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마을은 줄곧 변화를 거듭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나태함은 변한 적이 없었다. 부귀와 빈곤이 함께 넘쳐흘러 재앙이 되었으므로 그 안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신중함과 용기가 필요했다. - P190

그는 일찌감치 현실에 의식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감정을 둘 곳이 없었다. 싫은 동료와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야 했고 싫은 친구와 연락을 유지해야 했다. 싫은 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해야 했다. 싫은 삶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어설프게 씌운 올가미 같았다. 어두운 늪에서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기력이 없는 것처럼 그의 상태는 점차 무감각해졌고 삶에 대한 동경이나 자신에 대한 존중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 P191

그는 성인의 삶이란 꼭 모래시계 같다고 생각했다. 한쪽이 다 흘러내면 뒤집어 다시 흘러내리게 하고 그것을 반복한다. 모래시계 안에 갇힌 고운 모래는 한 톨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열정이 있어도 쓸 곳이 없고 꿈이 있어도 시대와 동떨어져 각종 제약을 받는다. - P194

지금 이건 이미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겪고 있는 일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더이상 사랑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서로 잘 적응해서 결국 결혼하면 족한 것일지도.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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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거지로 전락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여유롭고 부귀하던 시절에 허투루 보낸 수많은 시간이 되돌아와 그의 뺨을 호되게 후려갈기는 듯했다. - P107

그렇게 엉거주춤하게 서 있자니 가느다란 실 같은 난감함이 소리 없이 그의 피부와 머리카락, 손가락에서 가닥가닥 뿜어져 나와 신들의 초상과 함께 온 집안을 휘젓는 것 같았다. - P110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그가 아는 모든 장사꾼은 예술을 하찮게 여겼다. 그들은 현실적인 이익이 없는 엉뚱한 상상력을 무시했고 감정과 연관된 것은 전부 경시했다. 늘 독선적으로 삶의 감성을 말살하면서 입만 열면 돈 이야기뿐이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 P127

여성에겐 남성보다 더 강한 부분이 있는데 그건 바로 모성애와 자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여성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더 세심하고 복잡한 것인지도 모른다. - P152

그는 만약 비극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각자의 무너진 폐허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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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상처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한쪽이 칼로 찌르면 다른 한쪽은 피로써 되갚는 법이니까. - P14

이른 새벽의 해가 머리 높이 걸려 있었는데 마치 술병에 너무 오래 담근 청매실처럼 푸르뎅뎅했다. - P70

어찌나 끔찍한 이야기인지! 순간 공기 중에서 뭔가가 부서지면서 중생들 사이에 반짝이던 자비의 빛이 사라지는 듯했다. 이제 남은 거라곤 들어갈 땐 흰색이던 칼이 나올 땐 살육으로 시뻘게진 것뿐이었다. - P77

지금 샤오줘는 사원이 바깥세상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똑같이 화려하고 똑같이 허무하며 똑같이 잔혹했다. - P82

샤오쥐는 청정심의 느낌을 꽤 오래 경험하지 못했다. 경당에서 공부할 때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 공부가 끝나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타인을 구제한다고? 지금 자기 자신조차 구제하지 못하고 있는데? 예전에 배웠던 것도 전부 무용지물 같았다. 이미 혼란에 빠진 샤오줘는 자기 자신조차 설득하지 못했다. - P82

선조들이 말씀하시길 ‘용서하라. 그리하면 자손들의 복이 늘어날 것이다. 양보하라. 그리하면 좁은 길도 쉽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말 한마디를 참으라. 그리하면 분란이 일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의 분노를 가라앉히라. 그리하면 건강한 마음을 기를 수 있다‘고 하였다. - P85

소년의 검은 머리가 얼마 나기도 전에 흰머리로 뒤덮이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축하객이 오자마자 조문객이 뒤따르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이를 생각하면 무상할 따름이다. - P85

사실 그에겐 아무 죄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어 결과만 놓고 얘기하자면 피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 이어지므로 무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97

 얽히고 설킨 인연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면 속세의 인연을 벗어날 수 있다. 마음에 아무 근심이 없으면 어디서든 초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자유와 여유를 얻을 수 있다. 떠돌이 수행자들의 전설도 아마 그렇게 탄생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누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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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 - 5인의 기록으로 재구성한 있는 그대로의 대한제국사
김태웅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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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한국인 관리들이 올바른 통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인 관리들이 올바른 통치를 하리란 징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한국이 가난하고 지독히 성가신 나라라면, 이 세계는 한국을 내버려 두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과 진보는 한국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가 언제까지나 잘못된 정부 밑에서 아무 쓸모없이 방치되는 것을 허용할 리도 허용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의 서민들은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더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의 관리들은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더 혐오하게 됩니다. 일본이 여기서 하려는 일을 이 세계는 승인할 것입니다. 황제는 일본의 요구에 반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황제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 P579

오늘 새벽 1시에서 2시쯤 서명을 통해 조용히 한국의 독립은 포기되었다. 모든 일이 꿈처럼 보인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알 수 없었고 그 일이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결론임을 알았다. - P582

대체로 그 조약은 인준해도 망하고 인준하지 않아도 망할 것입니다. 어차피 망할진대 차라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할지언정 단호하게 딱 잘라 거절하여 우리 역대 임금님께서 폐하께 맡기신 중임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 P589

 이들은 일본이 20만 명의 생명과 수억 엔의 돈을 희생시키면서 획득한 것을 소리만 요란한 몇 장의 상소문으로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붓의 노예로 살아왔기 때문에 붓이 강철과 화약에 맞먹는다고 믿는 것 같다. 욕조와 칼이 일본 문명의 원천이라면, 붓과 한문은 한국의 정신과 희망의 무덤이다. - P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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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 - 5인의 기록으로 재구성한 있는 그대로의 대한제국사
김태웅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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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이라니요! 한국이 어디서 자신의 독립을 얻었습니까? 한국이 독립을 위해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한국이 독립을 위해 지불했습니까? 아닙니다. 일본이 독립을 한국에 주었습니다. 만약 한국의 독립이 일본의 안보와 관계없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할 수 있는 방종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네 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독립할 가치가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네 나라는 단지 독립을 악용했을 뿐입니다.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일본은 한국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할 때 일본이 아무런 발언권도 갖지 못한다면, 일본이 어떻게 한국의 독립을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당신의 황실을 믿을 수 없으며 다시 당신의 황실에 기만당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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