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당시 중국의 지도자층에서는 정치 개혁을 하려는 성의, 최소한 정치개혁을 주관하는 자오쯔양의 성의만큼은 확실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이 조금도 추진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후로 정치 개혁 방면에서 그때의 조치들이 역공당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저는 그때부터 중국공산당 정치 개혁에 어떤 환상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 P83

위안: 어떤 사람들은 현재 중국이 시진핑의 치세하에서 갈수록 전체주의 국가와 비슷해지고 있고, 최소한 전체주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관점이셨나요?
우: 중국은 전체주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많은 부분에서 역사상 그래본 적 없는 지경까지 전체주의에 도달해 있습니다. - P85

그러나 시진핑이 정권을 잡은 이후, 그는 이데올로기 체계를 세우고자 힘썼습니다. 수많은 당 간부학교, 연구기관,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및 중국 특색사회주의 수업을 하던 일반 대학 들이 지금은 적나라한 시진핑 사상 연구센터가 되었습니다. 이곳들은 정부를 대변하는 데 힘쓰고 있고, 당원과 체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진핑의 사상을 신봉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P86

이건 가십이지만, 시진핑이 마오쩌둥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전체주의로 돌아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 P87

마오쩌둥은 최소한 그의 동지 중에서, 고위급 지도자들을 포함한 중국공산당의 당원 중에서 이른바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일반 민중에게도 다년간의 선전을 통해 그는 카리스마적인 사람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에서 시진핑에게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다섯 명이나 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공산당 간부 중에서는 시진핑에게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제 생각에 아마도 아주 소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령 여론조사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지는 않을 테니 우리가 알 방법은 없을 테지만요. - P88

제가 10년 동안 관찰한 결과, 시진핑은 의심이 매우 많은 정치인입니다. 설령 자신이 발탁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시진핑은 그를 전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 P90

권력이 집중되는 체계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로 하의상달의 정보 경로 문제입니다. 윗선의 권력이 강력한 상황에서 아랫사람은 윗선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정보나 실정을 함부로 보고하지 못합니다. 이는 고위층의 정책 결정력 저하를 초래합니다.(중략)
둘째는 바로 상명하달된 정책의 관철입니다. 윗선에서 압박해야만 아랫사람이 겨우 움직인다면 이는 아랫사람이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능동적으로 움직였다가 실수라도 하면 벌을받을 게 뻔하겠죠. 정책 결정력도 저하되고 정책의 관철 능력도 형편없으면, 권력이 아무리 큰들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못하죠. 그리고 중국에는 두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하나는 관료들의 복지부동이고, 다른 하나는 윗선에 잘 보이려고 실제보다 목표를 높게 잡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다수의 정책 결정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 P91

이제 조금 전에 말했던 전체주의로 돌아가보죠. 전체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군대와 무기를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2018년 제가 왜 이미 전체주의로 돌아왔다고 느꼈을까요? 그건 당시 식칼을 사는 것조차도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마오쩌둥 시대에도 없던 일입니다. 식칼조차도 무기라고 여기는 무기에 대한 통제가 가정 주방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물론 이는 당국에서 민중의 엄청난 불만을 눈치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당국은 다양한 방식의 통제를 강화해서 혁명의 싹을 초장에 자르려고 했던 겁니다. - P95

그러니까 저는 시진핑의 사고방식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오쩌둥 시대‘가 너희를 수천만 명씩 굶겨 죽였지만, 아무도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고, 공산당은 끄떡없었고, 너희는 오히려 마오쩌둥을 부모님보다 더 사랑했지. 그런데 지금은 너희한테 집도 주고 차도 주고 끼니 걱정도 안 하게 해줬으니 내가 너희를 10년 더 괴롭혀도, 20년을 괴롭혀도 괜찮을 거야. 처음에는 예전보다 힘들어졌다고 싫어할 수도 있지만, 20년쯤 괴롭히면 익숙해질 거고, 30년쯤 지나면 만세를 외치겠지. 왜냐하면 그때 서른 살에 접어든 사람은 온전히 시진핑 시대를 산 사람일 테고, 그들이 받은 교육은 시진핑 일색일 테니까. 그렇게 30년이 지나면 사람들은 시진핑을 그야말로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하겠지." - P98

