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정말 일본스럽다...ㅎ

전후 일본은 전통적인 국가 간 전쟁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일반적 의미의 ‘전쟁종결론‘을 거의 연구하지 않았다. 아마도 전쟁은 [처음부터]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체는 완전히맞는 말이지만),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수습해 갈지 논의하는 것을 마치 ‘전쟁용인론‘인 것처럼 오해해 [관련 연구를] 기피하게 된 게 아닌가 한다. 미일동맹이 전쟁을 억지하고 있기 때문에 균형이 깨진 뒤의 일까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희망적 사고에 기초해 있다는 의미에서, 이 역시 ‘일본적 시점‘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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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유사사태는 그 이름대로 ‘극동‘이라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개념이다. 이에 견줘, 주변사태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사태의 성질‘에 관계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동[이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태인지보다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태인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따라서 ‘극동‘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한 사태라 해도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면, 자위대가 미군을 후방지원할 수 있다. 즉, 극동유사사태라고 할 때보다 주변사태라고 할 때 일본이 미국에 협력하는 폭이 넓어지게 된다. - P154

‘주변‘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데는 중국에 대한 배려도 있었을 것이다. ‘극동‘이라고 하면 1960년 일본 정부의 통일 견해에 따라 대만이 포함되지만, ‘주변‘이라고 해 두면 이 점이 애매해진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 긴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 P155

덧붙여 이보다 약 40여년 전인[1960년대]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할 때도 외무성 내에서는 미국국(현 북미국)과 조약국(현 국제법국) 사이에 "정치적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후지사키 마사토 조약국 참사관의 증언) 미국국은 "미군이 활동하기 쉽도록" 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조약국은 "(미국) 주둔의 권한을 제약해 (미국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쪽"이었다고 한다.(중략)
이렇게 ‘극동‘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 협력을 지향하는 외무성의 옛 미국국과 ‘극동‘ 개념을 [미일 협력의] 상한선으로 삼으려는 옛 조약국 간의 논쟁이 어떤 의미에선 전후 하나의 패턴처럼 되풀이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 P156

중요영향사태 때 자위대의 활동이 미군 등에 의한 무력행사와 ‘일체화‘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심리의 이면에는, 자위대가 후방지원 활동에만 참여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우리를] 공격대상으로 삼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자적 시점‘에 서서 본다면, 여기서도 앞서 다룬 극동유사사태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됨을 알 수 있다.(중략)
 일본은 자위대가 "현재 전투행위를 행하고 있는 지역이 아닌 장소"에서 미군을 후방지원하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이 활동은 미군의 무력행사와 ‘일체화‘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자위대는 상대방의 공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런 주장은 극동유사사태와 사전협의 사이의 관계처럼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국내법적 논리이자, 자국의 의회·국민을 향해 내놓는 헌법 해석이나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즉, ‘일본적 시점‘에 서서 우리 나라는 "말려들지 않는다"는 논리를 아무리 예리하게 만든다고 해도, ‘제3자적 시점‘에 서서 보면 애초에 상대가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 P160

 유엔 헌장 제51조에 명기돼 있는 것처럼 국제법상 자위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국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 대한 자위권을 이르는 개별적 자위권, 다른하나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 대한 자위권, 즉 집단적 자위권이다. - P163

이 무렵 정부는 새롭게 탄생하게 된 자위대의 합헌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를 위해선 합헌성의근거가 되는 ‘필요최소한‘이라는 개념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필요최소한이라는 개념이 국제법상 자위권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과 연결되게 된다.
즉, [일본 정부는] 개별적 자위권만을 행사하는 자위대는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의 실력 조직이기 때문에 합헌이라고 결론 내고 싶었던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이를 위해 ‘버려진 돌 [버려진 카드]‘이 되고 말았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위헌론이란 것은 이런 논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이른바 ‘속임수‘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않았는데도" "않았음에도"와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표현을, 일본이 독자적으로 만든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정의 안에 몰래 숨겨 두었다. 이것이 ‘속임수‘의 비결이었다. - P166

