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 매체는 쥐 죽은 듯 조용할 뿐이다.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후속 보도를 하는 곳이 없고, 대중이 질문하는 문제에도 답을 주지 않는다. 정부 기관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어서 탐사 기자는 거의 사라졌고, 수많은 언론 종사자는 어쩔수 없이 직업을 바꾸고 있다. 비슷한 상황이 변호사, NGO 단체, 기업가 들에게도 벌어지고 있다. 힘들게 싹틔운 중국의 시민사회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 P130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어떤 이야기도 막힘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원자바오 총리가 기자간담회에서 문화대혁명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를 반성하고, 문화대혁명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우리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개혁개방을 계속해서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논설을 기획했죠. 다만 수위가 좀 높았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시의 그 분위기는사실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같아요. 할 수 있는 말을 다 해보자는 식의 몸부림이요. - P132
우리가 알던 수많은 유명 시장 지향적 매체는 모두 1996년 전후로 출현했습니다. 『남방도시보』는 1995년에 시범간행을 했고, 제가 있었던 서북 지역 최대 신문사였던 『화상보도1997년 7월 1일에 개편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당보와는 구별되는 시장 지향적 매체가 출현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당보나 당보 조직에서 떨어져나온 것들이었지만, 점차 당보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시장에 들어와서 자립해나갔어요. 한창 번성할 때는 거의 모든 성마다 하나쯤 주도적인 시장 지향적 매체가 있었고요. (중략) 시장 지향적 매체가 생겨난 이후, 기존의 당보 조직은 스스로 자립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정부 측 지원금에만 의존한다면 자립할 방법은 없다고 봐야죠. 그래서 각 지역의 당보는 자신들 밑에 ‘자보‘(부속 신문)를 두었습니다. - P135
제가 1998년에 이 일을 시작하며 몸담았던 시장 지향적 매체에는 사전 검열이 없었고, 다만 노란 선이나 빨간 선을 넘으면 엄청한 후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매체 스스로가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남방주말>의 신년 헌사 사건이 모두에게 저항해야 할 필요성을 상기시켰습니다. 정부가 규칙을 위배한 거예요. 정부는 줄곧 사후 검열을 유지해왔는데, 이때는 신년 헌사를 발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검열과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정부가 자신의 검열 규칙을 위반한 것입니다. - P137
오늘 우리가 ‘황금기‘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황금기‘가 있었나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가 상대적으로 조금 나았을 뿐입니다. 당시에도 날마다 고통스러웠어요. 허구한 날 보도 지침이 내려와서 이것도 못 하게 했고, 저것도 못 하게 했으니까요. 제 생각에 소위 ‘황금기‘의 중요한 지표는 비록 보도 지침이 내려왔더라도 모든 기자가 직업 공동체 의식과 언론 기자로서 책임감을 가졌는지입니다. 자신이 선전가가 아니라 탐사 보도와 사회 사건 보도를 하는 기자라는 걸 인식하는 거죠. - P138
맞아요. 보도 지침이 내려졌지만 언론인들에게는 지침을 어길 수 있는 여지와 용기가 있었죠. 물론 이건 징벌이 매체와 기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요. - P138
제 본업은 홍콩 매체 기자였고요. 당시 언론 종사자들이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할 때, 홍콩 매체들은 종종 ‘타산지석‘의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본토의 매체들이 홍콩을 대하는 태도는 2016년을 전후로 해서 뚜렷하게 달라집니다. 당시 법치, 민주, 지역 사회 보육, 청렴과 부패 등의 주제는 본토에서 보도될 때마다 제재받았고, 그럴 때면 홍콩에서 보도된 사례를 찾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와 관련해서 원고 청탁을 여러 번 받았고요. - P139
홍콩은 본토에서 ‘우리가 더 좋아지려면‘ 혹은 ‘더욱 홍콩을 닮으려면‘과 같은 말들로 거론되던 참고 대상이었습니다.(중략) 이런 경험도 2017년 홍콩 주권 이양 20주년이 되었을 때 끝났습니다. 홍콩에 대한 선해가 절정에 달했던 건 2007년이고요. 그때만 해도 『남방도시보」나 「남방주말』 같은 매체들이 홍콩에 와서 ‘구석구석 홍콩을 배우자‘라며 초대형 특집 기사를 썼으니까요.(중략) 물론 저 역시 사회운동에 대한 글은 쓸 수 없었어요. 하지만 사회운동 같은 소재를 제외하면 쓸 수 있는 내용의 수위가 꽤 높았습니다. - P140
저는 그 당시 중국 본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남방주말』의 투쟁이 갖는 의의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해외에 있는 사람들 눈에 중국의 언론 매체는 죄다 공산당 관리하에 있으니 다를 게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완전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니, 어떠한 언론의 자유도 없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래서 해외에 있는 중화권 사람들이나 영어권 사람들은 언론인들이 속박된 상황에서 어떻게 한계를 극복하는지, ‘무릎 꿇고 반란을 일으키다‘와 ‘서서 저항하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 P142
