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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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과거 내가 배워 왔고, 불러 왔던 용어는 6.25전쟁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숫하게 많이 발생했던 전쟁 중에 유독 6.25전쟁을 한국전쟁이라고 말하게 된 사유를 세계의 국제정세가 이 전쟁을 통해 변화가 되었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에도 남과 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휴전상태에서 객관적인 용어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국전쟁”이라고 지칭하였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이념적인 논란은 아직도 우리의 사회 속에서 화두에 오르내리는 주제이다. 최근에는 이념 논쟁과 검찰권 등에 관한 논란이 정치계를 휩쓸고 지나간 이야기들이 아직도 식지 않은 화두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나온 한국전쟁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영향에 대해 나름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논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저자의 이야기 중에 몇 가지 인상적인 면이 보인다. 즉, 그 동안 반공교육을 받아왔던 세대들에게는 당연한 내용이고, 나 또한 당연하게 배워 왔던 질문들에 대해 학자로서의 논리적 검증은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일 예로 ‘누가 먼저 침략을 하였는가?’, ‘왜 1950년6월25일 일까?’, ‘북한군의 작전과 미군의 작전은 성공하였는가?’, ‘전쟁이 3년을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당연하게 배워 왔고, 반공을 기본으로 한 시각에서 주입되었던 답변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의미와 내용을 재해석을 하고 있다.

     또한 전쟁 이후 미군의 군사력을 통한 한반도 작전권의 현주소에 대해 일본과 다른 정책적인 배경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미군의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 우리의 현실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용산기지 이전과 그에 따른 공개되지 않은 숫한 소문들의 진상과 그 배경에는 과거 한국전쟁을 통한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서부터 근본 원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 때는 한국전쟁의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동상이 인천자유공원에서 철거되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하는 논란으로 신문방송의 뉴스로 등장하였고, 이런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맥아더에 대한 한국전쟁의 작전 수행의 결과는 실패로 보고 있다. 미국이 보는 작전의 성패 기준과 우리가 보는 성패의 내용은 분명 다르리라 생각된다. 허나 이런 내용 속에 변하지 말아야 할 내용으로는 희생을 최소화 하는 내용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이승만대통령의 정치활동이 맹목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으며,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과도 같은 북진통일을 공공연이 비춤으로 미국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강대국의 갖은 압력을 행사하였다.
     당시 한국민을 위한 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활동들은 무엇이었을까? 열악한 경제 상황하에 미국의 원조만이 생명줄 이었던 전쟁 전후의 상황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활동은 무엇이었을까? 또한 지금의 우리 현실 속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져보고 우리의 현주소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전쟁 이후에 보여지는 각종 정치적 상황은 갖은 명분을 덧붙이고 미화하는 독재정권의 연장선이었으며, 이런 내용은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을 통해 현재의 한국을 만들어 왔던 내용일 것이다. 허나 전쟁의 과정 속에 동족 상잔의 뼈아픈 고통이 남아 있고, 아직도 이산가족의 아픔은 끝나지 않은 상황이며, 남과 북의 고착화는 동족간의 고통을 더 받쳐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직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남쪽의 자료와 구 소련의 자료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를 객관적으로 유추하고는 있으나, 많은 부분에 있어 북쪽이나 중국과 오갔던 자료의 공개가 않되 객관적으로 한국전쟁을 평하는 대는 한계가 있다. 그렇게 되기에는 우리가 통일이 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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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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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문화란 무엇일까?에 대해 잘 설명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 있다. 항상 우리 주변에 있어 왔고, 있었던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무엇인지 정확한 실체에 대한 인식 없이 있으니까 있어왔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거론되는 내용이면서 늘 우리들의 삶과 함께하는 텔레비전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위력(?)과 영향력, 지금까지 있어 왔던 변천과정을 다시 한번 읽어 본다.

