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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발로 찬 소녀 1 ㅣ 밀레니엄 (뿔)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밀레니엄 3편에서는 주인공 살란데르에 대한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회복에는 2편에서 받았던 총상에 대한 회복을 비롯하여 소녀시절 정신병원에서 받았던 피해, 공권력에 의해 파괴되었던 성장기에 대한 회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법정에서 벌어지는 그녀에 대한 재판은 한편의 영화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1,2편에 이어 더욱 더 박진감 넘치는 주인공들의 활약은 책을 손에서 떼어 놓지 못하게 한다. 재미있다.
책을 보면서 흥미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 배경이 스웨덴으로 그 곳 사람들의 성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좀더 개방적이라고 할까? 우리도 나의 주변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접하는 내용을 보면 많이 개방적이 되었다고 느끼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나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성에 대한 자유를 만끽한다고 할까? 성 도덕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원칙은 있어 보이지만 성의 개방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 중에 하나로 스웨덴을 꼽는다는 것을 얘기를 익히 들어 왔던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흥미로운 내용은 공권력에 대한 남용에 대한 느낌과 이야기다. 이는 마치 우리사회의 정치면을 장식하는 뉴스들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검찰의 발표—민간인 불법사찰, 대통령 도곡동사저 논란, DDos 선관위 공격 등—를 보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내용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허나 이런저런 내용을 종합해 보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느낌과 왜곡되어 있다는 느낌, 뭔가 숨기려는 느낌은 이 소설에 벌어지는 살란데르에게 벌였던 공권력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된다. 소설 속에는 우연히 찾아온 정보원을 활용해서 개인 또는 일부의 몇 몇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강화하거나 돈을 벌게 해 주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 속에서 바라보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사필귀정이라는 해피엔딩의 얘기와 멋지게 펼쳐 보이는 역전극의 드라마는 흥미를 지속적으로 끌어 당기는 매력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에서도 소설 속의 미카엘과 같은 카우보이가 어딘가에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또 하나 경찰에 대한 느낌이다.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어느 영화, 어느 드라마, 어느 소설 등의 내용을 봐도 한결 같은 느낌으로 너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권력의 시녀로 통제의 수단이라는 느낌은 떨칠 수 없다. 전반부에 펼쳐지는 세포(Sapo) 내의 ‘섹션’을 위시한 검사와 경찰들의 모습은 고리타분하고 음흉하다. 허나 막판에 펼쳐지는 일부 유능한 경찰을 통해 공권력을 바로 잡으려는 모습은 이 소설을 통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게 하는 내용인 듯 하다. 인상적인 내용으로 밀턴시큐리티의 경호요원 수산네 린데르의 생각과 활약은 전체 소설 속에서 그렇게 큰 비중은 아니지만 인상적이다. 또한 전직 경찰이었던 그녀의 경력 중에 왜 사설 경호원으로 전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멋지다.
소설은 여성이라서 침해 받는 불이익과 핍박에 대한 고발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주인공 살란데르를 통해 그녀의 유능함을 보여 줌으로 결코 여자라서 불이익과 핍박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남성으로 이루어진 권위와 힘의 구조 속에 진부하고 나태한 보이지 않는 기존의 질서를 깨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남녀의 구별 없이 인간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살란데르의 재판과 이를 통해 그녀의 무죄방면과 복권되는 모습을 통해 극복해 내는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괴로운 시간은 어떻게도 보상 받지 못하는 아픈 기억일 따름이라는 것을 재삼 뼈아프게 느껴져 온다. 이는 비단 살란데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봐 왔던, 그리고 많이 재 조명해 봐야 할 많은 공권력의 피해에서 그 당사자가 겪었고 겪어 나가게 될 아픔을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가 회복시키는 것이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라고 하겠다. 그나마 소설에서는 비리기업의 돈으로 호화로운 그녀의 남은 여생을 보내는 나름의 재주가 있기에 조금이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겠지만 우리 주변의 당사자들은 이런 위안이 아니라 지속적인 핍박이 이어지는 것이 뼈아프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꼭 기억해 둬야 할 내용이기에 본문을 몇 자 적어 본다. SMP의 신임 편칩국장으로 에리카 베르예르가 부하(임시)기자인 요한네스 프리스크에게 하는 얘기 중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기자로서 자네의 임무는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거지, 관청의 어떤 높은 인간이 말했다 해서 그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야…….”(밀레니엄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1권 334쪽)
소설에서 희망을 느끼는 것은 에리카가 임시기자 요한네스에게 들려주는 이 대사에서 보여 주듯이 바른 언론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나 생각된다. 사실을 사실데로 보여주고 들려 줄 수 있는 언론의 모습은 주인공 미카엘이나 그가 몸담고 있는 《밀레니엄》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우리에게도 이런 《밀레니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각종 이권과 돈에 얽메여 진실을 밝히는데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 왔기에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각종 사건사고의 내용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하는 의문을 언제나 가지면서 봐 왔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