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챗 단체 대화방이 생긴 뒤로 미화원들은 실시간으로 지시를 받았고, 더 빠르게 대응할 것을 요구받았다. 엄마 휴대전화의 메시지 알림이 쉬지 않고 울려댔고, 그럴수록 엄마의 노동은 더욱 소외되고 도구화되었다. - P241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되고 업무가 세분화된 오늘날, 우리는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 뒤에 숨겨진, 평범한 청소 노동자들의 작업 현장을 실제로 보기 어렵다. 그저 마흔아홉 살의 한 아주머니가 이틀 동안 수만 개의 크리스털 구슬을 닦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해야 한다는 요구는 결국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다른 여러 직종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중략)
엄마가 오피스 빌딩에서 일한 1년 동안, 입사 후 단 하루도 쉬지 못한 미화원이 많았다. 언제나 깨끗하게 유지되는 초대형 도시의 이면에는 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 P271

작업장에 가보겠느냐는 엄마의 말을 거절한 것은 어쩌면 엄마의 ‘고통‘을 내 눈으로 보기가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내 대학 학비는 엄마가 ‘공을 굴려‘ 번 돈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내세울 만한 성적을 거두지도 못하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눈앞의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기대 어린 시선 앞에서 나는 침묵했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지금의 나는 엄마의 청소 일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미화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그럴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고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동안 그들과 내가 결국 같은 곳에서 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무직 노동자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계층에 속해 있다. - P275

그들은 모두 비슷한 마음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 아들이 장가가고 딸이 시집가서, 그들이 세속적인 의미의 ‘행복‘을 얻었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부모로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 P285

엄마 세대 농촌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이러했다. 고된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어 자식을 키웠지만, 자식들은 부모의 기대처럼더 나은 삶을 개척할 힘을 얻지 못했으며, 부모들은 늙어서도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계속 땀 흘려 일해야만 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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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할 방법이 얼마든지 많은데도, 두 사람은 굳이 상대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후벼 파고 화를 돋우는 말을 골라 던졌다. 중오와 적대감으로 굳어진 오랜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 P172

내 기억 속 엄마는 처음부터 내 엄마였다. 엄마는 늘 말하곤 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여자아이‘였던 시절이라고. 그때는 걱정도 눈물도 없었다고 했다. - P174

내가 엄마의 ‘셈‘에서 벗어나버린 것도, 내가 선택한 배우자를 엄마가 그토록 심하게 반대한 것도 나 역시 엄마처럼 평생 ‘먹고살려고 아등바등하는 삶‘을 살게 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엄마에게도 그 고된 운명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외진 시골에는 시대의 격랑이 남긴 파문이 채 가시지 않았다. - P181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엄마의 뜻과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일 때, 엄마는 가장 크게 화를 냈다. - P185

나는 ‘나쁜‘ 딸이다. 진실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아낌없이 뜨겁게 끓어넘치는 사랑이 엄마의 약점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 P188

사투리는 보잘것없는 출신 배경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게도 한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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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쉴 수 있는 일자리는 평생 처음이었다. 집에 편히 앉아 있어도 일할 때와 똑같이 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엄마가 살아온 평생에 돈이란 하루를 일해야 비로소 하루치가 생기는 것이었으므로. - P93

엄마는 애타는 마음을 "속이 타서 뚝 분질러질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엄마가 말한 ‘분질러진다‘는 말은 산시성 남부 사투리로, 장작을 무릎에 대고 양손으로 눌러 부러뜨리는 동작을 가리킨다. 그 한 동작에는 버팀과 아픔, 부러지기 직전의 발버둥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현이 무수한 힘을 견디다 마침내 툭 끊어지는 순간과도 닮았다. - P109

엄마는 마치 내 삶의 기록 보관소 같았다. 나와 엄마가 함께 겪은 일들을 엄마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 P119

어떤 말로 고모의 일생을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직관적으로 말한다면, 돈에 묶인 일생이자 평생 고생을 견디며 삶의 시련을 버텨온 인생이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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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성장 과정과, 엄마가 오래전 경험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는 엄마의 삶이 시대의 흐름 속에 있으면서도 시대와 같은 박자로 흘러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의 기억 속 세상은 스물한 살, 외할머니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그 순간부터 무너져 내렸고, 엄마 자신이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폐허 위에 다시 세워졌다. 엄마의 삶 속 크고 작은 일들은 ‘집‘이라는 한 글자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때로 엄마는 식구들이 다 잊은 해묵은 일들을 생생히 기억해내 모두를 놀라게 하곤 했다. - P11

어쩌면 엄마가 본능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정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종종 엄마가 나보다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며, 진실하게 살아간다고 느낀다. - P22

 엄마의 유전자에는 부지런함이 새겨져 있었고, 가난을 두려워하는 마음 역시 깊이 박혀 있었다. - P28

미화원들이 어떤 물건을 쓰레기로 분류할지 판단하는 기준은 ‘더러운가 안 더러운가‘가 아니라, ‘돈이 되는가 안 되는가‘다. 내 엄마 같은 미화원들은 선전 쓰레기 시장의 시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폐지 상자, 고철, 유리, 플라스틱의 시세 변동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한다. - P44

미화원은 쇼핑몰의 투명 인간이자 변두리 사람이다. 쇼핑몰이 비현실적이리만치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화원 개개인의 시간을 무자비하게 빼앗은 결과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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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곡은 연구계에서는 보통 <해서파관>이라고 원제로 표기한다. 중국 인명의 표기 규칙은 1911년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 이전 인물은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그 이후 이름은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아무래도 원서가 중국어가 아니라서 역자도 중국 관련 연구자가 아니다 보니 이런 자잘한 오류가 있는 듯. 2부에서도 명나라인가 여튼 고대 관리 이름을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1959년 여름에 펑더화이가 숙청된 뒤로 정치적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루산 회의에서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장군이 하이루이인 것처럼 보였다. 「하이루이의 파면」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우한의 희곡이 매우 다른 관점에서 읽힐 수 있게 된 것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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