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병자호란 동안 남한산성에 피난해 있던 시기인 1636/12/14~1637/2/2까지의 이야기다. 남한산성에 들어가 40일간을 숨어 있다가 결국 치욕을 당하면서 항복한 이야기다. 힘이 없어서 졌고, 그로 인해 치욕을 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소설 속에 그려지는 당시의 상황은 너무도 무방비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방위시스템의 부재,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밀려오는 청의 세력 앞에 가랑잎 쓸리듯 밀려나 처박혀 있었던 곳이 남한산성이다. 그 남한산성이 오늘날에는 성남의 관광지로 먹거리와 놀이동산과 같은 산책로로 쉽게 돌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삼전도 또한 쉽게 가볼 수 있는 장소이고, 이 곳에 삼전도비가 있다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어느 때 인가 삼전도비에 ‘철거’하는 페인트로 오염시켰다는 방송 뉴스를 접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장소와 유적들이 우리 주변에 있지만 그 의미와 내용에 대해 무감각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내용과 같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임금(인조)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신하에게 지시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비근한 예로 창고에서 젖갈(밴댕이)단지를 발견하고 이것에 대한 처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임금의 재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연 당시에도 이랬을까? 성안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특별식인 밴댕이젖갈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말먹이를 어떻게 구할 것이냐에서부터 병사들의 추위를 막는—실재 방한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지만—가마니를 말먹이로 할 것인가 아니면 말먹이로 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하는 대신들의 쪼잔함과 이를 결정해줘야 하는 임금의 심정이 답답하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으면서 목숨이 경각에 있는 상황에서 예를 지킨답시고 진행하는 행동들은 참으로 가소롭게 느껴진다. 힘이 있는 상태에서 인의예지를 따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영예롭게 싸우고 죽던가 아니면 명예를 위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관찰자 입장에서 보는 것과 죽음을 앞에 둔 당사자 입장이 다르니 이것도 뭐라 얘기할 수 없겠다. 어찌 되었든 치욕을 당하며 붙잡은 삶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으니 후손된 입장에서 마음에 새겨야 할 우리의 역사라 생각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내용이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낸 이야기이겠거니 하지만 역사적 사실들을 미루어 작가가 지어낸 말들의 내용이 그냥 허구로만 넘기기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시스템 부재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당시 300년을 이어온 역사 속에 위기대처 시스템이 너무도 허술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 신하들의 무능 또한 임금이 감내해야 할 치욕 중에 하나일 것이다. 대화의 내용 속에 산성에 숨어 있으면서 적을 물리치기 위한 방책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와 묘책 강구가 너무도 허술 하다는 생각이며, 많지도 않은 아이디어에 대해 갑론 을박하며 뒤에 따르는 정치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무시되거나 면박 당하는 모습은 시스템 부재라는 것을 통감하게 하며 치욕을 당해도 싸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권력층, 다시 얘기해서 기득권층의 솔선수범이 없는 사회제도 속에서는 위기대처 능력이 없어짐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신분사회 속에 떠 받들림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중노동과 이어지는 비참한 삶과 죽음은 차라지 죽음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결과 청병을 따라와 동족—피만 일부 같지만 마음과 몸은 떠난—을 죽음과 업신여김으로 몰아 넣는 통역관 정명수(鄭命壽, ? ~ 1653)의 모습을 보면서 기득권층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생각난다. 얼마 전에 읽었던 ‘로마인이야기’가 생각난다.