제 생각에 지금 중국의 문제는 가짜 희망이 판친다는 겁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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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현대 기술에 의한 감시 시스템이 활개를 친 건 과거 10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출현하기 전에도 중국공산당의 민중 감시 능력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산당의 감시 능력과 현대 기술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공산당은 예전부터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현대 기술이 이 능력을 더 향상해준 것이지요. - P61

우리가 또 살펴봐야 할 것은 사람들이 왜 자원해서 중국 경찰들을 도와 이런 부도덕한 일을 하는가입니다. 사정은 꽤 복잡합니다. 우선 경찰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면 기본적으로 경찰에게 약점을 잡혀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해서 어떤 일을 했다고 가정해보죠. 그들이 당신을 붙잡은 뒤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당신을 자기네 스파이로 삼으려는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들은 당신을 통해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죠.
다른 하나는 중국공산당 정권이 레닌주의 정권이다 보니 엄청난 경제적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국영기업에서 근무한다고 해보죠. 사장이 당신을 불러서 안정 유지를 위한 정보원이 되어달라고 하면, 감히 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싫다고 하면 밥그릇을 잃을 텐데요. 아니면 당신이 작은 노점을 하나 운영한다고 해보죠. 정기적으로 허가증을 연장받아야 하는데, 정부 관점에서 이건 당신의 중요한 약점을 잡은 거나 다름없죠.
(중략) 제가 분석하기로 정보원 대부분은 그 일을 강요받았고, 정부의 보복이 두려워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 P66

만약 중국공산당이 어떤 일을 하고자 맘먹는다면 자금 따위는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불가사의한 일도 그들은 아무 제약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적인 안전이 아니라 절대적인 안전을 원하기 때문이죠. - P73

가장 중요한 것은 총체적인 위기가 도래했다는 겁니다. 일단 총체적 위기를맞으면 아무리 좋은 예방 시스템이 있대도 소용없습니다. 조직에 속한 사람들, 정치 엘리트, 감시를 실행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이가 제도에 믿음을 잃기 때문입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경찰 시스템 내부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가족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수많은 억울한 일과 모욕적인 일을 겪으면, 제도에 엄청난 실망, 더 나아가 반감을 갖게 됩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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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14억 인구의 중국에서 전면적으로 실행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국가 감시 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 체계는 과거 수십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현대 기술 통제 프로젝트를 포함하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대하고 노동 집약적인 스파이 네트워크가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 P44

현재 중국의 정권은 겉보기에는 1959년 당시 정권과 아주 다르지만, 실제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무한 권력의 정부이고 사회는 이에 어떠한 제약도 가할 수 없습니다. 제약을 가할 유일한 방법은 정권 내부의 권력 분배뿐입니다.
(중략) 최고 결정권자가 다른 의견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래도 그 정권은 어느 정도 교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할 수있죠. 그러나 만약 최고 결정권자가 이견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강력한 대응을 동원해 한술 더 뜨는 방식으로 받아칠 겁니다. - P46

제가 따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정치 체제에서는 상부에서 좋은 정책을 내려보내면, 밑으로 갈수록 제대로 이행되지 않습니다. 왜냐? 이해관계자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죠. 위에서 내린 좋은정책이 밑에서는 5퍼센트만 실행되어도 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체제에는 몹시 나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만일 상부에서 나쁜 일을 저지르면, 밑으로 갈수록 폐단이 확대됩니다. 예를 들어 상부에서 어떤 안 좋은 정책을 내리려는데 이게 하부 관리에게도 유리하다면, 그는 차라리 좌로 갈지언정 우로는 가지 않죠(영좌물우). 즉 나쁜 일을 더 확대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고위층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이 밑으로 내려왔을 때는 최악의 정책이 되어버립니다. - P47

