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은 중국의 작가와 독자들에게 살아 있으면서도 혁명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생은 ‘본질적‘이고 ‘본원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숭고하고 피곤할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 P87

중국이라는 오래된 땅은 줄곧 성과 성애에 대해 늦가을의 매미처럼 아무 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몹시 갈구하고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한편으로는 예로부터 "배가 부르면 음욕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애를 화의 근원으로 간주해왔다. 그래서 『롤리타』는 상당 기간 동안 ‘엄숙 문학(정통 문학)‘으로 간주되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인은 오랫동안 정치적 억압에 시달렸고 온갖 거짓말과 유언비어에 속아왔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금서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취향이 세계의 모든 문학상을 초월했다. - P96

이 ‘거친 아이‘는 문학적 의미에서 볼 때는 일종의 ‘해방된 독립이자 창조‘라고 할 수 있고 사회학적 의미에서 말하자면 문학에서 발양된 미국의 ‘자유 정신‘이자 인간의 독립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거친 아이‘라는 문학의 공동 형상이 중국에서 그토록 위력을 떨치면서 큰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역사 및 현실이 이러한 문학적 야성과 현실에서의 인간의 자유를 크게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친 아이‘의 자유 생활과 자유 생존, 분투하여 자유를 쟁취하는 것 내지 자유를 타락시키는 것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중국인, 즉 독자들의 ‘거친‘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결합시켰다고 할수 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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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현실을 마주하고 작가가 국가 및 권력을 마주하고 있을 때, 문학과 작가의 비천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늘날의 중국에서 작가와 문학이 정말로 먼지 속으로 들어가서도 숭고함을 느낄 수 있고 사회 발전과 함께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을까? - P60

중국 문학은 세계에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중국 이야기를 써내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 비친함을 느끼지 못하고, 독특하며 유일무이한 다른 인류의 중국식 시대에 처해 있으면서도 과거 루쉰이 당시의 중국인인 ‘아Q‘를 써냈던 것처럼 오로지 오늘날의 다른 인류인 중국인을 써내지 못한 데 대해 마땅히 느껴야 하는 자괴감을 느끼지 못한다. 문학이 바로 ‘다른 중국‘의 비천한 시대에 처해 있지만 나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가 그 안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 P69

문학의 비천함은 ‘다른 중국‘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좀더 다른 예술의 힘, 혹은 영생하는 작가와 문학 자체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의 중국, 즉 ‘다른 중국‘과 ‘다른 시대‘에는 작가가 비천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비천함을 위해 글을 쓰며, 글을 쓸수록 더 비천해지고 비천해질수록 더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사정은 이렇다. 문학은 비천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비천함은 문학예술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다른 중국‘의 비천함을 자각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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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태어나 이제 스무 살 내지 서른 살이 된 중국의 아이들은 정말로 망각의 한 세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그들을 망각의 상태로 내몬 것일까? 그들이 망각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우리처럼 기억을 갖고 있는 전 세대는 그들의 망각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 P32

혁명은 정권을 창조했고, 역사를 창조했으며, 현실을 창조하고 ‘기억도 창조했다‘. 기억하고 기억되는 것, 자연적인 기억상실과 억압에 의한 망각이 국가적인 ‘망각과 기억‘의 범주에서 혁명적 선택과 수단이 되어 질서정연하게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실행되었다. (중략)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중국의 노인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목격했던 군벌의 혼전과 중일전쟁, 당파와 군대, 지사들과 내홍, 유혈과 희생이 전부 선택적으로 기억되거나 망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상실과 관련된 행위들이 국가적인 정책과 전략이 되고, 나중에는 한 사람의 광기와 열정에 의해 민족 전체가 물 끓듯이 끓어올랐던 혁명과 건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 P35

용솟음치는 뜨거운 피를 주체하지 못해 현장에 참여했던 당시의 젊은이들도 지금은 인생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중년이 되어 그때의 일을 ‘어리석음‘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조와 기억상실에 대한 만족이 이미 개인의 운명과 집단의 기억,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처절하고 치열했던 고통의 상처를 단절시키거나 덮어버린 것이다. - P37

기억상실은 모든 사람의 병증과 의지의 특징이 아니라 국가 관리의 책략과 사회 제도가 야기한 일종의 필연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경로는 이데올로기에서 금언의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권력의 통제를 통해 역사책과 교과서, 문학과 모든 유형의 예술의 표현 및 공연 등 기억의 연속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통로를 단절시키는 것이다. - P38