     임금이 죽기 살기로 싸운다고 했다면 어떠했을까? 적어도 눈 내리는 산성에 들어가 눈물이나 흘리면서 아홉 번의 절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임금의 모습은 없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인은 누군가 확 열 받게 하는 계기만 있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 내는 기질이 다분히 있어 남한상성의 소설도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치욕의 내용이 아닌 전혀 다른 역사가 그려지지 않았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듯이 그저 상상만 해보지만 목숨을 눈앞에 두고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치욕이 죽음보다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치욕을 선택한 임금의 선택이 탁월했을까는 당시의 상황이 아닌 오늘날의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역전의 기회를 이런 치욕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산성을 치욕의 역사현장으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어느 영화에 이스라엘인 것 같다. 마사다에 관련된 영화가 생각난다. 그곳을 이스라엘 학생들의 극기훈련장으로 찾는 곳이란다. 마사다와는 다르지만 우리만의 역사로 다시 써 보고 이를 통해 치욕을 선택했던 임금의 선택이 후손들에게 역사의 현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1)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34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죽음의 향연 - 광우병의 비밀을 추적한 공포와 전율의 다큐멘터리 메디컬 사이언스 7
리처드 로즈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소들의 화면들을 뉴스 화면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소들이 광우병(狂牛病)에 걸린 소들이라고 한다. 뇌 기능의 문제로 인한 기본적인 생리 작용을 못해 발병된 증상이며, 병을 앓다가 죽은 사체의 뇌를 보면 뇌에 구멍이 나 있다고 한다. 끔직하다. 이런 소들의 이야기다. 아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시작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섬뜩하다. 다름아닌 식인종으로 유명했던 남태평양지역의 뉴기니 섬의 사람들 이야기로 시작된다. 식인종이라는 이야기가 어렸을 때 만화의 소재로 나왔던 생각이 난다. 조금은 왜곡 된 느낌이 들지만…. 그런 식인 풍습이 있는 부족의 이야기로 그들의 식인 풍습에 대한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려 준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병 “쿠루!” 식인을 했던 계층은 뉴기니의 주민들 중에 상대적으로 단백질 섭취에 밀려난 계층으로 여자들과 어린이였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또한 장례절차의 하나로 식인풍습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기도 하고, 그 실상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들만의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들에게서 발생하는 병 쿠루는 고통과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게 하는 병이었다. 이런 병에 대해 일선에서 발벗고 나선 학자가 가이듀섹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장면과 같은 책의 전개는 식인풍습의 장면과 이어지는 쿠루병의 발병내용에 이어지는 학자의 등장과 연구 성과에 대한 소개와 같은 극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러나 쿠루병의 발병원인이 식인습관에 의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며, 이 병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파악은 현재 미진한 상태이다.

     쿠루병과 또 다르게 거론되는 크로이츠펠트야고프병이 다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100만 명 중에 1명 꼴로 발병하는 뇌질환 희귀병으로 쿠루병의 내용과 유사한 질환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남태평양 어느 외지의 이야기가 아닌 유럽의 영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희귀병이라서, 뇌질환의 특수성으로, 일반질병과는 다르게 긴 잠복기—짧게는 2~3년, 길게는 30~40년—의 영향으로 질병의 정확한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단지 사후에 뇌의 질병결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유사질병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또 다른 질환으로 동물들, 특히 소, 양 등에서 보여지는 일명 광우병은 어느 날 갑자기 전면에 등장한다. 정상적으로 서있지 못하고,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처리하지 못하다가 죽음을 맞는 소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원인을 찾아 나가는 과정의 이야기 또한 충격적으로 와 닿는다. 결국 뉴기니섬의 식인습관과 유사한 동족 식육습관이 장기간의 잠복기를 거쳐 뇌질환 질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광우병 역시 초식동물인 소, 양 등이 산업화된 대량 식육공장을 통해 만들어지는 육식성 사료에 의해 사육되는 동물들에서 발병되고 있다는 이야기 또한 충격적이다.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각종 실험들—약품으로 소독하고, 전통적인 고온고압 살균을 하고, 자외선 등의 빛을 쪼이고, 방사능에 의한 살균 등의 작업들—을 통해서도 살아남아 또 다른 질병을 유발시키는 악질(?)적인 모습의 병이라는 것이 놀랍다. 전통적으로 끓는 물에 2~3분이면 대부분의 세균, 바이러스 등의 질병의 원인균들이 죽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 질병의 원인균—아직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은 잘 버티고 살아남아 또 다른 죽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질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오직 ‘운’ 밖에는 없어 보인다. 예방법은 식용으로 사용되는 동물들의 정상적인 키우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동물들도 뇌나 특수 부위에 대한 식용을 않하면 될까? 잘 모르겠다.