     여러 분야의 대중문화라고 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저자는 다방면에서 거론하고 있다. 대표적인 TV를 비롯하여, 영화, 라디오, 비디오, 신문, 잡지, 만화, 광고, 연예인, 스타, 등등과 이런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의 모습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거론하고 있으며, 각각의 특성과 변천과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제일 큰 영향을 우리들에게 끼치고 있고,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매체는 단연 TV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오감 중에서 가장 큰 자극인 시각과 청각을 통해 대중문화를 이끌어 왔고, TV에 리모컨이 도입되면서 현란하고 자극적인 화면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변천사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대중문화의 변천사는 자본주의의 변천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 목소리가 커지는 사회이기도 하다. 이런 논리의 바탕에서 TV의 모습은 더욱더 돈을 끌어 모으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고, 이런 변화의 선도적인 위치에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중문화의 발전은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접목이 되어 미국의 영향권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일 예로 스포츠방송에 있어 미국은 축구, 배구보다는 미식축구, 야구, 농구, 등이 더 인기가 높고, 이 인기의 뒤에는 TV의 방송이 한몫을 하고 있는데, 인기가 높은 경기는 경기 규정에 있어 중간중간휴식시간을 넣어 광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 있는 반면에 축구와 배구는 그 경기 규정자체가 일정시간을 전후반으로 나뉘어 진행되데 보니 상대적으로 광고를 못하고, 그래서 TV방송이 적어지고 이로 인한 인기가 저조하다는 설명이다. 일리가 있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경기 규정을 바꾸어서 광고를 내 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른 요소로 보다 박진감과 치열한 경기방식으로의 변화의 요소가 포함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광고주의 돈에 대한 위력이 TV화면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전자기술의 발전은 TV의 고부가적인 기능을 부여하고 있으며, 단편적인 일 예로 리모컨이라는 기능을 통해 보다 자극적이고 시선을 끄는 영상위주의 화면을 구성하는 쪽으로 변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시청률이라는 방송의 평가잣대를 통해 광고수익과 직결되는 요소로 공익적인 면과 선정적인 면의 양면성을 띄우면서 다양한 TV의 기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또한 광고 수익을 극대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다는 설명이다.

     TV이외에도 영화, 라디오의 기능과 활자매체인 신문, 잡지 등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으며, 대중매체를 통해 나타난 스타와 신세대를 주류로 하는 대중문화의 변화는 대중문화라는 다방면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허나 우리나라의 실상은 대중문화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그 실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선도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뭔가 대중문화는 저급한 것이고, 십대들에 의해 휘몰이 되는 모습 속에 연구와 논의가 비판적인 내용으로만 일관되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 대부분이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가 대중문화이고, 전자기술 등의 첨단 기술을 통해 짧은 시간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는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 할 수 있는 내용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이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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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서
나다니엘 필브릭 지음, 한영탁 옮김 / 중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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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앞부분을 집사람이 보면서 ‘엽기’라는 말을 한다. 물론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보통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닌 내용이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읽었던 ‘파이이야기’를 보고 나서 유사한 내용의 책이라는 소개를 받고 호기심에 읽어 본다.
     “바다 한가운데서”의 제목에서 의미 하듯이 바다 한가운데를 표류하면서 겪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배를 탈 때는 배의 선장의 말에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통령이 함정에 타더라도 선장의 자리에는 앉지 못한다는 이야기. 이는 선장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 만큼 망망대해에서 험난한 파도 속에 다수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상황은 극한상황에서 리더로서의 역할과 그 러더쉽에 따라 사람의 생사가 바뀐다는 이야기는 의미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포경선 에이식스호의 침몰과 3대의 고래잡이 보트에 나눠 탄 19명의 선원은 태평양의 망망대해를 94일간 표류하면서 결국 보트를 타고 표류하면서 동료의 인육을 먹고 5명이 생존하여 구조되었고, 섬에 남겨진 3명까지 구조되어 살아 날 수 있었다. 동료의 시체를 먹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포경산업에 대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와 미국의 대표 소설가인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Moby Dick,)’의 주제를 제공한 일화로 유명하다. 이야기 중에 고래에 대한 이야기와 고래를 통해 얻어 내는 고래기름과 포경선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고래를 사냥하는 선원이 고래에 의해 배가 난파당하고, 망망대해를 해쳐나가는 이야기는 비극적이면서도 인간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의 모습을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다.

