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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폰티첼리(Pondicherry), 동물원, 태평양, 난파선, 하이에나, 오랑우탕, 얼룩말, 뱅갈 호랑이 등이 이 소설의 주 무대이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제가 될 것이다. 헌데 이 책을 인터넷 등의 소개 글을 보면서 무슨 무슨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이야기와 뒷면에 보여지는 각 매체들의 찬사에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인지 영 감이 없다. 책의 표지도 상어를 비롯하여 수많은 물고기와 거북 등이 다니는 바다 위인 듯한 그림에 배위에 올려져 있는 호랑이와 쭈그리고 누워 있는 소년의 모습은 이 소설의 내용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파이 이야기”라는 제목이 모험과 인내의 역경 극복기라는 느낌이 없이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용이구나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1부가 지나 2부로 넘어 가면서 본격적인 파이라는 소년의 모험이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의 3부는 모험을 겪고 난 후일담과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난파선에서 벌어진 또 다른 상상을 그려내고 있다. 마치 자전적인 경험담 같은 느낌을 2부까지 읽을 때도 진하게 느꼈는데 3부를 읽으면서 소설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왜 인지 모르겠다.
주인공 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어 소년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을 달관한 수도자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227일이라는 난파선에서의 생존을 할 수 있는 인내와 고난의 극복은 사람을 단련시켜 수도자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사업인 동물원의 운영과 그에 따른 동물들에 대한 지식은 탁월하다. 지금까지 동물원에 갖혀 답답한 생활을 하면서 야생을 잃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되어져 왔고, 이런 내용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려진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동물원 경영자의 아들로 동물의 고유의 영역을 표시하고 나름데로 동물들의 행동패턴을 이해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시각의 동물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이 내용은 2부에 주인공과 함께 등장하는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행동과 그를 통제하면서 삶을 이어가게 하는 소년의 생명선과 같이 그려지고 있다. 진짜일까? 내가 모르는 동물에 대한 특성이지만 일리 있어 보인다.
227일의 태평양 표류는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7개월 17일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먹는 것, 자는 것, 특히 물에 대한 갈증을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을까 하는 의문만이 남는다. 그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매일 똑 같으면서도 몰아치는 폭풍과 변해가는 주변 환경은 사람의 생에 대한 집착을 약하게 하는 것들일 것이다.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 설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한배에 같이 했었던 호랑이 리처드 파커일 것이다. 이는 주인공 마음을 잡아주는 질긴 끈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3부에 이어지는 침몰한 배의 선주 회사의 일본인의 방문과 그들과 오가는 대화는 무척이나 코믹하면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일본인에 대한 작가의 인상을 강하게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하고…. 조사를 담당하는 일본인의 요구하는 내용으로 다시 정리하여 설명하는 침춤호의 침몰과 난파선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멕시코 연안에서 구조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진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실재로 일어난 난파선의 일은 무미건조한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지만 정작 들려 주는 파이의 표류기의 이야기는 2부에 그려지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내부의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살아 있었기에 227일간의 그 지루하고도 험난한 태평양 표류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결국 삶을 놓치지 않고 살아 남았기에 주인공인 파이가 호랑이인 자신을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보다 비 논리적이고, 현실감 없는 이야기지만 막상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동안에는 작가의 체험담을 옮겨 놓은 실화일까 하는 생각을 내내 하다가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보고 나서는 그런 나의 생각은 픽션인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찌 되었든 작가의 탁월한 글 솜씨와 이야기의 전개는 바다 위의 표류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