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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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의 대학생이야기다. 젊은 여대생 우수련은 여러 가지 주변 환경이 밝아 보이질 않는다. 자궁암으로 임종을 앞둔 할머니와 실직한 아버지, 집안 생활을 꾸려가는 어머니, 학창시절의 뭣 모르는 남동생들의 틈바구니 속에 꿈 많고, 잠 많은 여대생 주인공은 이런 집안 환경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결국은 탈출 창구로 등장하는 것이 연극—6,70년대의 민주화를 이루려는 저항적인 성격의 연극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이루어지는 한달 가량의 가출 기간의 회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연극단원으로 벌어지는 단원들간의 연습 과정과 연출가이면서 극장주의 사위이면서 대학교수의 남편인 박해경과의 관계, 친구 성재와 있었던 추억과 시국사범으로 쫓기는 모습 등이 이어지면서 이 이야기가 35살이 된 지금에서 스무살 그 때를 회상하는 이야기라는 결말은 많은 공감을 불러 온다.

     이야기 중에 많은 부분에 있어 작가의 현란한 냄새에 대한 표현은 탁월하다. 상황상황 느껴지는 냄새에 대한 표현은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느끼게 한다. 아버지의 입냄새나 임종을 앞둔 할머니에게서 나오는 각종 냄새, 엄마 냄새, 할머니의 병환으로 이어져 밀려 밀려 올라간 다락방에서 나는 냄새는 나의 어릴적 경험들에서 느꼈던 그 많은 냄새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내고 있다. 작가가 표현하는 이런 각종 냄새들의 내용이 결코 향기로운 냄새들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냄새들이다. 하지만 각자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냄새들이지 않나 생각된다. 이런 냄새의 기억이 소설의 마지막에 보여지는 것과 같이 30대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에 이르러 10여 년 전의 스무살을 기억하는 이야기에 많은 부분에 있어 공감대를 만들고 있다.

     소설을 보면서 과연 나의 스물은 어떤 모습이었나를 생각해 본다. 대학생의 모습은 이 소설의 주인공과 같이 동일했고, 집안 환경의 모습 또한 아주 다른 것도 아닌 모습이었고, 이런 저런 나의 스물과 비교해 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느낌이라 생각된다. 단지 다르다고 하면 가출이라는 것을 해보지 못함이 주인공보다는 내가 더 견딜 만 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러다 보니 작가가 표현하는 냄새에 대한 추억에 공감되어져 오나 보다. 단지 연극이라는 것에는 문외한이기에 소설 속에 그려지는 연극과 관련된 그들의 환경이 쉽게 이해되고 공감되지는 않는다.

