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부아르와 베유와 머독. 샌드위치 먹으러 왔는데 솔드 아웃. 어쩔 수 없이 강제 다이어트. 샐리 루니와 어울리는 봄날. 선을 일상적으로 행하는 이들은 선에 관심이 없다는 이하영의 말은 그대로 옳다. 비단 선뿐만 아니라. 이웃집 목련이 활짝 폈고 아이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하영을 완독하고나니 케이가 많이 떠올랐다. 예순이 되기 전에는 마주하면 좋겠지만 그러하지 못한다 해도 아쉬울 일은 없다. 그때 우리는 질릴 정도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주고받았으니까. 관계가 끝나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라는 마음도 없고 우연히 서로를 마주한다고 해도 얼굴을 붉힐 까닭 없이 서로를 포옹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알고. 내 인생에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은 온통 축복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케이도 동일하게 생각하겠지? 어느덧 케이도 오십대 중반이다. 케이는 내게 있어서 decent한 인간이었다. 예의 바른 인간, 품위 있는 인간, 그렇게 말해도 괜찮겠는데 정말 말 그대로 디센트한 친구였군, 그걸 이하영을 읽는 동안 다시 느낌. 물론 상사로서의 케이나 남편으로서의 케이, 아버지로서의 케이의 모습을 나는 알 까닭이 없으니 그러한 관계에 있어서 케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알 수 없으나 그의 디센트함이 그 모습 곳곳에 스며들어 반짝거릴 거라는 그런 친구로서의 믿음? 제부는 두 달 내내 벤츠 노래를 부른다. 결국 동생이 지게 될듯. 이하영의 선의 캐리커처를 우연히 마주한 올해 봄은 그대로 행운이다. 이 책을 샐리 루니와 더불어 읽은 것도. 이하영의 박사 논문이 출간되면 읽어봐야지. 오랜만에 글의 힘을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 나는 이곳을 좋아하는군. 이곳도 나를 좋아하고. 공간의 힘도 다시금. 어떤 인과성의 작용도 없이 받아들여지는 순간들, 그것이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작은 축복들이라는 사실을 여러모로 오늘 깨닫는다. 쟈켓을 벗고 팔에 걸쳐 들고다니는 시간, 에코백 안에는 이하영과 샐리 루니가 찰랑거리며 그 존재감을 내 안에 불러 일으키고 생수통 안에 들어있는 물빛 안으로 이하영과 샐리 루니의 활자들이 덩실거리며 춤을 추는 광경이 촉각으로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