이런 주장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 위반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되기 앞서 주권국가에게 집단적 자위권을 자위권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국제법‘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잘못이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논의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필요최소한론을 받아들이면서 이에 근거해 자위대의 합헌성을 확보해 온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선 헌법 논쟁 이전에 자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공격받을 때에도 자위권을 행사할 수있다는 사실 자체를 납득할 수 없다는 ‘일본적 시점‘에 기반한 감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제3자적 시점‘, 즉 일본에 적대적인 상대국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약점이라 할 수 있다. - P169

[상황이 완화됐다고 이렇게 대응 수준을 낮추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국내법의 논리에 기초한 ‘일본적 시점‘에 따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변한 게 사실이지만 유사사태 그 자체는 계속되고 있는데도 자위대가 방위 출동을 중지하고 후방지원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3자적 시점‘
에서 본다면, 안보 전문가 니시하라 마사시가 지적하듯 [관계국들은]일본이 ‘전선에서 이탈했다‘고 받아들이진 않을까?(중략)
이처럼 ‘일본적 시점‘에 따른 절차에 따라 사태의 추이에 맞춰 세세하게 대응 방식을 바꾸게 되면, 상황에 따라 상대의 기를 살려 줄 뿐 아니라 동맹국의 불신을 사게 될 수 있다. 또 상대가 ‘인지전‘의 일환으로 이런 사실을 미일동맹에 불리한 모양새로 과장하며 선전할 수도 있다. - P171

미일안전보장조약 제5조 사태에 해당하는 무력공격사태 때도 미국이 자동 참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조약 제5조는 미일 양국이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는 행동을 취할 경우 "자국의 헌법상 규정 및 절차"에 따른다고 하고 있다. 즉, 자동 참전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진 않는 것이다. - P172

일본이 ‘일본적 시점‘에 서서, 때로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때로는 필요최소한이란 기준을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 것 같은 여러 대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일본의 행동을 의도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애초부터 고려 대상에 넣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이를 일본의 약점이라고 인식 [해 적극 활용]하거나 [적대국뿐 아니라] 동맹국까지 포함하는 국제사회가 일본의 의사를 오해하는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유사사태가 발생한다고 해서 미국이 자동 참전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일본적 시점‘에 선다면 사전협의제도를 잘 활용해 극동유사사태에 대응하려는 미국의 군사행동과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자적 시점‘에서 보면 미국의 군사행동과 그에 대한 일본의 편의 제공은 애초부터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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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이 동맹의 틀에서 유사사태에 대응할 때 일본은 동맹국에게 편의를 제공하거나 자위대가 무력행사를 포함하는 행동에 나서는 등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활동은 조약과 법률에 근거해 이뤄진다.
일본이 지금까지 갖춰 온 동맹 조약을 포함하는 안전보장체제에선 유사사태를 각각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사태‘로 구분해법적인 개념화를 하고, 각각의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세밀히 나눠 구분하고 있다. 일본의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순서에 따라 열거해 보면 ‘국제평화공동대처사태‘ ‘극동유사사태(6조 사태)‘
‘중요영향사태‘ ‘존립위기사태‘ ‘무력공격사태(5조 사태)‘ 등의 순서가 된다. - P139

분명 일본과 일본 밖 사이에 선을 긋고, 일본 밖의 분쟁에 말려들지 않게 하는 것을 중시하는 일국평화주의 관점에 서면, 극동유사사태 때 주일미군의 직접전투작전행동에 제약을 가하려는 절차를 만드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또 사전협의 결과 주일미군이 어떤 특정한 극동유사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직접전투작전행동에 나서는 것을 허락한다 해도 일본은 미국의 행동을 묵인한 것일 뿐 자기가 직접 참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 덕에 일본은 이 분쟁에 말려들지 않고 사태를 피할 수 있다. 이것으로 일단 안심할 수 있다. ‘[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P145