우리는 이따금 "침묵은 일종의 소리 없는 반항이다"라면서 침묵에 대해 고상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은 어디까지나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벙어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묵이 오래 지속되면 묵인이나 인정이 혈루에 스며들어 습관이 되기 쉽고, 이것이 기억상실이라는 국가의 악랄한 조치의 조력자가 될 수 있으며, 강제로 기억을 상실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동조자나 지지자가 될 수 있다. - P39

집중된 권력이 이데올로기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강제적 기억상실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집중된 권력이 집중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취하는 필수적인 조치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는 문제를 그렇게 두루뭉술하고 간단하게 국가와 권력의 문제로 귀납시킬 수 없다. 그 강제적 기억상실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일정한 역할을 한 지식인들에게 물어야 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점차 기억을 상실하여 최종적으로 권력이 요구하는 완전한 망각에 도달하기를 원했던 것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국 지식인들의 다른 국가나 민족, 역사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 P40

오늘의 중국은 하나의 창문(경제)만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또 다른 문(정치)은 사회와 인민에 대한 권력의 통제라는 필요성 때문에 봉쇄되어 있거나 최대한 봉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기억이나 망각과 관련된 중국식 국가 기억상실의 독특성이 바로 이처럼 반쯤 닫혀 있고 반쯤 열려 있는 교묘함 속에 있는 것이다. - P41

기억상실에 대한 자발적인 태도에는 지자들의 집단적인 타협이 존재한다. 집단적으로 기억을 방치한 뒤에 서로를 이해하고 이심전심으로 보살피는 것이다. 오늘날 이미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내일은 봄날의 좀더 맑은 바람을 쟁취하기 위한 불필요한 희생을 할 필요가 없으니, 기억할 것만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어주자는 것이다. 말믈 잘 듣는 아이가 그 군말 없이 말을 잘 들음으로 인해 버 큰 총애와 은전을 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42

오늘날 중국에서 돈은 그어떤 것보다 더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어, 두 입술을 굳게 다물 수 있게 하고 잉크를 마르게 할 수도 있다. 문학적 상상의 날개가 돈의힘을 빌리면 진실과 양심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에는 예술과 예술가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역사의 망각 속에서의 허구와 현실의 가상이 아주 튼튼하고 화려하게 건설되는 것이다. 이렇게 진상은 묻히고 양심은 단절되며 언어는 돈과 권력에 윤간당하고 만다. 그리고 권력에 의해 텅 비워진 시간이 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 반복되면서 국가적인 기억상실의 완성을 돕고모든 개인의 습관적 기억상실과 회의에 대한 회의를 양성하고 배양하게 된다. 회의자들은 반드시 징벌을 받게 되고 기꺼이 허위를 만들어내고 허위를 믿는 사람들, 어둠 아래에 원래 눈부신 빛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든 상과 격려를 독차지하게 된다. - P42

국가적 기억상실의 전략에서 강제성은 전 세계 공통의 특성이자 서로 상통하는 전략이지만 타협과 장려는 오늘날의 중국에만 있는 독특한 특징이다. - P44

중국인들이 기억상실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역사 속에서의 민족의 기억이다. 그런 다음 현실 속에서의 모든 사실과 진상을 잃는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로 기억을 갖는 모든 중국인이 「기억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생에 대한 기억, 애인에 대한 기억, 애증과 은원에 대한 기억, 즐거움과 고통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된다. 대뇌에서 기억이 차지하는 영역이 아주 깨끗한 백지로 변해 사회와 권력, 타인들이 자기 필요에 따라 역사가 어떤 것이고, 사회는.또 어떤 모습이며 나와 나의 과거, 세밀한 모습이 어떤 상태인지 말해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 P47

기억이 작품의 우수성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은 아니지만, 한국가나 당파, 민족의 진정한 성숙도를 평가하는 대단히 유효한 척도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나는 작가들이 항상 아이처럼 순진한 꿈을 갖고 과거 중국의 원로 작가 바진 선생이 가졌던 기억의 꿈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다름 아니라 중국에 ‘문혁기념관‘을 건립하는 꿈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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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 3부작을 다 모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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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간다는 것은 단지 여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말하기에 대한 갈구이기도 했다.
나는 말하기 위해 멀리 갔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곽을 빠져나가 울음으로 소식을 알리는 작은 새 같았다. - P9

매번 얼마나 많은 진실을 토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이나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말없이 인정할 수 있는 진실을 말하진 못했을지언정 적어도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만 말했다. - P10

어떤 각도에서 보자면 작가는 인간과 인간의 기억을 위해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억과 느낌 때문에 우리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 P15

당시에는 생존과 생활이 중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었고 혁명이 유일한 국가의 대사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혁명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붉은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가 큰 소리로 ‘마오 주석 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했을 때, 우리 부모님과 마을 사람 대부분은 혁명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면서 무력하게 시련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그리고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눈앞에 검은 막이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한낮에 어두운 밤이 내리는 것 같았다. - P17