     불치의 병들이 과거 암에서 AIDS를 거쳐 이제는 (인간)광우병으로 대변되는 뇌질환들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점점 더 극소화되고 완치라는 개념이 애매모호하게 변화되는 느낌이다. 이런 불치의 병들도 점차 치료방법들이 찾아지고 불치는 없어지기는 하지만 또 다른 불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니면 과거에도 발생했는데 그 빈도가 희박하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고 이제는 더 세밀해져 이런 불치의 병까지고 영역이 넓어져 알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 산업화되고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희귀하던 병이 이제는 이런 병까지도 대량생산체계를 맞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된다. 하루빨리 그 원인 규명과 그에 따른 해결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현대사회에서 질병이든 그 치료법이든 경쟁체계 속에서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형태는 또 다른 생각이 들게 한다. 질병에 대한 발견과 치료법의 개발은 명성과 부로 이어지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결과에 집착한 모습은 다양한 방법의 시도를 죽이는 내용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희귀병에 대한 경쟁적인 질병원인 발견과 해결노력들에 대한 학계의 모습 또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최근에 있었던 황박사의 해프닝과도 같은 느낌들이 든다. 그냥 해프닝이 아닌 정확한 원인 분석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맘 또한 간절하다. 그만큼의 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기는 바라는 마음에서….

     최근 이슈화되는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 등이 거론되면서 이어지는 광우병과의 연관성은 이 책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단지 광우병 자체의 의미와 내용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는 것이고, 발병원인이 밝혀진 내용을 토대로 수입되는 미국산 소고기의 생산, 유통과정이 시스템화된 감시체계 속에서 확인된 소고기 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이슈화된 광우병의 내용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추리소설과 정신분석이라는 주제가 잘 어울려져 있고, 현실감 있는 주변이야기가 잘 엮어져 재미있다. 정신분석이라는 주제 자체가 어려운 학문적인 소재를 소설형식으로 풀어내기는 어려워 보이는데도 등장하는 정신분석의 원 창시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면서 재미를 더해 간다. 이야기는 2~3가지의 상황이 동시에 전개되면서 어느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책 표지에도 조만간 영화화 된다는 것을 알리면서 재미있다는 것을 암시 한다.

     처음 정신분석이라는 주제가 포함된 내용이면서 등장인물에 프로이트라는 정신분석가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설명을 듣고 별로겠거니, 아니면 조금은 어렵겠다는 선입견은 들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설명에 흥미를 느끼게도 한다.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재미를 더해 준다. 서로 다른 시점의 이야기가 얽히면서 하나의 사건 종결로 이어지는 소설의 형식은 책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화 한다면 책이 주는 재미는 덜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의 앞뒤에 보여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와 많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현재 법과 교수 이며, 프로이트와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다고 한 작가의 이력은 소설 속의 이야기와 관련이 많아 보인다. 그 중에서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유명한 문구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하는 내용은 소설 속에 주인공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숙제로 등장한다. 이 내용은 다 읽고 나서 후기에 나오는 작가 소개의 글들 속에서 작가가 전공했던 공부 내용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의 전개나 끌어 가는 과정 속에 등장하는 당시(1909년을 전후한) 뉴욕의 모습들이 잘 묘사되면서 사건을 따라가는 과정이 박진감 있게 느껴진다. 처음 살인현장을 묘사하는 내용에서는 TV 연제드라마 CSI를 통해 많이 접했던 살인현장의 감식 장면이 연상되나 소설 속에 그려지는 내용은 어설퍼 보인다. 지문 감식이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소설 속의 상황은 바로 확인될 수 있는 내용인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너무 많이 CSI를 봐서 그런 것도 같다. 