사실 2008년, 특히 원자바오 총리가 정치 개혁을 처음 언급한 뒤로부터 중국의 자유 진영은 이미 온건파와 급진파로 분열되어 있던 거죠. 저는 2013년이 됐을 때 중국 언론의 황금기가 끝났을 뿐 아니라, 저항 세력도 급진파밖에 남지 않았고 그 세력 역시 미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온건파의 목소리는2013년에서 2015년 사이에 철저하게 소멸했습니다. 온건파의 지식인이든 언론인이든, 저는 ‘남방주말 사건‘이 이 세력의 소멸을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 P143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2015년 양쯔강 여객선 침몰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 체제 안에서는 언론 매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에는 치욕을 참고 견디면 어떻게든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깟 치욕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뭐 이런 거였죠. 정부가 정한 한계만 받아들이면, 저는 국민의 삶을 기사화할 수 있었고, 기자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에는 정말 안 되겠더라고요. 계속했다가는 제 인생을 낭비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 P144
점차 이 일은 일종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중대한 공공 사건에 대해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설령 갔대도 취재할 수 없었습니다. 간신히 취재해도 기사로 낼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벌어진 항공사고와 같은 재난 사건들도 모두 당사자들을 통제했는데, 당사자가 몇 명이든, 몇백, 몇천 명이든 인원수에 상관없이 모조리 다 통제했습니다.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결국 국내외 매체 할 것 없이 중국 본토에서 취재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연락한 내용은 쉽게 추적됐고, 당사자 역시 사후에 크게 처벌받았으니까요. 정말이지 엄청난 전환이었습니다. - P145
선전부는 재빨리 강력한 선전 시스템을 가동해서 재난을 선전의 기회로 삼고, 비극을 경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2020년 2월 4일에 『신문연보』에서 보도하길, 중앙선전부에서 300여 명의 기자를 소집해 우한과 후베이 지역을 취재 보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시진핑이 펜데믹을 다루는 선전 교육과 여론 선도 작업을 제대로 진행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죠. - P149
지방정부의 방해는 있었습니대 그들에게는 기자들의 정보를 모은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서, 기자가 지역에 가려고 표라도 사면 바로 지방정부에서 이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기자가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감시를 시작하죠. - P151
즉 기자들이 겪는 곤경은 이런 겁니다.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지침이 내려오죠. ‘기자랑 말하지 마. 사건이 보도되면 외세에 칼자루를 넘겨주는 꼴이 되는 거야.‘ 우리 외신 매체는 특히 나쁘게 낙인찍혀서, 당사자가 외신과 이야기 나누는 건 그야말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죠. 중국을 취재하고 보도하기란 갈수록 그 내막이 요원해지고, 도대체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알아내기도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 P151
지금은 기자 개인에 대한, 특히 외신 기자 개인을 향한 신상 털기와 표적화가 엄청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CNN이나 『뉴욕타임스』를 적대시하면서, 그들이 중국을 모독한다고 여겼죠. 하지만 지금은 표적이 구체적인 한 명의 개인으로 바뀌었어요. 누가 기사가 나올 수 있게 외신을 도왔는지, 중국인 누가 보도했는지 찾아내서 그들을 표적화하는 겁니다. 저는 이 일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와 중국의 상호 이해를 엄청나게 해쳐 놓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전 세계와 이어진 메신저를 공격의 타깃으로 삼는 것과 똑같은 짓입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마지막 다리까지 끊어질 수 있어요. - P153
취자린은 2016년에 홍콩중문대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면서 논문을 하나 썼고, 나중에 『20개 그림자 아래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데, 홍콩의 언론 검열을 다룬 책이었습니다. 어젯밤에 제가 취자린에게 이 책이출간되던 2017년과 지금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개정판을 낸다면 어떻게 바꾸겠냐고 물어봤어요. 그가 말하길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이 책에서 묘사한 홍콩 언론의 검열 상황이 이제 완전히 구식이 되어버렸으니 다 다시 써야 한다더라고요. 하물며 제목도 바꿔야 한대요. ‘20개 그림자‘가 아니라 ‘20개 칼날‘로요. 이제 자유는 사라졌으니, 그림자가 한칼에 베어버리는 칼날이 되었다고요. 저는 이 묘사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202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워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자가 2020년 이후 칼날로 변했죠. - P154
홍콩의 변화는 너무나 빨랐습니다. 보통,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고 온도를 점점 높이며 삶아버린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홍콩은 펄펄 끓는 물에 바로 개구리를 던져버린 거죠. - P155