오늘날의 중국은 이미 어제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부유하고 강대해졌다. 13억 인구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자 갑자기 강한 빛이 세계의 동쪽 끝에서 반짝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불빛 아래서 광선이 강할수록 음영도 더 짙어지고 덩달아 어둠이 생겨나 더 깊고 두터워지는 것처럼, 이 빛 속에는 따스함과 밝음,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의 우울과 근심, 불안 때문에 빛줄기 아래의 음영과 냉기, 안개가 휘감고 있는 잿빛 어둠을 느끼는 사람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숙명적으로 어둠을 잘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오늘날의 중국이 왕성하게 성장하는 동시에 왜곡되어 가는 것을 본다. 발전하는 동시에 변질되어 부패하고 부조리해지며 어지러워지고 무질서해지는 것을 본다. 매일의 시간과 매일 일어나는 일이 전부 인지상정과 일상적인 이치를 넘어서고 있는 것을 본다. 인류가 수천 년의 시간을 들여 수립한 감정적 질서와 도덕적 질서, 그리고 인간 존엄의 척도가 그 광활하고 오래된 땅 위에서 해체되고 붕괴되며 소실되고 있는 것을 본다. 법률의 준엄한 제도가 어린아이들의 고무줄놀이로 전락한 것을 본다. - P18

나는 그 광활하고 온통 혼란과 생기로 가득한 땅에서 내가 불필요하게 남아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광활하고 온통 혼란과 생기로 가득한 땅에서 나와 나의 글쓰기가 많든 적든 간에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삶과 운명, 하늘이 나를 태어나면서부터 어둠을 느낄 수 있고 느껴야만 하는 사람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임금님이 옷을 입지 않은 것을 본 아이처럼 햇빛 아래서는 항상 큰 나무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즐거운 노래가 어우러진 연극에서는 항상 막 옆에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따스하다고 말할 때 나는 추위와 냉기를 느끼고 사람들이 빛을 말할때 나는 어둠을 본다. 사람들이 행복감에 젖어 춤추고 노래할 때, 나는 누군가 그들 발밑에서 오라에 묶이고, 걸려서 넘어지고, 구속되는 모습을 본다. 인간의 영혼 속에 감춰져 있는 불가사의한 추악함을 보고 허리를 곧게 펴고 독립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지식인들의 굴욕과 노력을 본다. 좀더 많은 중국인의 정신생활이 돈과 노랫소리 속에서 권리를 박탈당하고 와해되는 것을 본다. - P20

이 맹인을 통해 나는 글쓰기의 원리를 한 가지 깨달았다. 다름아니라 어두울수록 더 빛이 나고 춥고 차가울수록 더 따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가 존재하는 의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존재를 피하게 하는 것이다. 나와 나의 글쓰기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켜던 그 맹인처럼 어둠 속을 걸으면서 그 유한한 불빛으로 어둠을 비춰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 어둠을 보고서 확실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빛나거나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P22

오늘날의 중국은 세계의 태양이자 빛인 동시에 세계의 거대한 걱정이자 어두운 그림자인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매 순간 알 수 없는 걱정을갖고 있고, 알 수 없는 불안, 근거 없는 두려움과 근거 없는 경솔함을 갖고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데 대한 두려움과 망각이 있고 미래에 대한 동경과 근심이 있다. 현실에 대한 매일 매 순간 넋이 뒤흔들릴 정도의 놀라움과 기본적인 상식 및 이치에 위배되고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들이 있다. - P22

그래서 ‘시간과 장소, 사건‘을 뚫고서 나는 오늘의 현실 속의 가장 일상적인 어둠을 본다. 수천 년의 문명을 보유한 중국에서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거리에 쓰러진 노인을 보고도 어쩌면 그것이 사기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며 다가가 부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노인이 흘린 피는 너무나 붉고 뜨거웠다. - P24

나는 중국의 노인들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집단으로 자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가난과 질병, 노동의 피로와 도덕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내면의 걱정과 운명에 대한 불안, 현실 세계에 대한 마지막 절망 때문에 죽는 것이다. - P25

나는 자신이 하늘과 삶이 어둠을 느끼도록 지명한 특별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빛의 주변, 잿빛 어둠 속에 숨어 있다. 잿빛 어둠과 검은 어둠 속에서 세계를 느끼는 가운데 펜을 들어 글을 쓰면서, 이 잿빛 어둠과 검은 어둠으로부터 밝은 빛과 달빛, 온기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사랑과 선, 영원히 박동하는 영혼을 찾는 것이다. 아울러 글쓰기를 통해 어둠에서 나와 빛을 얻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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