     주인공 수련과 연극단장 격인 해경과의 관계, 남자친구 성재와의 추억 등은 주인공이 스물을 살아가는데 있어 많은 기억과 경험을 만들어 주는 주인공들이다. 또한 스무살을 통과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해경과의 관계는 멋모르는 첫경험이라는 기억만이 남는다. 35세에 만난 해경과의 재회는 아련한 옛 기억의 덤덤함만이 남는다. 과거의 특별한 경험의 당사자를 만난다는 것은 또 다른 기억의 느낌을 갖게 한다. 결국에는 가족으로 돌아와 없었던 일 인양 원위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가족이기에 물어보지 않아도 이해가 되고, 그냥 있기만 하면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는 우리들의 안식처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첫사랑—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과연 나의 첫사랑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어찌 되었든 후보로 올라오는 몇몇의 이름들 중에—을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소설의 주인공과 같이 통과의례에 따른 첫경험의 대상을 다시 본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어떤 느낌과 감성이 느껴질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니면 이후 나에게나 상대에게 뭔가 둘만의 특별함이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어떤 감성을 느끼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당시에 같이 겪었던 일들을 기억하겠지만 그저 아련한 지난 시간 속의 일들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라는 생각만 든다. 그렇지만 한번은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어떻게 그들은 나름으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의 갈림길에서 각자의 삶의 끈이 연결 되어지는 것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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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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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우주비행사의 이야기와 다른 한번은 평범한 30대의 여느 입사지망생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치 우주비행사가 그들만이 느끼고 체험했던 이야기를 친한 사람에게 전해 주는 이야기처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는 기자를 꿈꾸는 입사지망생의 일상의 모습과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와 집 나간 고모를 찾아 미국에 갔다 오는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여자를 꿈꾸는 친구 민의 모습 또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이런 이야기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다가 결국에는 현실을 바로 보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어느 소설가의 서평에서도 얘기 했듯이 등장하는 우주비행사의 편지글—나중에 주인공 은미의 고모가 상상하여 어머니(은미의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너무도 실감난다. 마치 미국의 NASA라는 데에 근무하는 진짜 우주비행사의 체험담을 쓴 내용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최근에 신문지상과 방송에 연일 보도되는 세계 각국의 경쟁적인 우주개발과 달 기지 운운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우주비행사의 이야기가 상상만의 일이 아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 상상해 볼 수 있는 이야기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또 다른 현실적인 이야기로 은미의 고모를 찾아 가는 이야기가 초반에는 우주비행사의 편지글과 결부되어 진짜 우주비행사인 고모를 찾아가는 느낌을 갖게 하지만 고모를 만나고 난 다음날 고모의 현실을 보면서 약간은 실망이 느껴진다. 우주비행사의 멋진 편지가 그런 꿈 같은 상상을 하게하던 것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유원지의 매점의 사장이라는 본 모습의 고모를 보고서 상상은 깨지고 만다. 그러면서 고모의 삶을 보면서 뭔가 모를 우리의 실체에 대한 인식을 하게 한다. 결국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은미는 가업으로 이어지는 갈비집 식당 점원으로 취직하여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이 출근하는 모습이 대 반전으로 느껴진다. 또한 여성을 꿈꾸는 친구 민의 트랜스젠더의 결심과 수술, 조카의 모습 등은 여느 일상의 모습 속에서 나를 찾고자 하는 주변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창시절 소위 학교에서 잘나가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겠다. 이런 인물로 보여주는 주인공 은미와 은미의 고모는 학교에서 우등생 대열에 오른 사람들이겠다. 이런 사람들이 각자 개인들이 가지는 꿈을 쫓아 살아가는 과정은 다르게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그려지는 은미의 고모의 모습이 그런 전형을 보여준다. 우등생에서 파격적인 결혼과 출산, 이혼, 외국인과의 재혼 등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암으로 인한 시한부 삶의 모습이 평범한 삶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삶의 모습이 불행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행복의 관점에서 본다고 하면 과연 고모는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내용으로 봐서는 행복해 보인다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만족해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투병과 삶을 마감해 가면서 그려지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말미에 은미가 전해 준 선물 속에서 어머니로서 아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조카의 파행적인 행동의 모습 속에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런 고모의 삶의 모습을 통해 은미나 그녀의 친구 민의 모습은 각기 다른 상황으로 그려진다. 은미는 현실을 직시하는 모습으로 다른 한편은 꿈을 쫓아 가는 모습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과연 어떤 모습이 더 바람직한 선택일까? 이분법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이는 각자의 인생을 자기가 선택하기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늘 상 꿈꾸는 이상이 현실에 접목되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꿈은 나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라 생각된다. 현실을 배제한 꿈은 막연한 이상으로만 남겠지만 이상을 생각하고 이상을 이루려고 하는 많은 시도의 현실이 나를 지금보다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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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제국 -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나
존 스틸 고든 지음, 안진환.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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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이 쓰는 미국 경제사에 대한 이야기다. 부자 나라에 대한 부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한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미국은 어떻게 해서 부를 만들고 오늘의 최고 갑부 나라 중에 하나로 키워낼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야기의 내용은 미국의 태동에서 현재(2004년)에 이르기까지 경제사 중심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2007년 현재 전세계의 경제대국이면서 힘의 제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또한 미국의 증시 상황이 한국의 증시에 바로 연결되어 우리의 증시의 등락에 직결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경제 대국의 이야기는 우리의 부 창출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많은 이야기의 내용에는 미국의 역사와 경제사는 서로 다른 이야기는 아니지만 부(돈)의 관점에서 바라 본 내용은 약간은 다르게 진행이 되며, 정치사 관점이 아니라서 그런지 거론되는 미국 역대 대통령의 이름들도 그들의 정치적 업적 보다는 경제사에 미친 영향력—잘 된 정책을 폈든, 실패한 정책을 폈든 그들이 펼쳐 낸 경제에 미친 영향력에 따라 거론되는 이야기와 내용은 달리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 뉴딜정책의 핵심인물이었던 플랭클린 루스벨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뉴딜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과 이어지는 제반 경제정책은 미국을 명실상부한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 놓게 된 역사적 사실이며, 이런 역사적 배경을 통해 부각되어 보여주는 대통령으로 플랭클린 루스벨트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춰지는 에이브러험 링컨을 들 수 있겠다.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오히려 경제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밖에도 많은 역대 대통령들의 각종 경제 정책들은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오늘의 부를 창출해 놓은 결과가 되었다.

