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수확량을 달성하려는 광풍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지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피해에 관한 증거들이 쌓이자 마오쩌둥은 태도를 바꿔 자신의 운동이 야기한 혼란상에 관해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탓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의 정치적 숙청으로 갈고 닦은 자기 보존에관한 본능적 감각을 타고난 교활한 정치가로서 그는 혼란의 책임을 현지당 관리와 동료들에게 떠넘겼을 뿐 아니라 자신을 국민들의 복지에 관해 걱정하는 인자한 지도자로 그리는 데 성공했다. - P141

다른 누군가에는 죽음을 의미했을 <우파>라는 꼬리표는, 마오쩌둥만이 권력에 맞서 분연히 진실을 말하는 외로운 영웅 행세를 할 때 그렇게 가볍게 언급될 수 있었을 것이다. - P144

마오쩌둥은 현지 시장에 주어진 우선권도 뒤집었다. 수출이 현지의 필요를 제치고 반드시 보장되어야 했다. <우리는 덜 먹어야 한다.> 실질적 문제에 직면한 전시에는 단호하고 가차없는 접근이 정당화되었다. <먹을 게 충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굶어 죽는다. 인민 절반이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나머지 절반은 굶어 죽게 둬야 한다.> - P147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지휘를 여러 차례 비난하며 허심탄회하게 발언했다. <마오쩌둥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 저마다 책임이 있다. 철강 목표량 1070만 톤은 마오 주석이 세운 것이니 그가 어찌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주석의 침묵이 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한, 토론이 허용되는 한계가 무시되고, 일부 지도자들이 집산화의 실패들뿐 아니라 거기에서 자신의 개인적 역할에 관해서까지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자 마오쩌둥은 점점 심기가 나빠졌다. - P151

펑더화이는 어느 지도자도 솔직하게 의견을 말할 용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류사오치는 막 국무원장이 되었고 저우언라이와 천원은 1년 전에 끽소리도 못하게 되었으며 주더는 비판적 생각이 거의 없고 린뱌오 원수는 건강이 나쁘고 작금의 문제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한편 덩샤오핑은 어떠한 비판적 의견도 표명하길 꺼렸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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