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지나친 애국주의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자기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우선시하다가 다른 나라나 타 문화에 대한 혐오나 공격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탈바꿈하는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중략)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사회도 애국주의의 부작용을 단단히 경험했다. "전쟁에 협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심"이라는 프로파간다가 대대적으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은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라는 비난을 견뎌야 했다. - P23
정치적 우경화는 아니지만, 사회적·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인 권위와 질서를 중시하는 이런 상황을 ‘이데올로기 없는보수화‘라고도 한다. - P26
‘이데올로기 없는 보수화‘는 젊은 세대가 우경화하는 징조라기보다는,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성세대의 정치적 감각이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한일을 막론하고 기성세대들이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 P27
패전 이후 줄곧, 일본 사회는 ‘어떻게 다시 국제 무대에 자리매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주요 어젠다로 삼아 왔다. 정부의 정책과제도, 시민사회의 비판 의식도 외교나 국제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중략) 그 결과, 일본 사회 내부의 모순과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방치되어 왔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순한 경제적 과제로 치환하거나 외교적 문제인 양 해결하려는 사고방식도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자는 식의 무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관심이 들끓는 ‘미투 운동‘이나 디지털 정부 등의 움직임에 대해 일본 시민사회의 대응이 둔감하고, 심지어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일본 고유의 문화‘라고 옹호하는 의아한 태도도 이런 경위와 관련이 있을것이다. - P34
무엇보다 가업을 계승하듯이 정치권력을 세습하는 것은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의 본분과는 거리가 멀다. 국회의원의 세습 관행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이 관행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현역 국회의원 중 무려 3분의 1이 부모를 잘 ‘뽑은‘ 덕에 비교적 수월하게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세습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 P38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일단 사회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는데, 일본의 기성세대는 사회적 모순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이 입시나 취업 등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고 하면, 이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 사안으로 보기보다는, 젊은이들이 노력해서 극복해야 하는 개인적 고민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 P40
벡은 말한다.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시대에는 ‘불안‘이야말로 사람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는 힘이라고.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후쿠시마의 교훈은 결코 작지 않다. - P48
일본에서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성역할을 남녀 간 신체적,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경력단절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한국에서는 성차별적이라고 성토할 만한 상황이지만 일본에서는 당사자조차도 어쩔 수 없는 남녀의 차이라고 온건하게 정당화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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