허나 소설 속에 보여지는 이야기의 기간은 대략 1주일 정도 지나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이야기이니 지문감식이다 유전가 분석이다 하면서 오직 과학적인 분석에만 의존하는 수사 방법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물론 소설 속의 용의자에 대한 논리적이고 증거에 의한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방법은 당시와의 차이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후반부로 가면서 다리—다리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브룩클린다리 인지 맨허튼다리인지 혼돈이 되는데 유명하기는 브룩클린다리(1883년 개통)가 더 유명한데, 개통시점을 보면 맨허튼다리(1909년 개통), 킌즈보로다리(1909년 개통)가 있어 과연 어느 다리가 배경이 되었는지 책을 다시 찾아 봐야겠다—건설 현장에서 증거물을 찾는 장면은 여느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박진감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이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이지 않겠나 생각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이트와 그이 제자들 중의 한 명인 융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 당시(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의 미국 방문 시점)의 정신분석학자들 간의 권위, 암투, 알력 등이 유명세와 엮어져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새로운 학설의 탄생과정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내용은 파격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런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하나의 학설로 인정되는 과정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이 든다. 또한 그의 제자가 스승과의 관계와 자신의 새로운 학설에 대한 인지, 그를 통한 유명세와 권위를 만들고자 하는 야심이 소설 속에서 느껴진다. 분명 이런 내용들이 실재 벌어진 이야기 일까라는 의문을 갖는다면 누구도 답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과거의 당사자들만이 답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단지 우리는 소설 속에서 그 사건들에 대한 상상을 해볼 따름이다.

     추리소설에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접목하면서 처음 내가 가졌던 선입견을 깨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작가가 들려주는 작가후기는 등장하는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이야기 하면서 많은 고증과 연구를 거치고 자신이 배웠고 관심 있었던 분야의 내용을 조화 시켜 멋진 소설을 만들어 낸 것에 놀랍다. 하나의 소설이 이야기의 뼈와 살을 만들어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완성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러 수고를 단지 재미있게 느끼고 읽을 수 있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의 죽음 - 오래된 숲에서 펼쳐지는 소멸과 탄생의 위대한 드라마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한편의 서사시 같은 느낌의 책이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학술적인 내용의 느낌 보다는 나무가 자라서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쉽게 풀어서 전달해 주는 드라마와도 같은 느낌이 든다. 주로 서술하는 내용의 사진과 곁들여 보여주고 있어 더욱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전문적인 용어는 되도록 피하고 일상적인 용어로 서술되어 있어 더더욱 그런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서술하는 내용에 맞는 사진의 내용이 어디의 어떤 나무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서문에 얘기하는 내용으로 봐서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아닐 것 같고, 세계의 여러 장소를 보면서 다루는 주제에 맞는 적당한 모습의 사진을 넣어 편집된 느낌을 갖게 한다. 장소와 내용을 적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이야기 하면서 우리나라의 숲, 특히 나무의 죽음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많이 얘기하고 있다. 나무의 생장과 더불어 죽음이 이루어지는 원시림(?)이 없어서 서술하는 내용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만큼 한국의 숲은 많이 망가지고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훼손 된 모습이 많다는 이야기 이겠다.