     미국의 경제 발전의 내용을 보면 저자가 가리키는 것과 같이 전쟁이 실질적인 부 창출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미국이 관여 된 각종 전쟁들은 세계대전, 남북전쟁, 멕시코전쟁 등 전쟁을 통해 기존의 경제시스템의 개편과 그 시스템 개편을 위한 제반 여건을 개혁하고 있다. 지리적인 여건과 세계적 정치 상황의 결과가 결국에는 전쟁과 결부되어 미국의 부 창출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부 창출의 내용 중에 특이한 점은 자유주의 체제 하에 놓여 있는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본성을 제일 잘 발달 시킬 수 있는 운영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철저하게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펼쳐 왔고, 일부 정부에 의한 조정정책을 펼치기도 했고, 최소한의 조정으로 그 권한과 내용을 조절해 왔지만 본질적인 통제 없이 자유주의가 미국 부 창출의 기본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최근에는 빌 게이츠와 같이 통신과 인터넷을 비롯한 첨단 전자산업의 발달로 거대 갑부가 창출되고, 이 결과가 부익부 빈익빈 이라는 양극화의 사회 현상을 보이는 결과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중산층의 붕괴와 부의 편중화는 사회의 불안 요소로 잠재되어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의 불안 요인이 간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현상 또한 미국의 현실이다. 이외에도 인종문제 등 또한 부와 관련되어 보여주고 있는 미국의 사회현상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런 일련의 미국의 부의 움직임이 부자나라의 이야기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부를 미국과 같이 만들 수 있는 직설적인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미국이 만들어 낸 부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부창출시스템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금석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미국의 갑부들의 자신의 부를 재 분배하는 배품(자선)에 대한 모범을 보이고도 있다. 이 내용이 사회에 파급되는 영향이 얼마나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 타의 모범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모습 또한 증시의 변화가 직결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한국의 갑부들에게도 전달되어 우리 사회의 부 창출시스템에 이식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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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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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림(儒林)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林’은 숲처럼 많은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는 "공자(孔子)를 숭상하고 유교를 따르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나와 있다. 오늘날에는 “유학(儒學)을 공부하며 유교적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추가적인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이런 사전적 의미에 내 개인적인 선입견은 왠지 고리타분(?)하다고 할까? 고리타분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구세대, 보수적인 느낌, 시대에 뒤 떨어진다는 의미들로 연상된다. 이는 서양문물에 뒤처져 서양화된 시각에서 바라본 내용이라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일 수도 있겠다. 또한 그런 교육을 받아왔고, 알게 모르게 세뇌되어 각인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이런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왠지 느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는 생각이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 부족의 기반 위에 현재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리문화에 대한 생각을 이 책들에서 뭔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여 보여주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주변에서—지금은 아니지만 출판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랐던 책들 중에 하나이어서 더욱 더 그런 기대를 해 본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졌다고 하나 내가 본 내용은 1부로 3권으로 구성된 내용으로 정도전, 공자, 이퇴계를 중심으로 한 유교사상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첫 편에는 정도전의 혁신정치가 시대상황에 반영되지 못하고 기득권 세력에 밀려 몰락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고, 정도전이 시도하려고 했던 공자의 이상정치의 원류를 찾아 공자의 행정을 돌아보며, 3권에는 이퇴계의 행적을 통해 공자의 유학의 완성을 이루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심오한 유학이라는 내용을 감히 전공도 하지 않은 내가 거론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고, 감히 논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단지 책을 보면서 저자가 생각하는 의도와 나의 느낌을 간단하게나마 내 나를 대로 적어 본다.