중국에서는 관리들이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건 괜찮아요. 나쁜 일을 저질러도 피해자가 일반 국민이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부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 체제는 매우 도구화되어 있어서, 당신이 어떤 일을 처리하더라도 상부와 대가를 논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라는 말이 중국 관료들 사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그 말의 함의는 뭘까요? 이건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관리 자신더러 대가를 치르라고 한다면, 그는 아예 일을 안 할 테고요. 따라서 이런 ‘작악수권‘의 체제가 갖춰지면, 일반 국민만 괴롭습니다. - P48

수많은 나쁜 점이 증폭되어 나쁜 제도가 됩니다. 이 제도 아래에서는 첫째, 좋은 일을 할 수 없어요. 둘째, 나쁜 일을 해도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는 ‘악의 평범성‘이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게 합니다. - P49

이번 ‘제로 코로나‘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 ‘제로 코로나‘는 일종의 대중운동으로, 동원된 인력 자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기술에만 의지해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죠. 둘째, 가장 효과적인 감시 체제를 위해 촘촘한 조직 시스템에 첨단 과학기술을 더한 것이죠.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 P51

 저는 현재 중국의 감시 시스템이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장 선진적이고 어떤 나라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경지에 달했다고 생각해요. - P52

수십 년 동안 중국공산당과 인민이 맺은 사회 계약은 경제 발전을 이룸으로써 정권의 합법성을 획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공산당이 나나 내 아이를 편히 살게 해주면, 개인의 권리를 탄압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고, 우리는 그저 조용히 돈이나 벌면서 살겠다는 거죠. 그런데 이번 ‘제로 코로나‘로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까. - P52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의 사회 계약에는 경제적인 면 외에 다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정치적 권리는 원하지 않을지언정,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는 있어야 한다는 거죠. 내가 무엇을하든, 어떤 옷을 입든, 어디를 가든, 정치와 무관한 일을 할 때는 당이 관여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번 ‘제로 코로나‘는 순식간에 수많은 인민이 이제까지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던 개인의 자유마저 빼앗겼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했습니다. 중국이 민주국가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개인의자유만 주어진다면 민주국가인지 여부는 상관없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도 없고 그 무엇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여실히 느꼈죠. 이러한 측면에서 말한다면, 아마 ‘제로 코로나가 공산당의 위신에 끼친 부정적인 충격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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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중국이 당내 민주화를 시작으로 장기간의 노력을 거쳐 마지막에는 입헌 민주주의 체제로 가길 바랐다. 하지만 최근에 그는 중국공산당이 반대 방향으로 가고있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차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개인적으로 질의도 하고 공개적으로 이의도 제기하다가 정부의 훈계 처분을 받고 검열 대상이 됐다. - P22

차이샤는 다음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시진핑은 어떻게 이토록 순조롭게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나? 중국공산당 체제와 시진핑 개인의 정치 수완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앞으로 시진핑의 권력을 제약할 요소들이 있을까? - P23

집중제는 고도의 의견 일치와 정해진 바대로 따르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때 따라야 하는 것은 지도자의 말이고요. 이 때문에 당 안에서의 ‘민주집중제‘는 반드시 지도자 일인 독재로가게 되어 있습니다. - P26

당의 지도자를 강조하는 것은 당이 국가보다 높다는 것이고, 일당독재는 국가권력을 이용해서 사회의 모든 반대 세력을 진압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당의 최고 지도자면서 국가권력을 가질 때, 그는 국가권력을 사회의 반대 세력을 진압하는 데 사용할뿐 아니라 당내의 반대 의견을 금지하고 억압하는 데 사용할 겁니다. 시진핑이 어떻게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을까요? 이렇게 된 데에는 그가 국가권력을 사용해서 모든 당원, 간부, 그들의 가족을 상대로 일종의 숙청을 감행한 것이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 P26

마오쩌둥이 집권한 시기, 그러니까 소위 신중국을 세운 후 그는 개인숭배를 통해 사실상 한 개인의 독재 권력을 만들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은 공산당에 특별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바로 개인권력을 제약하지 못한다면, 덩샤오핑이 말했듯이, 마오쩌둥 같은 위대한 지도자도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덩샤오핑 자신이 정치 일선으로 복귀했을 때도 개인의 권력 집중을 방지하는 데에 상당히 신경을 썼습니다. 그는 더는 누구도 일인 독재를 할 수없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오쩌둥에게서 교훈을 얻었다고 할 수 있죠. - P27