     망망대해의 태평양에서 조각배와 같은 보트를 타고 94일간을 표류하면서 겪는 표류기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갈증에 대한 생리적 현상과 기아에 내몰릴 때의 인간의 모습, 그리고 항해술과 기록에 대한 중요함을 새삼 인식시켜 준다. 거기에 에이식스호 선원들의 규율 준수와 리더쉽의 역할은 다수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비상식량—건빵과 한 모금의 물—은 사관들에 의해 통제되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반면, 잘못된 위치 판단과 결여된 최신 정보,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식량확보 방법은 제비 뽑기를 통한 동료를 잡아 먹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점은 저자가 이 글을 쓰면서 다양하고 객관적인 사례를 들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고,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존 후 생존자들의 이후 삶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구조된 이후 어느 누구는 선장으로, 어떤 경우는 당시 사회의 최하층인 야경꾼으로 바뀌어진 당시 생존자의 삶의 모습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최후의 모습은 당시의 상황을 잊지 못해 비상식량을 남몰래 숨기는 등의 정신이상이 발생하고,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인간은 다양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 책에서 보여주는 인간들의 모습은 기록을 통해 각 개개인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야수와 같이 돌변하는 이기적인 모습도 있고, 통제된 규율 속에서 공동의 삶을 위해 지켜지는 규칙과 개인의 희생으로 다수에게 먹이가 되는 희생도 따르게 된다. 이런 극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해쳐 나갈 수 있느냐는 당해보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료를 먹고 삶아 남은 사람들을 인육을 먹었다고 비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당시 상황에서 어떤 것이 최상의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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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징 노르가이 -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
에드 더글러스 지음, 신현승 외 옮김 / 시공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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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에 최초로 인간의 족적을 남김 사람을 꼽는다고 하면 대부분 에드먼드 힐러리를 든다. 허나 진정 누가 제일 먼저 올랐는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끈이지 않고 있으며, 정작 최초로 올랐던 텐징 노르가이나 에드먼드 힐러리 두 사람이 명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논란은 에베레스트를 올랐던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논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최고봉에 어떻게, 어떤 과정 속에서 올랐는가가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인간이 못 가본 미답의 지역을 하나하나 줄여가는 과정 속에 1953년5월29일은 인류 역사상 인간이 지구상의 최고봉에 올랐다는 의미가 있는 날로 기록된다. 그런 가운데 텐징은 역사적인 인물로 자리 메김 된다. 최초로 지구상의 최고봉을 오른 사람으로……
     허나 텐징의 이야기는 셰르파라는 전문적인 직업 등반가라는 호칭이 따라다니면서 최초의 최고봉 등반가라는 의미보다는 직업적인 고소 짐꾼으로서의 역할을 부각 받아 왔고, 이런 측면에서 텐징의 최고봉 등반은 그 의미를 힐러리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왔다. 힐러리는 백인이고, 그 백인의 심부름 하는 짐꾼으로서의 텐징의 역할이라는 의미에서 평가절하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기존의 느낌과 생각, 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최고봉 등반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이 책은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요즘의 등반사는 8,000m급 고봉을 무산소, 단독등반이라는 경이적인 신기록을 세우면서 오르고 있다. 마치 동네의 뒷산을 오르듯 8,000m의 거봉을 거뜬히 오르는 경이적인 기록은 에베레스트의 최초의 등반시대인 1950년대와는 그 기록적인 내용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허나 무산소가 되었든 산소통을 등에 메고 올랐든 8,000m라는 고봉을 오른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와 보통의 체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일 것이다. 또한 날씨라는 하느님의 관할 영역 속에서 선택 받은 자만이 오를 수 있는 특별한 일임에 분명하다.
     이런 고소등반에 있어 텐징의 최고봉 등반은 뭔가 특별함이 있어 보인다. 1900년대에 들어 8,000m급의 고산 등반의 붐이 일고, 고산 등반이 마치 자국의 국력을 자랑하는 시대에 히말라야로 몰려드는 서방의 등반대는 당시의 네팔과 인도의 포터라는 신종 직업을 만들어 냈고, 이런 중에서도 고소 등반가이드로서 셰르파라는 직업을 만들어 냈다. 그 중에 텐징도 끼어 있었다. 전문적인 짐꾼으로서의 직업인으로서……
     이런 짐꾼들—셰르파들—은 지역적 환경에 적응한 고소전문 산악인으로 고소등반의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났다고 할 것이다. 허나 그 타고난 재능을 통해 등반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 높은 곳을 목숨 걸고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여느 셰르파와 텐징이 다른 것이었고, 백인 원정대의 짐꾼으로서의 역할을 뛰어 넘어 같은 등반대원이라는 동료애와 역할을 통해 최초의 최고봉 등반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최고봉 등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등반 이후 텐징의 삶과 등반사에 끼친 그의 역할을 자세하게 되 집어 보고 있다. 텐징의 태어난 시대적 환경에서 18세부터 포터로서의 역할, 이후 숫하게 많은 외국 원정대 속에서 탁월한 체력과 뛰어난 상황판단력과 리더쉽은 서방의 고용인인 외국원정대의 일원과 같이 자신의 역할과 입지를 높이면서 결국은 초고봉 등반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초롱룽마—에베레스트의 원 이름—의 등정을 허락함이 같이 했기에 가능 했던 기록일 것이다.