     나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한편으로 보면 무척이나 상식적인 이야기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죽어 썩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는 비단 나무만이 아니라 동물도 그렇고, 사람도 죽어 땅에 뭍 쳐 땅으로 돌아 가는 동일한 자연섭리에 의한 이치를 유독 나무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책까지 엮었다는 것은 나름의 독특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내용은 결국 나무가 죽어 분해되는 과정들—산짐승들과 곤충들의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쓰러져 곰팡이와 균류, 지의류 등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다가 분해되어 결국 새로운 생명의 영양분을 제공하는 땅으로 돌아가는—이 긴 시간을 통해 동물들에게나 다른 식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엄청나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사람들의 삶의 공간들에서 보여지는 나무는 대부분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고, 죽은 모습은 가공되어 사람의 삶을 도와주는 모습이라서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해체되고 다시 다른 식물들의 양분으로 재 탄생되는 모습을 요즘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한때는 쉽게 우리주변에서 볼 수 있던 나무들의 모습들이 하나 둘 없어지고 변형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하나 더 저자가 이야기 하는 내용 중에 보여지는 사진의 모습들 속에서 보다 더 세부적인 내용, 예를 들면 썩어 가는 나무의 모습이 겉 모습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나무 둥치에서 밑 뿌리 부분과 상층부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고, 또한 나무의 종류에 따라 그 썩는 과정은 달라지리라 생각된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나무의 죽음과 썩어가는 과정 속에 등장하는 각종 곤충이나 세균, 균류들의 개괄적인 먼 시야의 사진 모습이 아닌 미세한 그들의 실체를 보여 주었다면 더욱 더 생동감 있는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찌 되었든 나무들의 죽음은 단순히 죽음으로 인해 스러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썩어 가는 과정에서부터 흙으로 돌아가 재창조의 부활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숲에서 계곡에서 강가에서 각종 나무들의 삶의 모습과 그 이후의 모습은 사람을 비롯하여 지구상의 각종 동식물들에게 새로운 삶을 재 창조하는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엽기 조선풍속사 - 조선.조선인이 살아가는 진풍경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엽기 조선왕조실록”에 이어 나온 “엽기 조선풍속사”는 전편의 신선하게 느꼈던 느낌이 많이 반감되어 전해져 온다. 전편에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제목과 같이 왕가(王家)의 이야기를 풍자한 대화 내용과 걸쭉한 입담이 묻어남에 재미를 느꼈다. 이런 점이 그 동안 왕에 관련된 나름의 권위(?)를 파괴하는 느낌이 들어 재미를 더했다고 느꼈었다. 그런 여세를 몰아 후속편인 “엽기 조선풍속사”는 왕가의 이야기가 아닌 일반 서민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 된다. 허나 그 느낌과는 다르게 전편과 별반 차이 없이 기득권층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고, 일부 서민들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들어가 있는데 이 또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어 전편의 신선함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내용 속에는 잘 모르고 사용해 왔던 용어—화냥년, 호래자식, 등—에서부터, 알려지지 않은 조금은 엽기적(?)인 사건들—똥대포, 화장실 뒤처리 방법, 등—을 새롭게 접한다는 느낌은 들지만 전반적으로 전편의 느낌과 비교할 때 후속편이 전편의 신선함을 새롭게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반면에 서글픈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그 진실을 알고 있어야 할 내용으로 대마도정벌이나, 통치정책의 키워드로 외우고 있던 ‘억불숭유’의 실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단지 외워야 할 역사 단어, 문구로 알고 있던 것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밖에도 우리 주변에도 이어져오고 있는 통과의례에 대한 유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다. 그 일례로 “면신례(免新禮)”의 모습은 조선의 공직사회에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실상이 지금도 알게 모르게 전해내려 오고 있다면 그 뿌리깊음을 통감하고 과감하게 없애야 할 관습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역사의식에는 많은 부분에서 민족사관의 영향을 받아들여 조금씩 변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허나 전반적인 역사적 내용을 보면 긍정적인 내용은 뜬구름 잡는 전설 같은 느낌을 많이 갖게 하고 있고, 부정적인 내용은 너무도 세부적이고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고, 고정관념 속에 획일적인 해석을 강요 받아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런 측면에서 해학적인 대사 내용과 곁들여 현실비판과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역사해석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엽기 조선왕조실록, 엽기 조선풍속사—는 새로운 시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전편의 인기(?)에 이은 짜깁기식의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나름의 연구와 고증을 거쳐 새롭고 구상하는 상상력이 없이는 만들어 지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전편을 보았기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대 했던 느낌과는 거리감이 있다. 전편에서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위안은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몰랐던, 아니 간과하고 넘어 갔었던 역사적 실체를 정확하게 보고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에는 공감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