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 앉은 오후 - 제4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신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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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어 않은 오후』는 은해와 윤자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은해는 20대의 젊은 여성으로 호출기 회사에서 메신저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간혹 아르바이트로 음란 영화의 더빙을 하는 일도 한다. 소설 속에서 은해는 우유부단함을 느끼게 한다. 일상은 지루함이 묻어 나기도 하고. 다른 주인공인 윤자는 중년의 여성으로 딸을 사고로 잃고,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은해와 같은 성격을 가진 딸을 두었던 중년여성으로 같은 동에 살면서 같은 시간대의 수영을 강습 받기도 하고, 간혹 백화점에서 스치듯이 지나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제목에서와 같이 오후의 따분함이 느껴진다. 일상의 지루함을 덜고자 하는 은해는 수영강습을 받는다. 수영강사와의 관계 또한 무미건조함이 배어 나온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더빙한 음란물의 배경음 속에서 벌이는 수영강사와의 정사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조금은 선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내용과 음란물 더빙의 모습과는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다른 주인공 윤자의 모습은 또 다른 따분함을 느끼게 한다. 은해와 같은 딸을 사고로 잃은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려 하는 모습 보다는 그저 이제 막 노년으로 접어드는 폐경기의 여성이 일상의 따분함을 벗어나고자 수영강습을 받는 모습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습관적인 도벽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선다. 약간 의외의 모습이라고 할 까. 여성들이 간혹 생리기간 동안 도벽이 생긴다고들 하지만 폐경기기의 여성의 도벽은 약간 의외로 느껴진다.

     은해와 윤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같은 동에 사는 이웃이고, 같은 수영강습을 받고, 같은 백화점에 만나 알게 되는 과정이 너무도 밀접한 관계일 것 같으면서도 그려지는 내용으로 봐서는 잠시 잠깐 스치는 관계로 그려진다. 초반부 각기 보여지는 주인공 각자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이야기가 후반부 가서는 뭔가 특별한 관계의 이야기로 변화되리라 생각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그저 스치는 관계에서 더 발전이 없다. 따분한 일상의 20대와 갱년기에 접어든 50대의 모습 속에 서로 공감되지 않는 모습이 각기 다르게 그려지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두 사람은 공원에 마주 않아 있는 모습이 뭔가 특별히 상호간의 교감을 느끼게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낮 선 사람들의 관계 속에 서로 섞이지 않는 모습이 더욱 오후의 따분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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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 주일 - 제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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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상의 유부녀와 연하의 미혼남자 간의 이야기다. 요즘은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의 사랑이 보편화되어 이 이야기 또한 그런 세태의 반영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출장간 일주일 동안 연하의 남자와 벌이는 이야기로 토요일부터 요일별 소제목이 붙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버지 나이 마흔이 넘어 태어난 주인공 준태는 아버지와의 세대차이를 몸소 느끼면서 왠지 모를 아버지에 대한 중압감을 좁히지 못하는 벽으로 느끼고 있다. 가까워지는 아버지의 생신에 참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연상의 여인 기연씨와의 일주일간의 이야기다. 여자에게는 남편이 없는 일주일간의 시간이고, 남자에게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기간으로 작용한다. 일주일은 두 사람에게는 왠지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아 억압된 틀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시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고정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소설의 내용은 파격이다. 연상의 유부녀와 연하의 미혼 남이 일주일간을 같이 보내면서 벌이는 애정행각(?)은 기존의 틀에서 본다면 분명 불륜의 현장이다. 간혹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가볍게 풀어 나가고 있다. 마치 연하의 동생이 누나를 찾아와 놀다가는 정도의 가벼움이라고 할 까. 그러면서도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벗어나고자 하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이나 관계가 쉽지 않지만 편하고 쉽게 읽힌다.