     외국 원정대의 고용인으로서 위치가 아닌 최고봉에 오르려고 한 강한 의지가 결국은 텐징의 최고봉 등정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런 그에 대한 진면목이 세인들에게 알려진 내용과는 다르게 평가절하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런 느낌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며, 진정한 텐징의 위대한 업적의 의미가 어떤 것이었고, 그의 생각과 모습의 진면목을 일부나마 느낌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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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맨 칭기스칸
김종래 지음 / 꿈엔들(꿈&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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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는 새천년을 맞으면서 과거 천 년간의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을 많이 준 인물을 선정하는 기사에서 칭기스칸을 선택하였다.
     왜 칭기스칸을 선택하였을까?
     이에 대한 자세한 답변 내용 중에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인류사에 ‘시간’과 ‘거리’를 뛰어 넘게 한 공적(?)으로 친기스칸이 선정되었다고 선정이유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 방법으로 제시되는 내용은 말(馬)이다. 말을 통한 이동 수단과 물물교환 등의 방편으로 이용하였고, 이런 수단에 제도를 가미하여 거대제국의 시스템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해 저자는 칭기스칸의 제도를 소개하고 있으나 보다 많은 자료와 더 구체적인 연구가 되어야 할 내용일 것이다. 오늘날의 인터넷과 같이 거미줄 같은 몽골의 역참제도와 그에 따르는 보상시스템은 거대제국을 있게 하기 위한 여러 장치 중에 하나일 것은 맞는데 왠지 그런 내용이 단편적인 일 예로만 보인다.

     또 하나 저자의 몽골사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피비린내 나는 피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한다. 몽골과 전투를 벌였다 하면 전멸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복종하느냐 죽느냐의 양자 택일만을 강요 받았던 피정복민의 입장이었고, 우리의 역사도 이런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이외에는 오직 죽음밖에는 없는 힘에 의한 강요의 역사이다. 물론 모든 역사에서 힘의 논리가 작용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칭기스칸의 정복사는 더욱 피비린내 나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역사의 주역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소개하는 피눈물, 신바람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로 동일한 어원인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피의 역사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의 삶을 위해 싸워야 하고, 죽여야 하는 현실과 악조건의 자연환경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강인해져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진리를 일찍 깨우쳤는지도 모르겠다.

     칭기스칸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궁금한 점들이 늘어 난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그 시스템을 만들어 거대제국을 구축할 수 있었을까? 칭기스칸의 강력한 리더쉽에 의해 거대제국을 만들고 이끌 수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리더쉽만으로 거대제국을 건설하였다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그에 대한 더 많은 발굴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칭기스칸에 대한 연구 내용은 무척 제약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유목민의 생활에 대한 이해가 쉽게 안되고, 몽골 유적 이라고 알려진 내용도 빈약하다는 생각과 그저 스쳐 지나간 한편의 태풍과 같은 인물이라고 해서 많은 연구가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지금은 세계무대에서 주역이기 보다는 한때의 영광을 일으켰었던 인물(?), 아니 다치는 대로 죽이고, 강탈해가는 ‘세계의 깡패’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칭기스칸에 대한 인물평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허허벌판에서 3개월의 가을과 같은 여름과 9개월의 혹독한 겨울만이 있는 악조건의 자연환경에서 강인한 삶의 원동력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정신과 힘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재 조명하여 봐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같은 피의 종족이라는 생각과 역사적인 악연 속에서 칭기스칸에 대한 재 해석과 그에 따르는 우리의 생각을 다시 한번 재정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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