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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이트 카페 3
엔죠지 마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중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책들은 우리의 숙원사업과도 같았던 대학입시와 교양을 쌓기 위한 명목으로, 이름 난 고전문학이나 현대문학들이 대부분이었다. 헌데, 그 ‘권장도서’들은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있는 책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그 때의 나는 만화책을 읽을 때도 좀 더 고상하게 보여지는, 형이상학적인 주제의 읽기 난해한 것들을 골라 읽었었다.
비슷비슷한 생김새의 동글동글한 주인공이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만화는 ‘캔디 캔디’ 이후로는 거의 금기시되었다. 그것은 또한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유리가면’을 읽은 이후에는 ‘캔디 캔디’식의 유치함이 못마땅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내가 소개한 만화책들은 만화책을 싫어하지는 않으나 사서 보는 일은 거의 없는 일반적인 독자들인 절대 다수의 친구들에게 대부분 환영받지 못했고, “네가 소개해준 만화책은 너무 어려워.”라던가 “너무 복잡해. 재미 없어.”라는 친구들의 반응에 나름 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만화라고는 ‘캔디 캔디’ 밖에 모르고, 혹은 그에 즈음해서 대본소 만화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캔디 아류작에 현혹되어 있던 우매한(?) 친구들에게 다양한 만화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하고 싶기도 했다.
헌데 나이가 들수록 만화를 고르는 취향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복잡한 컷의 분할과 함께 그림보다 대사나 지문의 비중이 월등히 많으며, 수많은 복선과 암시가 난무하는, 한 마디로 한 권 읽는데 석 달 열흘이 필요할 정도로 정독이 필요한 작품은 오히려 기피 대상 1호가 된 것이다. 나이란, 물리적인 세월의 흐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많아지는 것이고 그로 인해 내재된 열정이 사그라들거나 변질되는 일은 절대, 절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었건만…….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고 싶어지는^^;;) 세월의 풍파를 느끼며 만화를 보면서까지 고민하고 싶어지지 않아졌다. 어쩐지 인정할수록 씁쓸해져서 안타까움이 들기도 하지만.
엔조지 마키의 신작 ‘미드나이트 카페’는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야하고 적당히 유치하며 마지막에는 절대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한마디로 요즈음 내가 고르는 만화책의 대표 버전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동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작품들을 한 마디로 ‘해피해피 에로에로 만화’라고 한단다^.^ 제목 그대로 저녁 6시가 되면 문을 열어 한 밤중에 영업을 하는 카페. 게다가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흡사 몇 년 전 여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그들처럼 모두 꽃 미모를 가진 미청년들이 있는 가게의 여자 오너라니……. 그야말로 역하렘을 꿈꾸는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 아니던가. 이 작품의 주인공 히나는 바로 그 역 하렘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아버지뻘 되는 자산가와 사랑에 빠져 이른 나이에 결혼했으나 그와의 사별로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된 주인공 히나는 유산으로 카페 하나를 물려받게 되는데, 바로 이 카페를 중심으로 카페에서 일하는 세 명의 미청년들과 남편의 고문변호사인 엘리트남, 그리고 그들과 얽혀가는 히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편이 유산으로 히나에게 카페를 물려준 이유는 다른 가족들과의 유산싸움에 히나를 빠트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으니……. 그 이유란 갖가지 에피소드로 달달하게 버무려진 이 로맨스 만화를 이끌어가는 결정적인 매개체인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고상하고 해석이 까다로워 읽기 힘든 책과의 씨름에 지쳐 남몰래 책장을 뒤적이게 만들었던 할리퀸 로맨스. 과도한 두뇌회전에서 잠시나마 해방시켜 주었던, 그로 인해 미래의 연애에 대한 과대망상증이라는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했던 그런 할리퀸 로맨스의 명맥을 이어가는 엔조지 마키의 ‘미드나이트 카페’에서 잠시 달콤한 과대망상증에 젖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