     어떤 고정의 틀 속에서 우리를 끼워 맞추는 관계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소설의 내용과 같이 사회적으로 불륜이라는 틀에 끼워진 이야기도 있지만 TV드라마에서 흥미를 위해 많이 보여져서 그런지 연상 유부녀와 연하 미혼 남의 이야기가 부도덕하고 비난 받아야 할 이야기로 느끼기 보다는 그럴 경우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이후를 상상해 보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소설에서는 일주일을 그렸지만 일주일이 끝나 연상 녀의 남편이 돌아와 둘의 관계를 알고 벌이는 모습이나, 연상 녀를 데리고 아버지 생일잔치 장소를 찾아가려고 하는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순탄한 삶의 모습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우리를 틀 속에 고정시키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고정된 틀 속에서 끼워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은 많으리라 생각된다.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성장배경도 있을 것이고, 이 소설과는 다른 내용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고정관념의 내용 속에서 강박관념이 생기고 강박관념을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는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여 받아 들이느냐의 문제이지 않나 생각된다. 너무 개념적인 이야기로 흘러온 느낌이 든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과 같이 가볍게 읽히면서 고정된 틀 속에서 강박관념을 갖는 주인공과 그 틀을 깨고자 하는 파격은 한번은 생각해 봄직하지만 이후 상상되는 파장은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도 된다.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 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실재하기에는 너무도 부담스럽고 뒷감당이 않되는 이야기다. 아직 우리의 사회가 많이 들어오고 가상으로 봐 왔던 이야기 이지만 우리 사회의 고정 틀을 깨기에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 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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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떼가 나왔다 -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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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코믹잔혹극이라고 한다. 소설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는 섬뜩 하다. 예기치 않은 살인과 은폐를 위한 시체의 절단, 이어지는 본의 아닌 유괴, 자신의 외모 중에 미완이라고 느끼는 다리의 절단, 이를 비관한 자살 등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섬뜩한 단어들의 나열은 잔혹극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 거기에 코믹이라는 말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용이 코믹하다는 얘기이겠다.

     제목에서도 「악어떼가…」라는 이름에서 ‘악어’라는 이미지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괴된 어린아이의 배에도, 살인을 하고 난 사체를 처리하기 위한 도구 등에도 악어라는 이미지를 얘기하고 있다. 본격적인 의미로는 살인자의 딸이 자살하고 난 한강변에 올라 왔다는 시체들의 모습 속에 어느 TV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을 가로지는 누 떼가 강을 건너는 장면과 그 강을 건너는 누를 덥쳐 잡아 먹는 악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또 다른 이미지는 악어를 상징으로 하는 라코스테라는 상표가 생각난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라코스테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샘소나이트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명 중에 하나라는 내용이 조회된다. 이런 이미지들이 이 소설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토막토막 이어지는 백화점 풍경, 경찰과 신문방송의 모습, 외모지향적인 우리의 세태 등을 종합적으로 짤막짤막하게 보여주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런 짧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세태를 대변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내용 속에 비판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소설의 이야기는 그저 코믹잔혹극으로 TV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허무맹랑한 읽을 꺼리로 봐야 하는 것일까?

     요즘 세태는 외모지상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우리 주변에도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얘기도 있듯이 미인에게 주는 특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성형수술이 유행을 하고, 성형미인이 우리 주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용이 소설 속에서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내용이 지나쳐 멀쩡한 다리를 절단하기를 원하는 모습이 그려지는지도 모르겠다.

     초반부에 나오는 경찰간부의 미숙한 아이의 모습에서도 이런 세태를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다. 잃어 버린 어린 아이를 찾아 생난리(?)를 피우는 경찰들의 모습이나, 그 와중에 백화점의 관계인들의 고초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아이엄마의 모습 또한 과장되게 그려지고 있어 이런 모습이 코미디와 같이 느껴진다. 아이 대신으로 개에게 보이는 애정(?)은 지나치리 만치 과장되게 그려지고 있다. 이런 모습의 이야기는 토막토막 잘라서 본다면 우리 주변에서 보여지는 모습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허무맹랑한 읽은 꺼리라고 하기 보다는 우리의 현재 세태를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고 하겠다. 뭔가 본말이 전도된 우리의 주변들을 코믹잔혹극이라는 섬뜩한 이야기 전개로 그려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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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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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피용(Papillon)」은 나비를 뜻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파피용이라는 개의 이름으로 나온다. 개의 귀가 나비모양을 한데에서 유래한 모양이다. 과거 「빠삐용」이라는 영화도 조회된다. 우리말 발음표기가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의미로 주인공이 몸에 나비 문신을 하고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나비는 애벌레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생태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숫한 꽃들을 찾아 다니면서 바람둥이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화려한 변신의 의미가 더 많아 보인다.

     소설 『파피용』은 허무맹랑한 공상과학소설의 범주에 든다. 어찌 보면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광자에너지를 이용한 우주선 파피용호의 운행이 가능하기에 이 소설의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과연 광자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시기가 곧 도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시점에는 현재의 지구에서도 소설의 내용과 같이 지구와 같은 환경의 다른 우주 행성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물론 지구의 환경오염과 파괴는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변화될 상황이 되겠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파피용호는 상상을 초월한다. 광자에너지를 이용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탑승자의 규모 또한 대단하다. 14만4천명—이 숫자에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2의 제곱도 아니고 비슷한 숫자로 2의 제곱근에 어떤 숫자를 곱한 것은 아닐까—을 탑승할 수 있어야 하고, 1251년을 지낼 수 있는 생태학적인 환경을 구성한다는 자체만을 봐도 우주선에 실어야 할 내용물이 너무도 많을 텐데… 길이가 32킬로미터이고 폭이 500미터의 원통형에 펼쳐지는 날개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거대 우주선을 상상한다는 것이 허무맹랑하다.

