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중국 정부는 신장에서의 이슬람교 선교를 적극 장려하고 청진사 건립을 도와주었다. 심지어 위구르족 종교 지도자에게 돈을 대주며 메카의 교당에 참배하게 했다. 정부에서는 종교의 성장이 동요의 씨앗을 뿌리 뽑을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1985년에 발생한 일련의 시위와 항의에 중국 정부는 깜짝 놀랐다. 1000여 명이 넘는 위구르족이 한족의 이주에 반대하고 중국이 신장 사막을 핵무기 실험장으로 삼는 것에 반대했다. 폴라트는 그 시위에 참가했다가 처음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시위는 분명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중국 지도자들은 도리어 이슬람교가 주요 원인이라고 믿었다. 1985년 이후 갑자기 정책을 바꿔종교 행동을 탄압하는 것으로 시위에 대응했다. 그럼에도 이슬람교는 계속 성장했다. 많은 사람이 정부의 격려와 탄압이 정확히 같은 효과를 냈다고 믿었다. - P201
1949년 공산당이 집권한 이래 중국의 종교 환경은거대한 변혁을 겪었다. 기본적으로 공산당은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문화대혁명 기간에 의도적으로 이를 파괴했다. 마오주의는 다른 신앙에 일말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1976년에 사망했고, 문화대혁명도 이어서 끝을 맺었다. 2년 뒤 덩샤오핑은 개혁기를 시작했고, 중국은 다시 한번 19세기 이래 이 국가를 괴롭혀온 정신적 공백에 처했다. -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