시진핑은 집권하자마자 매우 명확하게 태도를 바꿉니다. 태도를 바꿀 때 그가 내세운 논거는 이랬습니다. 후진타오 시기의 ‘구룡치수‘와 ‘정령불출중남해‘ 때문에 기득권 세력 및 부정부패 세력이 커졌고, 바로 이러한 권력 분산이 당 중앙을 연약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를 강화했어요. 그가 집권하고 나서 자기한테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찾아낸 나름 정당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근본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왜냐고요? 그가 운운한 권력 분산은 거짓 명제니까요. 민주 정치를 한다면 반드시 권력을 나누고 상호 제어해야 합니다.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켜 독재하도록 두면 안 됩니다. - P29

분권과 상호 제어가 가능한 민주국가의 권력 분산은 법치의 궤도에 따라 운행됩니다. 권력은 오직 이 궤도를 따라서만 운행되고, 궤도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책임을 묻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내 관할 구역 안에 있기만 하면, 그 권력을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인 거예요. - P30

겉으로는 권력 분산과 권력 나눠먹기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보면 이 둘은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해결해야 할 것은 권력 분산의 문제가 아니고 권력 나눠먹기의 문제입니다. 권력나눠먹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권력을 한 사람의 손에 모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고, 분권과 상호 제어를 확립하고 권력이 법치의 테두리에서 작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중국공산당 내부의 여러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 P31

시진핑의 부패 척결은 이를 구실로 공산당 전체에 본때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패 척결을 시작점으로 삼고 권력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낙마한 사람 중 일부는 정말로 부패 세력이었지만, 일부는 그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P32

부패 척결을 통해 시진핑은 당내에 위신을 세웠을뿐더러 당심과 민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알아버리죠. 그의 부패 척결은 선택적이었고, 사실은 날강도 같은 수단으로당 전체를 장악했다는 것을요. 모두 깜짝 놀랐죠. - P33

그가 권력을 장악한 후 공산당 전체가 입을 닫았고 아무도 목소리 내지 않았어요. 그는 당내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고, 그런 그가 첫 번째로 한 것이 바로 2018년의 헌법 개정입니다. 당시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시진핑이 조폭 두목이고, 중국공산당은 이미 정치 좀비가 되었다고 말했죠. - P39

 과거 시진핑이나 중국공산당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고 중국에 전 세계 공급망이 자리하고 있으니 세계가 중국을 떠날 수 없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지금은 거대 자본이나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를 떠날 수 없지만, 세계는 중국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죠.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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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우리 군대에는 월급이나 휴일, 하루 여덟 시간 근무 따위는 없었다. 일반 사병으로 우리는 모두 똑같았다. 진짜 공산주의 정신은 거대한 인민 군대를 일으킬 때 찾아온다. (......) 우리는 군사 전통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 P99

생산대 대장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가운데 노동력은 흔히 적절한 보상 없이 인민공사에 의해 전유되었다. 마청의 장셴리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한테는 공사가 있으니까 요강을 빼면 모든 것이, 심지어 인간도 집산화된다." 이것은 가난한 농민 린치에게 <간부가 시키는 것은 뭐든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 결과 임금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 P100

가장 급진적인 인민공사에서는 개인 소유의 밭, 무거운 연장, 가축을 모두 공사에 넘겨야 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극히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었다. <똥도 집산화되어야 한다!>는 쓰촨성 성장 리징취안의 말 그대로였다. 이에 맞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최대한 건지고자 애썼다. 가축을 도살하고 곡물을 감추고 자산을 팔았다.(중략) 광둥에서는 <내가 먹는 것은 내 것이고 내가 먹지 않는 것은 누구 것이든 될 수 있다>라는 말이 흔했다. - P102