     시속 25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생태학적인 모습은 파괴적이다. 지구에서의 모습도 그렇고, 그 지구가 싫어서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나 우주선에서의 생활 모습 또한 동일하다. 또한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여 벌이는 모습도 그에 못지 않게 파괴적이다. 재미있게도 새로운 행성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고 들었던 성서의 내용과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의 생각이 유머러스하게 느껴진다. 이런 내용을 통해 또 다른 상상을 하게 한다. 성서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먼 과거에 다른 행성에서 현재의 지구로 날아와 현재의 생물형태를 만들어 낸 결과일지도 모른 다른 것을.

     나비와 같이 화려한 변신을 해 온 모습과 같이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도 먼 과거에 어느 이름 모를 또 다른 지구—작가가 얘기 했듯이 인간이 살아가는 행성의 일반명사로 지구라고 얘기 하듯이—에서 이주하여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허무맹랑한 상상력의 이야기이지만 전혀 아니다 라고 부정할 수 만은 없는 이야기 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인간들의 행태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이 어느 상황, 어느 장소, 어떤 시간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든다. 인간들의 이런 생태학적인 모습이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주장하는 이야기와 같이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기계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한 결코 변화되지 않는 인간의 생태학적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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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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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있으면 많은 대부분을 이룰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돈은 가히 만능이라고 할 수 있다. 만능의 요술지팡이를 얻기 위해 다들 돈을 모으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해 낸다. 이런 부를 만들어 내는 과정 속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신성시 되던 과거의 인식과는 다르게 하나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의술(醫術)’이라는 이름으로 의사나 병원에 대한 나름의 성역과도 같은 의미를 많이 부여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에도 이런 성역화된 권위는 일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지면서 의사라는 직업 또한 돈벌이 직업 중에 하나라는 인식이 많아진 것도 변화된 세태의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런 인식의 변화의 저변에 질병을 통한 돈벌이 수단으로 바뀌어진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가정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민간 요법 등이 통용되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조금만 몸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을 찾고 의사들의 진찰과 진료를 받는다. 이런 과정 속에 전문화된 의학기술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의사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내용이 제약회사일 것이다. 첨단의 만병통치약을 만들고 못 고치는 병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세분화된 약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약과 의학기술이 결합되어 부를 축적하는 방편으로 변화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책에 실린 고콜레스트롤, 고혈압, 골다공증, 과민성 대장증후군, ….. 이런 질병의 이름들은 최근 들어 많이 들어온 질병이다. 질병 같지 않은 질병으로 우리들 곁에 다가와 있다. 책 내용으로 보면 제약회사가 약을 팔기 위해 의사를 통한 질병의 발명과 그로 인한 판촉 활동의 내용이라고 한다. 책에 실린 10가지 질병들이 대표적인 내용으로 거론된 사항이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질병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내용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산업화되고 고밀도의 도시생활에서 마주하고 있는 질병 아닌 질병과 자연생리 현상이 질병으로 둔갑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책에 실린 내용은 미국의 얘기이다. 미국의 제약산업과 의료산업의 구조가 우리와는 약간 다르지만 최근 들어 의사의 진료와 약제사의 약을 판매하는 방법이 의사와 약사들의 숫한 단체행동을 겪으면서 현재는 의사의 처방전을 가지고 약을 살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 왔다. 이는 일부 미국의 구조를 따르는 변화된 모습이라고 느껴지지만 미국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결국 책에 실린 내용과 같이 제약회사가 의사들에게 베푸는 각종 혜택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그들의 판촉전략에 병에 대한 판단이 연계된다는 내용으로 이해 된다. 이는 한국의 의료산업 또한 이 책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내용으로 이해 된다.

     책의 내용과 같이 각종 논문과 연계되는 보도사실, 일부 비주류로 밀리면서 폭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대 조직의 사회에서 적나라하게 들어나는 기회가 미국이 우리나라 보다 많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음성적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의사들의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본다. 간혹 TV드라마에 비춰지는 의사들의 모습을 통해 산업화되는 부의 축적 수단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 얘기하는 저자의 얘기처럼 자연적인 생리 현상이 질병으로 둔갑하여 오도되는 모습은 막아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나름의 권위를 만들고 그 권위를 휘둘러 병을 만들고, 그 병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방편으로 삼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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