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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득록, 정조대왕어록
남현희 엮음 / 문자향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
최고의 자리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자신의 한 마디에 많은 것을 좌우할 수 있게 되면 그 마약과 같은 힘에 이내 중독되고 마는 것이 인간이다. 한 번 국회의원을 해먹은 사람들이 다음 선거에도 너도나도 나서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권력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이다. 마치 권력은 늪과 같아서 빠져나오려 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더불어 이 권력이란 놈을 휘두르는 높은 자리에 선 사람은 타락하기 쉽다. 전에 가졌던 생각과 목표는 이내 흐트러지고 자신의 권력에만 짐착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권력의 속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한 끝을 본 경우도 많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냐 하면 우리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정조라는 인물은 달랐기 때문이다.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 학문에 힘써 호학군주라는 이름을 얻었는가 하면 백성을 지극히 위했기에 애민군주라는 이름 또한 얻었다. 이러한 정조의 면모를 잘 알아볼 수 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2.
전에 보았던 정조의 비밀어찰첩에서서도 잠시 엿볼 수 있던 진정한 군주 정조의 면모는 이 일득록으로 인해서 더 자세히 나타난다. 일득록은 정조의 어록들을 기록하여 12장으로 구성하며 만든 책이다. 정조가 만든 규장각의 직제학이었던 정지검의 건의로 시작된 것으로 사관의 기록과는 별개로 신하들이 정조의 말씀을 듣고 기억해다가 연말에 그 어록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을 엮은 것이다. 정조는 편찬의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반성의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며, 또한 그 기록을 통해 신료들의 문장과 논의도 살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만약 지나치게 좋은 점만 강조하여 포장하려 한다면, 그저 덕을 칭송하는 하나의 글이 될 뿐이니, 어찌 내가 이 책을 편집하게 한 본뜻을 어긴 정도일 뿐이겠으며, 뒷날 이 책을 보는 이들이 지금 이 시대를 어떻다 할 것이며, 규장각 신료들을 또 어떻다 하겠는가? 이러한 의미를 규장각 신하들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 -일득록서-
반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정말 반성하는 삶을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잘못한일이 있었는지 하루하루 반성하여 되돌아보고 고쳐가며 자신을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정조는 직접 어록까지 만들어가며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이러한 한결같은 면모는 정조의 학문에 대한 태도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정조만큼 많은 책을 보고 학문에 힘을 쓴 왕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세종이 여기에 비할 수 있을까나....정조는 그 바쁜 왕의 자리에서도 한치도 책을 놓치 않았다고 한다. 한치의 시간도 어투 버리지 않았으며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고 신하들을 꾸짖기도 했다. 과거에는 같은 일을 손쉽게 처리하였던 관리들이 오늘에 봐서는 같은일을 어렵게 처리하는 것을 그들이 학문에 힘쓰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며 독서에 힘쓰면 책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고 자신들이 힘겨워하던 일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책을 읽는 태도에 대해서도 여간 까다롭지 않을 수 없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오로지 책에만 집중하여 보았으며 누워서 보거나 자세를 불경하게 하고 책을 보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이부분을 보면서 나 스스로 뜨끔했다. 나는 누워서 책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3.
정조는 그야말로 올바른 곧은 사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분이었다. 하루하루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고쳐가며 오로지 학문에 힘쓰고 신하들을 다그쳐 독서를 하도록 했으며 정사에 몰두하며 백성들의 삶을 살폈다. 흉년을 걱정하며 내탕고로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풍년이 들면 전에 흉년으로 갚지못한 환곡까지 다 관리들이 다 갚게 하려 했으나 백성들의 삶을 생각해 갚지 않도록 하고 풍년으로 백성들이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했다. 매 생활속에서 학문과 백성에만 그 힘을 쏟는 정조였던 것이다. 직접 백성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고초를 듣기도 했다. 이렇게 진정한 군주의 모습으로서 나라를 다스렸기에 그 당시 조선은 태평성대라 할 만큼 나름 평화로운 삶을 백성들이 살았던 것이다. 물론 정조 이후 조선은 급속도로 쇠퇴해갔다. 이런 것을 보면 정조가 조선의 마지막 기운을 붙들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4.
정조는 항상 인재의 부족을 한탄했다. 이 사람을 쓰고 다른 자리에느 쓸 사람이 없어서 썼던 이를 또 다시 써야 했을 정도라고 하니 정말 그당시 조선은 정조가 걱정하며 위기라고 했던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쟁은 계속 되었고 과거급제해서 조정에 나오는 인재는 서울을 위시한 사대부의 후손들이 대다수였으니 말이다. 그나마도 정조라는 위대한 군주 덕에 조선이 그 당시에 위태위태하여 그 형세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5.
정조의 어록중에서 인상깊은 것은 자신이 다혈질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쉽게 흥분하는 체질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다시말해 스스로를 자신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나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사람은 자신의 단점은 숨기고 장점만을 보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정조는 자신의 입을 통해서 그것을 밝혔으며 나중에 그런 성격으로 인해 격노했을 때 신하들에게 대놓고 욕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상당히 존경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이 책은 아니지만 전에 보았던 "정조의 비밀편지"에서 정조가 심환지에게 대놓고 아주 못할 말을 했던 기록을 보았다. 하긴 왕도 사람이니까 ....아무튼 우리 역사 속에서 정조는 정말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밝히며 마친다.