     우선 작가의 의도가 좋다.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우리의 것을 찾아 보는 것도 좋고, 우리 조상의 행적을 통해 오늘을 되돌아 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는 내용이다. 또한 기술과 경제의 급속한 변화 환경 속에서 약간은 맞지 않는 유교, 유학의 여러 사상들이 어떻게 자리 메김 하고, 우리 것으로 변화하여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있어서는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공감되어져 온다.

     또한 이야기를 풀어 가는 과정에 있어 쉽게 접하면서 거부감 없이 느낄 수 있는 우리 조상의 이야기라는 생동감을 불어 넣는데 있어서 이 소설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행문과 같은 형식으로 500년의 시간 간극을 현실로 불러와 당시의 탁월하고 명석했던 선조들의 족적을 되짚어 보면서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좋았다. 단지 바라보는 관점의 차리라고 할까? 다수의 대중에 대한 생각의 관점이 오늘날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기득권층의 비기득권층에 보이는 배려(?)가 너무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특히나 그런 행태의 모습은 과거 500년 전이나 지금의 현실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기득권을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배려도 못하는 그런 정치현실이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런 우리의 역사를 통해 후손에게 물려줄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금석이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책을 보면서 작가의 의도 중에 나름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서술되어지는 양반계급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정서와는 사뭇 다른 점을 많이 느끼게 한다. 일 예로 3권에 나오는 이퇴계의 이야기는 남녀상열지사라고 할까 계급과 나이를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서술하는 내용이 이퇴계의 유학을 완성하고, 동방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적 업적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런 의구심은 한편으로 우리들이 우리자신에 대해 호칭할 때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며, 이퇴계, 이율곡 등의 유학의 대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그 대가들의 사상이나 저술 내용이 뭇 사람들에게 쉽게 와 닿고, 설명하는 내용은 찾아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 조상의 유구한 업적과 빛나는 얼을 받들기 위해서는 과연 그 업적과 얼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고 되새겨야 자부심이 생기고 긍지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글이나 최초의 인쇄물인 다라니경, 팔만대장경, 등등 우리 조상들의 숫한 업적과 유물들이 과연 당시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느냐에 대한 오늘날의 재해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가 소설이라는 방법을 통해 『유림』이라는 우리 조상의 빛나는 얼을 오늘에 되살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후속으로 이어지는 2부에서 나의 궁금증과 답변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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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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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니셜로 표현되어 있다. S, K, B, Y, P, …. 이런 등장인물들의 표현이 한편으로는 기계적인 느낌을 준다. 사람들마다 고유한 이름 대신에 영문 이니셜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 작가 나름의 의도한 바가 있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내 개인적으로는 너무 성의 없어 보인다. 어찌 되었든 소설 속의 6편의 중단편은 조금은 난해한 느낌을 갖게 한다. 누구 말과 같이 몰입을 해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다시 읽어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매번 지하철에서 졸면서 봐서 그런지 읽고 나서 본 내용에 대한 느낌을 적으려고 하니 아무 생각이 없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를 봤을 때 작가가 그려내는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은 마치 그 등장인물의 주인공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그렇게도 똑같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마이너리그』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의 생활모습과 그려내는 내용이 마치 작가 자신이 남자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작가의 많은 작품들은 나름의 색깔을 자지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작가만의 나름의 색깔에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가는 느낌이 이 소설집의 소설들을 보면서 느껴진다. 현실적인 면보다는 관념적인 면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각 속에서 과거가 되었든, 어떤 특정한 상황이 되었든 생각했음직한 그런 생각들의 연상을 하게 하지만 쉽게 그런 느낌과 생각에 공감되어지지 않는다. 특정의 상황과 경험을 토대로 한 생각의 공감을 만들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지칭을 영문 이니셜로 처리 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자의적인 해석인지도 모르겠고….

     어찌 되었든 소설들의 대략의 줄거리는 알겠는데 작가가 의도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쉽게 느껴져 오지 않는다는 점은 내가 너무 졸면서 비몽사몽간에 책장만 넘겼든지 아니면, 작가의 색깔 변화의 시도 속에 기존의 느낌과는 다른 시도가 쉽게 공감되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한번 정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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