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이는 이때서야 일본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땅에선 개인이 아닌 ‘가문‘ 그 자체가 사람대접을 받는다. - P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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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문학 따위가 있어선...
일본은 영원히 서구를 따라잡을 수 없어요. - P193

당시 작가의 생활은 매우 불안정했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성대하게 소비를 일으켰지만 부의 분배는 그를 따르지 못했고, 농촌에서는 먹을 것도 없으면서 다다미를 사들이는 형편이었다. - P210

...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시대라는 것에 질 수밖에.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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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이 고약한 소세키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강박신경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당시 연재하고 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딱히 정해진 거리가 없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지적인 병자의 자기관찰일기이며 치료일기이기도 했다. - P51

소세키의 병은 근대사회에서 비로소 자아에 눈뜨게 된 일본인의 고민, 또는 서구를 증오하면서도 서구를 배워야 했던 일본 지식인의 딜레마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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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험에 비추지 않으면 소설 같은 건 한 글자도 쓸 수 없네. - P45

뿌리가 단단해야 허구의 잎도 푸르게 우거지는 걸세. - P46

소설은 말이야. 체념했던 일에 거창하게 미련을 부리거나, 머리로 뀌는 방귀 같은 거야.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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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이 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세상은 물질주의와 기회주의가 판치는 부정한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그곳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과 명예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안온한 곳이 결코 아니었다. 다만 시골로 내려올 때는 외톨이었으나 중학교에서는 의기투합하여 불의에 함께 맞서는 산미치광이라는 친구를 얻었다. - P193

도련님이 매우 괄괄하고 과격하게 보이는 까닭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몸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거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같은 처세술은 도련님과 어울리지 않는다. 도련님은 말주변도 없고 세련함이 부족하지만순수하고 타산 없이 정의를 선택한다. 또한 자기가 한 일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잘못이라고 솔직히 시인한다. 이렇듯 정직하고 올곧은 성격과 행동을 보여 주기 때문에 도련님은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그야말로 ‘청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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