한때는 구두쇠였던 이들은 저축액이 몰수될 것을 걱정해 갑자기 과시적 소비에 빠져들었다. 평범한 노동자는 값비싼 브랜드의 담배와 여타 사치품을 구입했다. 일부는 심지어 호화로운 연회에 돈을 펑펑 썼다. 풍문들이 집단적 공포에 불을 지폈다. 일부 마을들에서는 한 사람 앞에 담요 한 장 빼고 모든 게 공동 소유가 되었다는 말이 돌았다. - P103

쓰촨 성 단장 현에서는 열한 명의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수백 채의 초가집에 불을 질렀다. <하루 저녁에 초가집을 없애고 사흘 안에 거주지를 짓고, 100일 만에 공산주의를 건설하자>가 대표 구호였다. - P104

새로운 시설들이 마을에서 가져온 식량과 가구, 자금으로 세워진 것이기에 일단 공동 식당에 자리를 잡자 주민들은 작정하고 진탕 먹어 대고 더 열심히 물자를 써댔다. - P105

스탈린은 살인적인 물자 징발로 농촌의 모든 부(富)를 빨아먹는 식으로 농업을 희생시켜 공업 자본을 확충했다. 마오쩌둥은 소련 모델의 대안으로서 그 반대로 공업을 농촌으로 가져오고자 했다. - P107

 부르주아 전문가들은 보수 우파라고 비판을 받은 대신 순박한 농민들의 세속적 지혜는 높이 추켜세워졌다.(중략) 외국의 전문 기술보다는 직관적 지식과 토착적 창의성이 중국의 농촌 마을들에 소련을 뛰어넘게 할 저렴하고 효과적인 혁신을 도입하리라. - P107

진짜 기준점은 강철이었다. 여기 사회주의를 대표할 만한 자재가 있었다. 단단하고 번쩍거리며, 산업적이고, 현대적이고, 노동자 계급적인 자재가. - P108

 강철은 사회주의연금술에서 성스러운 요소였다. 철강 생산량은 사회주의 나라들이 종교적 열의를 띠며 되뇌는 마법의 숫자였다. 철강 생산량은 인간 행위의 모든 복잡한 차원들을 마법처럼 증류하여 한 나라가 발전의 척도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보여 주는 단 하나의 정확한 숫자로 환원했다. - P109

목표량을 달성하려는 미친 듯한 시도에 사고도 빈번했다. 마구잡이로 베어진 나무들이 사람들 위로 쓰러졌다. 채굴할 땅굴을뚫기 위해 경험 없는 노동자들이 사용한 폭발물도 인명을 앗아 갔다. - P111

당 활동가 집단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흔히 가재도구나 농기구를 징발해 가는 식으로 고철을 수집했다. 충분한 열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폭언을 듣거나 괴롭힘을 당하거나 심지어 줄에 묶여사람들 앞에서 조리돌려졌다. - P112

결국 지도부는 그들이 원하는 기록을 얻었다. 비록 그 대부분은 광석을 제련한 후에 남은 찌꺼기거나 불순한 원광, 아니면 그저 통계적 발명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농촌 인민공사에서 나온 괴철은 너무 작거나 잘 부서져서 현대적 압연 공장에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어디에나 쌓여 있었다. 야금부 자체에서 나온 한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지방들에서 토법고로에서 생산된 철 가운데 3분의 1도 사용하지 못했다. - P114

 모범 공사인 롄탄에서는 수천 명의 농민들이 가을 추수기 동안 7헥타르 경지를 깊이 갈기 위해 징발되었다. 작물을 수확할 인력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만 톤의 곡식이 들판에 방치되었다.
그러나 국가에 넘기는 곡물은 현지 간부들이 공식적으로 밝혔던 수확량에 따라 넘겨야 했다. 1958년 실제 곡물 생산량은 2억 톤을 갓 넘겼지만 작황이 풍년이라는 온갖 주장들을 토대로 지도부는 4억 1000만 톤에 가깝다고 추산했다. 순전히 허구적인 숫자를 바탕으로 한 가혹한 곡물 적출은 주민들 사이에 분노와 두려움만 자아낼 뿐이었다. 곡물 징발로 온 나라를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근으로 몰아넣을, 인민을 상대로 한 전쟁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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