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비일상' -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어느 날 한 남자가 눈이 먼다. 눈을 떠도 감아도 그저 흰색밖에는 보이지 않는 이른바 '백색 실명'이라는 증상은 이 남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가 급기야 도시 전체를 뒤덮는다. 결국 온 도시 사람들의 눈이 멀어 버린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이것이 소설의 소재, 내지는 전제이다. 물론 이러한 일은 현실 속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소재가 이렇게 비현실적인 것이므로 언뜻 생각하면 이 소설은 아주 황당무계하고 환상적인 이야기일 거라고 예측하기 쉽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극찬받은 작품이다.

그것은, '백색 실명'이라는 환상적인, 결코 현실적이지 않은 소재가 이 소설 속에서는 '환상' 혹은 '비현실'이 아닌 '비일상(非日常)'의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상적 관점으로는 분명 불가능하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들을 그는 '비일상'으로서 일상 속에 섞어넣는다. 그러한 일들이 일상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보일 반응을 극도의 현실성을 가지고 묘사한다. 사건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지만, 그에 대한 인간들의 대처는 예측 가능하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이다. 우리가 실제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할 것인지를 소설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백색 실명'이 발병한 후의 정부의 대처, 수용소에서의 생활과 그 와중에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려 하는 무리의 만행, 수용소의 참담한 결말, 그리고 전국으로 퍼진 백색 실명의 후폭풍 등, 비현실적인 사건이 불러온 현실적인 결과는 너무도 실제감이 있어 더욱 잔혹하다.  

이 소설이 받은 무수한 찬사 중 가장 대표적이며 눈에 띄는 것은 묘사와 서술이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 표현된 백색 실명 발병 후의 생활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생동감 있고 사실적이다. 그런데, 이 '사실성'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바로 소설의 제재가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자칫 잘못하면 그저 허황되게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현실성이 있고 생동감이 있다. 이 소설의 현실성은 이와 같은 비현실적 설정에서 이끌어낸 것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사라마구는 여타 소설들에서도 이러한 비현실적 소재를 즐겨 사용하지만, 그러한 비현실 속에서 가장 큰 리얼리티를 이끌어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바로 이 소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