독립된 목소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분명한 신호입니다. 민간에서건 정부 내부에서건 비평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다가 결국에 완전히 사라진다는 신호예요. 단지 민간에서뿐만 아니라 정부 내부에서도 분명히 그럴 거예요. 정책을 내놓으려면 단계별 토론을 거치고 마지막에 선별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부와 복종만 남은 곳에서 수준 높은 정책 결정을 할 리 만무하고 점점 더 질이 형편없어질 겁니다. 저는 홍콩과 본토 모두에서 이러한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 P156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던 기자들이 다시 모였던 것도 기억할 거예요.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홍콩 사람들이 ‘모기 매체‘라고 부르는 모기처럼 아주 작은 매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매체의 출현은 홍콩이 콘텐츠 생산자에게 고도의 통제를 가하는 와중에도 전체 콘텐츠 환경이 중국만큼 철저하게 파괴되지는 않은 덕분이었습니다. 방화벽도 철저하지 못해서, 얼마든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 수 있었고요.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이 새롭게 모일 기회를 얻었고 작은 목소리로도 최소한 자기 주변의 커뮤니티를 결속시키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 P157
저는 세대별로 그들만의 반항하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항이라는 단어가 짐짓 너무 격렬하게 들린다면 자신만의 ‘대응‘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매체‘를 예로 들면, 우리 세대에 익숙한 ‘매체‘ 개념으로는 중국에서 ‘매체‘란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그들만의 언어와 전파 방식을 가지고 있고 우리와는 다르죠.(중략)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 있겠네요. 저는 구조적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대응 방식이 매우 흥미롭고 그들이 우리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P158
건강하고 민주적이며 자유로운 사회가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참여의식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곳을 바꿀 힘이 있으며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곳이 작은 커뮤니티이든 거대한 사건이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참여해야 하고, 상황을 바꿀 능력도 있습니다. 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당신은 힘을 보탤 수 있어요. 저는 우리 중국인들이 이제까지 이러한 가치를 습득할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매우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것이 세계 각지로 이민 간 중국인들이 그 사회에서 미움받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인들은 참여하도록 열려 있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도 어떻게 참여해서 자기 주변을 바꿔야 하는지 전혀 모르니까요. - P161
우리는 어디에 있든 변화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만일 현실세계가 우리를 버렸대도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작은 세계를 창조하면 돼요. 그로써 우리 스스로 그 세계에 투신하고, 세계를 바꾸며 새롭게 형성해내면 됩니다. 저는 이게 아주 근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하며 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무력감을 느끼고, 그러면 끝장입니다. 살아갈 원동력이 없는데 왜 살아야겠어요? 저는 이것이 홍콩이 제게 가르쳐준 가치이고, 이것에 기대어 저널리즘에 대한 이상을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 P161
저널리즘의 이상에 대해 물어보셨죠? 저는 여전히 의의는 있다고 생각해요. 의의가 없는 삶에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내가 하는 일에 의의가 없다면, 하루하루 먹고 싸는 것뿐이겠죠. 우리가 처음 품었던 이상은 다들 똑같을 겁니다. 빙점』의 편집장이었던 리다퉁의 책 <뉴스로 오늘을 바꾸자>처럼 말이죠. 우리는이 일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꾸길 희망하잖아요. - P163
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자기가 한 일의 대가를 따졌을 때, 감옥에 가거나 죽임당하는 것까지 감당하지는 못하더라도, 돈을 좀 적게 벌게 된다든지, 화려한 삶을 살 수 없다든지, 그런 대가는 얼마든 감당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 P164
저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종종 매우 연약한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나무도 아주 작은 새싹에서 시작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 일도 의의가 있다고 믿어요. - P165
제가 설립한 창작과 토론 플랫폼 ‘매터스‘에 "글쓰기는 가장 작은 단위의 자유다"라는 슬로건이걸려 있어요. 글쓰기는 단연코 제게 가장 중요한 최후의 보루가 될 겁니다. 제가 쓸 글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자기 역량의 확립은 매우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이죠. - P165
저는 반드시 우리가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변혁의 시대도 중요하지만, 대변혁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삶에 갖는 감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뭘 하든 간에 본인 스스로 자기 삶이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독립된 개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 살더라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요. - P166
우리의 저널리즘의 이상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바람을 넣어선 안 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마주하게끔 해줘야 해요.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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