일본 정부는 헌법과 자위대의 관계에 대해 이런 사고방식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자위대는 ‘전력‘이 아닌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실력‘이기 때문에 합헌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이 성립하려면 "이보다 안쪽은 필요최소한"이라고 할 수 있는선을 늘 긋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위대와 헌법 9조가 보유를 금지하는 ‘전력‘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무력행사와 일체화론‘도 이 필요최소한론에 근거해 설명할 수있다. 국제평화 협력 등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을 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위대의 활동을 정당화하려면] 무력을 행사하고 있는 외국군의 활동과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이다. - P148

일본이 미국의 기지 사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무력행사에 동참한 게 아니라] 이를 묵인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자기 편의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일본은 현재 벌어진 극동유사사태와 관련해 실제로는 미군이 직접전투작전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편의 제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무슨 변명을 하더라도 미군의 공격을 받는 상대, 앞선 예에서 보자면 북한은 이 유사사태와 관련해 일본을 미국 쪽에 가담한 어엿한 참전국이라고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 P149

미국과 적대하는 국가는 극동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일이 사전협의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든, 즉일본이 ‘사용 불허‘를 결정한다 해도 주일미군이 [일본 내 기지를 활용한] 직접전투작전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수십년 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기시 총리에게 말한 "일본의 의사에 반해 행동할 의도가 없다"는 약속은 당연히 미국의 적대국의 인식을 바꿀 만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 - P150

극동유사사태 때 이뤄지는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해 일본이 사전협의제도를 통해 선을 긋는 게 가능하다는 ‘일본적 시점‘과, 미국의 군사행동과 그에 대한 일본의 편의 제공은 일체화되는 것이라고 보는 ‘제3자적 시점‘. 이 사이에 극동유사사태에 대한 대처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간격이 존재한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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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군은 효율성을 중시한다는 차원에서 동맹국과 지휘권 병립형 체제를 취하는 것을 꺼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미일동맹이 지휘권 병립형 체제를 취하게 된 것은 [통합형에 대한] 일본의 거부반응이 강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자위대가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미국의 전쟁에 말려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일국평화주의적인 안전보장관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 P112

이는 동일한 미국인 사령관이 어떤 때는 극동군 사령관의 모자를 쓰고 지휘권 밀약에 기초해 자위대와 주일미군으로 구성되는 극동군을 지휘하고, 어떤 때엔 유엔군 사령관의 모자를 쓰고 유엔군과 한국군을 지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위대, 극동군, 유엔군, 나아가 한국군이 이 미국인 사령관의 일원적 지휘 아래 사실상 한 몸으로 뭉치게 된다. - P119

미일동맹은 단순한 미일 간의 ‘양자‘ 동맹이 아니라 ‘극동1905년 체제‘라는 근대 이래 지역 질서를 지탱해 온 ‘한미 · 미일 양 동맹‘ 내 하나의 기능이었다. 이는 기지 사용 분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결론이었지만, 실은 부대 운용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정식으로는 1953년 10월 결성)은 사실상 ‘한미 · 미일 양 연합사령관‘의 지휘권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관계였다. - P119

197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미일동맹의 지휘권 조정은 한미동맹과 따로 떨어져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한국군의 전시 작전권 반환 문제는 일본에도 영향을 끼치게 될 수밖에 없다. - P129

 ‘제3자적 시점‘을 통해 보면, 미일동맹의 지휘권 조정 방식을 어떻게 정할지는 극동지역 전체에서 미군의 지휘체계, 특히 한미동맹의 작전권이나 사령부 지휘 방식이 어떻게 되는지와 밀접히 관련돼 있음을 알 수있다. 일본·미국·한국의 지휘권을 ‘극동군사령부‘처럼 무리하게 한데 묶는 것을 극단적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완전히 따로따로 놀아도 된다는 것 역시 극단적 얘기일 것이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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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이전에도 유사사태가 발생할 때 어떻게 할지를 정한 미일공동계획은 있었다. 다만, 이 계획은 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두 나라 군 당국(자위대원과 미군) 차원의 협의를 거쳐 만들어진 것에 불과했다. 내용을 봐도 자위대와 미군의 역할 분담이 불명확하게 정해지는 등 애매한 점이 있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일본 내부에서 유사사태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5년에 큰 소동으로 발전했던 ‘미쓰야 연구‘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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