신만고의 노력을 통해 극복하고 오늘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듯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은 또 하나 미국이 부러운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절망과 가족의 고통에 대해서는 공감의 느낌에 눈물이 나려고 하고,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정식 의사가 되는 졸업식에서의 감동은 기쁨의 공감으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울컥하는 감동이 상상의 얘기가 아닌 겪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체험을 들을 수 있고, 그런 내용을 보고 감동 받지 않을 수 없나 보다.
     저자의 내력과 방송을 탓던 내용이 무엇인지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허나 인간극장의 다큐멘터리의 느낌 상 흥미와 감동이 있었던 추측만을 한다. 허나 나는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생각과 느낌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주변 생활과 겪었던 어려움들, 지금도 겪고 있는 생활은 또 다른 나를 있게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와 그러기에 전동휠체어를 쓰지 않고 굳은 살이 박히도록 직접 휠체어를 밀며 다닌다는 얘기는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다.
     한번 기회가 되면 찾아 보고 손이나 한번 만져보고 싶다. 무슨 할말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그냥 만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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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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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폰티첼리(Pondicherry), 동물원, 태평양, 난파선, 하이에나, 오랑우탕, 얼룩말, 뱅갈 호랑이 등이 이 소설의 주 무대이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제가 될 것이다. 헌데 이 책을 인터넷 등의 소개 글을 보면서 무슨 무슨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와 뒷면에 보여지는 각 매체들의 찬사에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인지 영 감이 없다. 책의 표지도 상어를 비롯하여 수많은 물고기와 거북 등이 다니는 바다 위인 듯한 그림에 배위에 올려져 있는 호랑이와 쭈그리고 누워 있는 소년의 모습은 이 소설의 내용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파이 이야기”라는 제목이 모험과 인내의 역경 극복기라는 느낌이 없이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용이구나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1부가 지나 2부로 넘어 가면서 본격적인 파이라는 소년의 모험이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의 3부는 모험을 겪고 난 후일담과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난파선에서 벌어진 또 다른 상상을 그려내고 있다. 마치 자전적인 경험담 같은 느낌을 2부까지 읽을 때도 진하게 느꼈는데 3부를 읽으면서 소설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왜 인지 모르겠다.

     주인공 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어 소년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을 달관한 수도자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227일이라는 난파선에서의 생존을 할 수 있는 인내와 고난의 극복은 사람을 단련시켜 수도자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사업인 동물원의 운영과 그에 따른 동물들에 대한 지식은 탁월하다. 지금까지 동물원에 갖혀 답답한 생활을 하면서 야생을 잃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되어져 왔고, 이런 내용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려진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동물원 경영자의 아들로 동물의 고유의 영역을 표시하고 나름데로 동물들의 행동패턴을 이해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시각의 동물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이 내용은 2부에 주인공과 함께 등장하는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행동과 그를 통제하면서 삶을 이어가게 하는 소년의 생명선과 같이 그려지고 있다. 진짜일까? 내가 모르는 동물에 대한 특성이지만 일리 있어 보인다.

     227일의 태평양 표류는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7개월 17일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먹는 것, 자는 것, 특히 물에 대한 갈증을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을까 하는 의문만이 남는다. 그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매일 똑 같으면서도 몰아치는 폭풍과 변해가는 주변 환경은 사람의 생에 대한 집착을 약하게 하는 것들일 것이다.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 설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한배에 같이 했었던 호랑이 리처드 파커일 것이다. 이는 주인공 마음을 잡아주는 질긴 끈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3부에 이어지는 침몰한 배의 선주 회사의 일본인의 방문과 그들과 오가는 대화는 무척이나 코믹하면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일본인에 대한 작가의 인상을 강하게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하고…. 조사를 담당하는 일본인의 요구하는 내용으로 다시 정리하여 설명하는 침춤호의 침몰과 난파선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멕시코 연안에서 구조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진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실재로 일어난 난파선의 일은 무미건조한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지만 정작 들려 주는 파이의 표류기의 이야기는 2부에 그려지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내부의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살아 있었기에 227일간의 그 지루하고도 험난한 태평양 표류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결국 삶을 놓치지 않고 살아 남았기에 주인공인 파이가 호랑이인 자신을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보다 비 논리적이고, 현실감 없는 이야기지만 막상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동안에는 작가의 체험담을 옮겨 놓은 실화일까 하는 생각을 내내 하다가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보고 나서는 그런 나의 생각은 픽션인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찌 되었든 작가의 탁월한 글 솜씨와 이야기의 전개는 바다 위의 표류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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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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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기계, 유전자.
     이 두 개의 단어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강조하는 주요 단어이다.
     ‘왜 생물학 시간이나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살아 있는 생물에 대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존기계라는 새로운 개념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기계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의미는 무미 건조함과 쇳덩어리라는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그런 의미의 용어를 사용한 이유로 저자는 기존의 동물이나 식물의 개념이 아닌 말 그대로 우리가 느끼는 기계적인 장치에 대한 이미지에 유전자라는 조작자, 또는 통제자를 통해 움직이는 어떤 장치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생존기계를 사용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의미로 생존기계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배워 왔던 생물학의 개념이나 우리들의 지식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 유전자라는 거대하면서도 유구한 삶을 이어 왔던 생명체를 중심으로 이야기의 화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발상전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늘 나 자신, 아니면 나를 중심으로 한 가계나 족보 등을 생각해 왔었고, 다윈의 진화론을 근간으로 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계를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구분하여 분류한 내용을 공부해 왔다. 허나 특정 개체에 대한 거시적인 개념이 아닌 한 개체에 들어 있는 유전자라는 소단위로 관점을 바꾸면 생물학의 이야기는 그 내용이나 모양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게 해서 변화된 관점으로 생물계에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을 보고 그에 대한 해석은 기존에 접근하지 못했던 많은 내용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든 내용을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윈의 진화론이나 돌연변이, 노화현상, 유전, 인구문제, 성의 분화, 숙주와 기생충 등의 갖가지 현상들은 모두 유전자의 많은 자손 퍼트리기라는 잠재되어 있는 과제(?)—아니면 사명—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 되어진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장 번식률이 높거나 성공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유전자는 선택해 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에 읽었던 ‘기생충제국’이라는 책을 보면 기생충이 숙주를 움직여 자신의 번식이나 생존을 위한 행동을 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에일리언’이라는 영화 속의 괴물과 같은 내용과 동일한 내용이다. 이런 숙주와 기생충에 대한 내용을 유전자에 대한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척이나 흥미롭다.
 
     유전자는 자신의 무한한 삶을 위한 전략으로 인간이 생각하는 지식의 범위를 넘어 이미 자연계에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중에 우리 인간은 모방을 통해 내용의 발견이나 일부를 인간의 삶을 위한 나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설프게 도입이 되어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이런 시행착오는 환경오염이나 도덕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유전자는 무한하고 인간은 유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생존과 많은 번식을 위한 전략으로 인간이 만들어 졌고, 그런 전략 속에 인간도 하나의 방법적 도구이며, 생존기계로서 활용도가 높은지에 대한 판단은 유전자가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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